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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Apr 22. 2016

머릿속에서 더 아름다웠던  알람브라 궁전, 그러나

친구가 말했다.

"넌 참 많은 것들을 네가 직접 경험해 봐야 아는 것 같아. 가 보고, 해 보고, 만져 보고... 그래서 그런 건가? 네가 또 그렇게 많은 것들의 소소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느끼는 게?"     

친구의 말이 맞다. 나는 여행을 다녀와서야 여행 책자를 읽는 사람이니까.


알람브라 궁전은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의 끝자락으로 건너온 무어인들이 세운 이슬람 궁전이다. 아랍인들이 물러가고 거의 200년동안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거지와 집시들의 소굴이 된 궁전.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미국인인 '어빙'이 책으로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작곡가 '타레가'는 이곳에서 콘차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밤에 실연의 슬픔을 담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


궁전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이야기조차도 여행을 다녀온 후에야 비로소 '!! 그랬구...' 새삼스레 놀라며 맘 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담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스리 궁전 두 자매의 방 천장(위의 왼쪽), 나스리 궁전 사자의 중정(위의 오른쪽), 나스리 궁전 미르틀레스 안뜰(아래의 왼쪽), 헤네랄리페 궁전의 아세키아 안뜰(아래의 오른쪽)


스페인의 남부 지방에 있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에 간 것은 순전히 타레가의 노래와 몇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주 어렸을 적에 들었던 노래가,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주 어렸을 적에 보았던 사진들이 서른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머리와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만큼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사진 속 공간에 앉아 기하학적 무늬를 바라보며 타레가의 노래를 듣겠다.'는 꿈도 함께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알람브라 궁전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를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나는 그곳에 갈 것이었으므로.

이런 나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 중부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였다. 스페인 북부에서는 한국인 여행객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중부로 내려오면서 여행을 하는 한국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고 그러면서 '알람브라'라는 단어도 귀에 솔솔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서 두 달 전에 예매하고 왔는데, 그마저도 오전 티켓은 없어서 야간 입장권 구입했어요. 알람브라는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던데... 나스리 궁의 지반이 카를로스 5세 궁전 때문에 무너지고 있어서 시간마다 입장 인원을 300명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거든요."

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씩씩하게 유럽에 입성한 예쁜 여대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으로 '간절함'이라는 놈과 '불안함'이라는 놈이 함께 침투하는 것을 느꼈다. '못 볼 수도 있다', '궁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주 오래 전부터 간직해왔던 꿈을 순간적으로 몇 배는 더 부풀려 놓았다.     


조바심을 갖고 스페인 남부로 내려가던 나는 그나마 귀동냥으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었다. 나와는 반대로 남부에서 위로 올라오던 한 친구가 얘기했다.

"알람브라... 글쎄요... 제가 워낙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그래도 명성이 자자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혹시 누군가 제게 알람브라 궁전이 가 볼만한 곳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가 보라고 추천해 줄거예요. 티켓 미리 예매 안 하셨다고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매표소에 가면 당일 입장 티켓을 현장에서 구매하실 수 있을 거예요."

!!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란 말인가.     


그렇게 나는 새벽 5시가 아니라 밤을 세워서라도 티켓을 구매하겠다는 각오로 그라나다에 입성했다. 그리고는 바로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올라갔다.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람브라 궁전


단언컨대 내가 그라나다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봤던 이때다. 오래 전부터 가슴에 담아 왔던 사각의 프레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고, 내 이어폰에서는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고 울먹울먹하는 듯한 기타의 애잔한 선율이 가슴속으로 파고들던 그 순간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재주가 내게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꿈만 같다."고 나직이 내뱉으며 "고맙습니다."하고 조용히 읊조렸다.     


역시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파이팅이 넘친다. 숙소에서 새벽 5시에 매표소에 가면 당일 티켓을 구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친절한 스페인 청년은 놀라면서 "오우 노. 그렇게까지 일찍 나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7시에 가도 될거예요."하고 대답했다.     


그라나다 문을 향해 가는 길목(아래의 왼쪽), 그라나다 문(아래의 오른쪽), 그라나다 문을 들어서 매표소로 올라가는 길(위)


그라나다에서의 둘째날, 한국인 친구가 말해 준 새벽 5시와 스페인 청년이 말해 준 7시 사이, 나는 새벽 6시에 숙소를 나와 매표소로 향했다.

동트는 새벽, 설렘과 걱정을 안고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어 알람브라 궁전으로 향하는데, 그라나다 문을 들어서니 매표소로 이어지는 길이 또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줄을 서 기다린 끝에 나는 드디어 오후 2시에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을 구매했다.     


나스리 궁을 빼고 나머지 궁전은 굳이 정해진 시간에 입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무식한 여행자는 그것도 모르고 오후 2시까지는 알람브라 궁전에 들어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카프카의 <>에서 주인공 K가 성에 입성하지 못한 채, 그 주위만 맴돌던 맘이 이랬을까?'

를 생각하며 궁전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사크로몬테 지역에서 바라본 알람브라 궁전(위), 사크로몬테 지역(아래)

 

그 바람에 나는 언덕 경사면에 동굴을 파서 만든 거주지가 있는 사크로몬테 지역도 둘러 보고, 그냥 목적 없이 걸어 우리네 추모관 같은 장례 시설도 보고, 알람브라 궁전을 올려다보며 점심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여행객이 모처럼 기분을 좀 내려고 했더니 자꾸만 고양이가 내 주변을 맴돌았다. 순간순간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길 위에서 만난 고양이였다. 생선을 좀 떼서 선심을 썼더니 녀석이 계속해서 한 입만 더, 한 입만 더 하기에 몇 번을 떼어주고 나서는 감자를 줬다. 그런데 허허... 고놈 참... '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말은 만국공통인지, 아 요놈이 감자는 사양하는 것이 아닌가 ㅋㅋ

어쨌든, 고양이 녀석과 옥신각신하며 점심을 먹고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알람브라 궁전에 입성했다.  



        

물론 알람브라 궁전은 아름다웠고,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건축물은 감탄을 자아낼만 했다.     


그러나 한낮의 태양 아래 북적이는 관광객들 틈바구니에서 만난 알람브라는 내가 꿈에 그리던 공간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만큼 궁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았고, 문득문득 사진으로 보는   멋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은 퇴락했지만 관광지가 된 알람브라는 200년 동안 버려졌던 폐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지는 못했다. 궁전에서 타레가의 노래를 들었지만 전날 밤만큼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거의 돌아간 저녁 무렵, 다소 고즈넉한 알람브라를 마음 속에 담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발길을 돌렸다. 




내게 알람브라 궁전은 그곳에 가기 전, 머릿속에서 상상했을 때가 더 멋있는 곳이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알람브라 궁전에 가서 나는 오랫동안 내 맘 속에 자리하고 있던 꿈의 공간 하나를 잃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바라보며 타레가의 음악을 들었던 꿈같은 밤이 내 인생에는 없을 것이고, '한 입만 더'하며 가난한 여행객을 시험에 들게 한 고양이를 만날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오로지 알람브라 궁전 입성을 목적으로 그라나다에 갔었는데, 알람브라 궁전으로 가는 길이 내게는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항상 '무엇인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알람브라 궁전에 다녀오고 나서 나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아주 조금은 배우게 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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