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의 봄

by michaela

2주 전, 플라워레슨을 받았다.

핑크, 보라, 파스텔톤 바구니를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작약을 준비해 주셨다.


작약은 얼굴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고

북한 행사에서 환호하며 흔들어대는 꽃 같아서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던 꽃이다.


그런데,

바구니에서 유독 탐스럽게 활짝 핀 작약 한 송이를 보며

'만개한 작약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압도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는

의미를 실감했다.


그 한 송이 작약이 시들던 날,

어찌나 섭섭한 마음이 들던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


요새 아이들의 중간고사 때문에 매일 보는 시에서

'모란'을 '작약'이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같은 시를 두고도 아이들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은 표현상 특징이 뭐니?"

"역설법이요."

"역설법이 뭔데?"

"아, 그거 있잖아요!! 반대로 말하는 건가?"

"그럼 반어법은 뭔데?"

"아.. 나 아는데.. 잠깐만요.. 음..

으아~~ 또 모르겠어요."

하며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다.


꽃 한 송이보다

옷, 친구, 게임에 더 관심이 가는 아이들에게

꽃이 지는 슬픔은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대학 동기들과 만나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대학 때, 스터디하면서

소설도 시도 참 많이 읽었잖아?

그런데 그때는 그 의미들을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까 이제야 조금 알겠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냐.”


“그러게 말이야.

애 낳고, 복직해서 바로 하는 수업이라 그런가…

얼마 전에 ‘백석의 <수라>’**를 수업하는데,

울컥해서 수업하다 울 뻔했어.”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을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나이가 될 때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워가는 동안,

때로는 문학을 통해 위안과 힘을 얻고 마음을 풍요롭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만난 작품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모란’ 대신 자신이 잃은 소중한 것을 대입해 읽으며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깟 수학이 뭐라고!!

오늘 아빠한테 괜한 짜증을 내서 너무 미안해요.”라며

한 바닥 다 틀려버린 수학 프린트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린 S라면


20년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나와 내 친구들처럼

‘이청준의 <눈길>’***을 읽고

문득 눈시울을 붉히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문혜정, < 꽃이 필요한 모든 순간 > 중에서

**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백석, <수라>

*** 눈길에서의 추억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담아낸 단편소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