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그리스도 기념비 아래서

콩닥콩닥 그리스도 기념비 찾아가는 길 2

by michaela

순간 나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던 택시 기사님은 그리스도 기념비 입구에 도착하자 쉬크한 매력을 마구 발산해 주셨다. 요금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리는 내게 유창한 영어로 꼭 필요한 정보들을 콕!콕! 짚어 주신거다.


좌충우돌하는 여행객의 스타일을 그새 간파하신겐지 기사님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가리키며 먼저 얘기해 주셨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 선착장에서 페리로 갈아타면 더욱 편리하고 저렴하게 돌아갈 수 있어요."라고.


"시간이 늦었으니 버스 시간을 미리 확인해 둬요."라고 덧붙이는 기사님의 말을 들으며,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입으로만 나불거릴 교훈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기념비 아래 서있던 그날은 몰랐었다. 포르투갈 예수상이 브라질 예수상과 마주 보고 서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다면 포르투갈의 예수상이 리스본만 그러안고 계신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예수상이 더욱 좋아졌다. 브라질 예수상과 둥근 지구 위에 마주 서서 온 세상을 그러안고 계신 이 예수상이, 굳이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을 갖지 않고도 관계 맺음 속에서 더 큰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이 예수상이 나는 더욱 좋아졌다.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서니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샤갈의 그림을 연상하게 만드는 일관된 스타일의 성화들은 단조로운 공간에다 종교적 숨결을 통일감 있게 불어넣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성당에 다닌 지가 5개월밖에 안 되는 예비신자였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유럽의 많은 성당들과 달리,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깔끔하고 조용했던 이 공간은 예비신자가 드리는 미숙하고 어설픈 기도와도 참 어울렸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예수님의 발끝에 드디어 당도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 속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예수상 위로 비현실적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이 너무도 어지러워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먼 발치에서 바라봤을 때는 "이리온"하며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실 것 같던 예수님은 당신의 발끝에 당도한 내게 오만을 경계하는 겸손을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 같다. 절대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는 그 절대자의 발끝에서 무릎꿇고 경외라는 단어를 배우고 내려왔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는 4월 25일 다리를 한동안 바라봤다. 샌 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닮았다는데, 아직 금문교를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닮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다리 위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택시 기사님의 반전매력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며칠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브라질예수상 아래 서는 날, 심호흡을 게 한 번 하고 두 팔을 벌려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리라 생각하며 두 팔 벌려 게 숨을 들이켰다.


이런 저런 상념 끝에 이제는 기사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페리를 타고 돌아가야지... 하며 일어섰다. 오잉? 그런데 이게 웬일? 강을 뒤로하고 돌아섰더니 사람이 무도 없었다. 버스가 끊겼으면 어떻게 하지?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택시가 있긴 한건가? 인적도 드문데 위험한 건 아닌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거의 뛰다시피 종종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인도에서 여행을 온 가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반가울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마치 이 가족의 일원인 양, 함께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내려가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넜다.


당신은 아실까요?

낯선 곳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맞닥뜨린 두려움을 스르르 녹여 주던 당신의 가족들, 당신의 편안한 웃음, 영어를 잘 못하는 낯선 여행객마저 유쾌하게 만들던 당신의 이야기들, 여행을 좋아한다는 내게 혹시 인도에 여행을 올 기회가 있으면 연락 하라며 건넨 명함.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이 건넨 사탕보다 더 달콤했다는 사실을 아실까요?


길 위에서 만났던 좋은 사람들이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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