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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y 14. 2016

콩닥콩닥 리스본 그리스도 기념비 찾아가는 길

리스본행 비행기를 탄 지 딱 1년 째 되는 날(5월 6일)이다. 이후의 일정에 대한 계획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유럽 대륙의 '끝'에서 여행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무턱대고 리스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다.


나보다 먼저 포르투갈에 다녀온 친구 '지희'는 떠나는 내게 A4용지 2장을 쥐여 줬다. 종이를 펼쳐 보니 깔끔하게 그려진 표 안에 날짜, 장소, 이동경로, 음식 등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종이를 펼쳐든 순간, 찡~하게 웃음이 났다. 보고서처럼 정리가 된 종이를 보니, 누가 대한민국 공무원 아니랄까봐... 싶어서 웃음이 났다. 혈기왕성한 20대 청춘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친구가 60일 동안 홀로 배낭여행을 떠난다니 꽤나 걱정스러웠는지... 그 마음이 사각형의 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찡~하게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나와는 달리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지희가 유독 좋았던 여행지라며 포르투갈에 대한 소소한 꿀팁을 전해줬을 때, 철딱서니 없는 나의 심장은 친구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대감과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리스본의 명물 트램


늦은 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에 들어섰을 때 '내가 정말 리스본에 도착했구나...'하고 실감나게 만든 건 역시 트램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곡예하듯 다니는 낡은 트램은 이 도시의 명물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골목 사이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요 재주꾼을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가둬두기 위해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 서서 셔터를 누른다.

"트램이 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어요. 저는 트램 성애자거든요."

하고 얘기했던 여행자는 마음에 쏙~드는 트램 사진을 찍었을까? 왠지 음침하게 느껴지는 '성애자'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그녀도 지금 자신의 사진첩에 담긴 트램을 보고 있는 건 아닐는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트램 성애자가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


친구 지희가 포르투갈 여행에 대한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줄 때 말했었다.

"에그타르트는 꼭!!! 벨렘지구에 가서 먹어야 해. 벨렘지구는 리스본 시내에서 30분쯤 가면 있는데... 수도원, 발견 기념비, 탑 등 유적지가 많으니까 가볼만 해. 특히, 수도원 옆에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 빵집에서 에그타르트 먹는 걸 잊지마. 이 빵집 옆에 수도원이 있는데, 그곳 수녀님들이 수녀복 깃을 빳빳하게 세울 때 달걀 흰자만 사용하고 노른자가 많이 남아서 처치하려고 만든 게 에그타르트라는 거야. 그러니 그곳에 가면 진정한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는 거지. 나는 에그타르트만 사려고 일부러 벨렘지구에 한번 더 갔었어. 너는 일정도 기니까 아얘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포장을 많이 해 둬."


평소에 결정 장애를 호소하던 지희다. 친구들끼리 만났을 때도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법이 없는 지희가 느낌표를 남발하며 추천해준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도 들렀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 빵집에.


이곳에 들르기 전, 먼 곳까지 여행가서 시간을 투자해가며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곳의 에그타르트를 맛본 후 나는 '반드시 그곳에서 먹어야 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리스본을 떠나 파티마, 코임브라, 포르투로 올라가며 곳곳에서 에그타르트를 먹어봤지만 이때 먹었던 에그타르트처럼 맛있는 녀석을 먹어본 적은 없다. 어떤 것은 생강 맛이 강한가 하면, 어떤 것은 아랫부분의 빵이 너무 딱딱했다. 지희 말대로 더 많이 사 둘걸...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그곳의 에그타르트였기 때문에 그토록 맛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곳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벨렘지구에는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유적지가 많았다.

 발견 기념비와 4월 25일 다리, 그리고 강 맞은편에 보이는 그리스도 기념비(위), 제로니무스 수도원(아래 좌), 벨렘 탑(아래 우)


그런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 발견을 위해 출발했던 자리에 세워졌다는 '발견 기념비' 꼭대기에서도, '이것이 정녕 바다가 아니라 강이란 말인가?' 너무 넓어서 계속 의구심 자아내는 강가를 산책할 때도,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벨렘 탑'을 둘러볼 때도 나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강의 맞은편에 있는 그리스도 기념비였다.


벨렘 탑에서 찍은 기념사진 뒤로도 그리스도 기념비가 보인다.


그래서 무작정 그리스도 기념비를 보겠다고 나섰다.

당시 나는 지희가 줬던 종이를 쪽집게 과외 족보마냥 들고 다녔는데, 거기에는 강을 건너는 방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여행 중에는 어찌 그리 단순 무식해 지는겐지... '다리를 건너면 되겠지 뭐'하는 생각이 머리에 퍼뜩 스쳤을 때, 내 다리는 벌써 트램과 버스 정류장을 향하고 있었다.


일단, 정류장 도착해 무조건 다리 방향으로 가는 트램에 몸을 실었다. 중간에 버스 노선도가 보이기에 내려서 사진을 찍고~~ 753번 버스를 타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시킨다는 4월 25일 다리를 건널 수 있겠구나 싶어서, 753번 버스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잘 다니지도 않는 버스를 두어 번씩 갈아타고 내가 어디에 있는 지 당최 가늠도 안 되는 곳을 배회하다가 그냥 택시를 탔다.


리스본의 트램 및 버스 노선도(좌), 리스본 수도교(우)


헤매던 중에도 '오잉? 죠건 뭐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 있어 사진을 찰칵 찍고 돌아와서 살펴 보니, 1746년에 지어져 항상 식수가 부족 리스본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했 '리스본 수도교'란다.

1800년대에 한 연쇄살인범이 4년 동안 70여 명의 사람을 이곳에서 살해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폐쇄되었다는 설명을 읽는데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신나게 길을 헤매다가 수도교 주변에서 내렸을 때는 인적도 드물고 왠지 모르게 '쌔~~'한 느낌이 들어 무조건 택시를 잡아 탔었는데... 설명을 읽으니 순간적으로 서늘한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잡아 탄 택시인데...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입으로 나불거렸었건만...

내 눈에 들어오는 젊은 택시 기사님의 팔뚝에 그려진 현란한 문신은 나를 더욱 바싹 긴장하게 만들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두 팔을 쫘~악 벌려 "그리스도"라고 내뱉으며 다리 건너편을 손짓으로 가리키는 내 의사 표현을 제대로 접수하긴 하신겐지... 특별한 대꾸도 없이 기사님은 택시를 몰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기념비를 찾아가는 4월 25일 다리 위


어쨌든 그날 나는 4월 25일 다리 위에 있었고, 기사님이 화를 내지는 않을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사진 한장을 찍었고, 두 팔 벌려 리스본을 안아 주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 정신없는 여행자까지도 품어 주실 지를 걱정하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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