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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28. 2016

おけんきですか?(오겡끼데스까)

몇 년째, 2월의 둘째 주 일요일에는 탐앤탐스 충무로점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10잔이 넘는 음료를 한꺼번에 주문한 탓인지, 나의 마음 탓인지... 사장님 죄송하지만 이곳 커피를 맛있게 마신 적은 없다. 머그컵 대신 종이컵에 담겨 나온 커피에 특유의 종이향이 배어 있다고 느끼는 것도 어쩌면 나의 기분 탓이리라.


서른 전에는 추억이라는 단어가 가는 세월을 운운하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중년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 느꼈었는데... 1년 만에 만나 올해도 역시 커피숍에서 ‘너’를 추억하는 나와 동기들은 벌써 37살이 되었다.




‘너’를 처음 만난 건 새내기 예비학교 때였다. 다른 단과대학에서는 몇 백명씩 신입생을 뽑기 시작하던 99년, 우리는 정원이 45명인 국어교육과에서 ‘동기’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대부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옆에 있는 동기들이 평생 같은 길을 걷게 될 친구라는 생각을 조금씩은 했었는지... 우리는 그만큼 끈끈하고 폐쇄적인 대학생활을 했다.


새내기 예비학교 날, 선배들은 캠퍼스의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입생인 우리들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 선배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선배들을 만나면 시키는 대로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퀴즈 문제도 풀었다. 선배들이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 외치며 너와 손을 잡으라고 했을 때, 너와 어깨동무를 하라고 했을 때, 여중과 여고를 나와 남자사람친구와는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는 지조차 몰랐던 나의 떨림은 어색함이었을까? 설렘이었을까?


나는 너에 대한 어색함을 불평으로 대신했다. 우리에게 이것, 저것을 시키던 선배들과 실수를 연발하는 네게 나는 어찌 그리 화가 났을까...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자연스럽게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화였던 것 같다. 겉으로는 뚱뚱하고 둥글둥글한 외모에 걸맞게 유쾌한 모습을 과장되게 내보였지만, 내면에서는 똘똘 뭉쳐진 열등감이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을 그토록 부끄럽게 만들어 괴로워하던 시절이었다.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이런 저런 미션을 주었던 이유가 개강 후에 우리들이 강의실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실수를 연발하는 너도 사실은 나만큼이나 어색할 거라는 생각을 왜 그때는 못 했을까... 내가 그때 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추운 2월, 우리의 어깨동무는 그 자체로 좀 더 따뜻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런 저런 행사들로 정신없이 바빴던 3월이 지나고 선배들 없이 동기엠티를 춘천의 중도로 갔던 날에도 나는 너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아직 날이 이렇게 쌀쌀한데 어쩜 천막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숙소를 정했냐고 과대표인 너에게 나는 또 툴툴거렸다. 정작, 도움은 하나도 주지 않았으면서.


너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네가 준비했던 중도의 엠티가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행복한 엠티였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잔디밭에서 햇살을 밭으며 동기들과 뒹굴었던 잔상과 자전거를 타다가 찢어진 옷을 부여잡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던 기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오돌오돌 떨며 너를 구박했던 그 밤에, 나는 친하지도 않았던 ‘G’를 끌어안고 세상에서 사람의 온기가 그토록 따뜻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네 덕에 가능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37살의 나는 영원히 20살인 너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생 참 많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벌써 16년, 이제는 다소 덤덤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사건의 경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까마득한 후배의 말 한마디에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 왈칵 눈물을 쏟았다는 ‘J’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또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뉴스의 사망자 명단에서 네 이름을 확인했던 순간, 나는 세상에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고 절망했다. 사람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다는 진실이 공허한 외침으로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도 어린 나이에 너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차가운 미시령 고개에서 한 소중한 세계의 문이 그렇게나 갑자기 닫혀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그 세계에 대고 외친 말이 분명히 “먼저 가 있어~~~. 가서 한잔 하자!!!”는 아니었을텐데. 1년이 지나도록 너에 대한 어색함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고작 ‘한잔 하자.’였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진심으로 소통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색함을 그저 소주 몇 잔으로 무마했던 시절이었다.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했던 너랑 지금 다시 만난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을 것도 같은데...     




2월의 둘째 주 일요일, 많은 동기들이 현직교사가 되어 생활기록부 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 받을 보직에 대해 고민하는데, 너에 대해서만은 항상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결석에 걸려서 돌을 빼내려면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며 1.5리터 패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들고 언덕을 오르던 네 모습. 너의 돌출된 이에 부딪혀 누군가의 머리에서 피가 났던 을왕리 엠티.

   

그래도 우리가 만날 때마다 명품 가방, 아파트,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그런 것들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일까?

때로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감으로 다가왔던 교단에서 나는 간혹 너를 떠올렸었다. ‘아,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스무살의 내가, 또 네가 얼마나 서고 싶었던 곳인가’를 생각하며 힘든 순간을 버틴 적이 있었다. 우리 동기들도 때로는 지긋지긋한 학교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너를 떠올리며 이겨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마지막 종강 파티에서

“남자친구, 여자친구 없는 99들아, 같이 ‘러브레터’ 보러 가자.”

하고는 끝내 러브레터를 보지는 못했던 H야!!!

おけんきですか?(오겡끼데스까?)”


우리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단다. 우리는 내년 2월 둘째 주에도 만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나눌 거란다.

너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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