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다. ‘찌르르~~~’한 농축된 쓴맛 속에 신맛과 단맛을 품고 있는 에스프레소가 마치 우리네 인생을 닮은 플라맹고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에는 잘 시키지도 않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는 이유는 미나쌤이 새벽에 보내 온 카톡 메시지 때문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신혼여행을 떠난 미나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작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와서 행복해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여행 중에 메시지를 보낸다는 미나쌤에게 어느 도시를 갔었냐고 물었더니 반가운 도시들의 이름이 ‘카톡’ 소리와 함께 따라온다. ‘카톡~~ 세비야’, ‘카톡~~ 그라나다’...
미나쌤도 세비야의 플라맹고 박물관에서 내가 보았던 춤을 관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찌르르~~~’한 전율이 온 몸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유럽의 남쪽 끝에서 전해져 오는 미나쌤의 따뜻한 마음과 반가운 소식이 고마워 전에 플라맹고를 보고 나서 썼던 글을 미나쌤에게 보냈다. 배려심 깊은 새신랑과 예쁘고 지혜로운 새신부가 보내는 달달한 시간들이 나의 글로 인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서...
음(飮), 주(酒), 가(歌), 무(舞)에 일가견이 있다는 단군의 자손이건만, 세상에 태어나 줄넘기 한번을 제대로 넘어보지 않았다는 아버지를 둔 나는 불행히도 몸치의 유전자를 뼛속 깊이 지니고 태어나 감히 ‘무(舞)’의 영역은 넘보지 못한 채 35해를 살아왔다. 그러니 나에게 플라맹고만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또 있을까?
온 국민이 TV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새롭게 탄생할 ‘댄싱퀸’이 누가 될 지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그 순간에도 아빠와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거실에 앉아 세계 여행을 하고 있던 나에게 플라맹고는 개발에 편자만큼이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단어였다.
우리나라의 관광객들이 대부분 플라맹고를 볼 목적으로 스페인의 세비야를 찾는 것과는 달리, 나는 그저 지도를 펼쳤을 때 굵은 글씨로 표시가 되어 있기에 이 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유럽의 끝자락에 내 언제 또 다시 오랴 싶어 여행 책자의 앞면에 있는 지도를 펼친 후,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도시의 해당 페이지 안내를 살펴보고 느낌이 꽂히는 건축물이나 예술 작품이 있으면 일단 ‘고고씽’을 외쳤던 여행이었다. 자고로 당일 저녁의 잠자리도 기약할 수 없는 배낭여행의 백미는 이렇게 무턱대로 ‘고고씽’을 외칠 수 있는 자유에 있는 법이니까.
물론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 거실에서 TV를 보며 ‘걸어서 세계속으로’ 들어간 것이 10년이 다 되어가니 나는 분명 플라맹고를 한 쯤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비야에서 직접 감상했던 플라맹고 이전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춤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나의 귀에 플라맹고의 캐스터네츠 소리는 그저 소 귀에 경 읽는 소리였을 게 분명하다.
이랬던 내가 지금은 플라맹고가 나의 심장과도 같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절정의 순간을 맛보게 만드는 이 춤의 마력을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나의 감정들을 다소나마 부려 놓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의 손뼉과 손뼉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박수의 고동 소리가 가슴에 전해져 ‘쨍!!!’하고 심장이 멎을 듯 했던 순간, 그래서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순간의 전율,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서 이어지는 우리네 삶처럼 박수 소리에 이어지던 손가락들이 만들어 내던 리듬, 그 손가락 마디마디에 간직된 삶의 심연, 이런 무게감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어쩌면 경쾌한 것도 같은 캐스터네츠 소리,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무용수의 표정이 우리 안에 만들어 놓는 감정들을 부려 놓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한 채 무덤덤하게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 짐을 꾸린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는 것과 반대로 목을 90도 각도로 꺾어 바티칸의 천지창조를 보며 미켈란젤로에게 경의를 표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지하에 가서 가우디의 묘비에 손을 얹는다. 나는 세비야의 플라맹고 또한 그 곳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반원형의 스페인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예고편 같은 캐스터네츠 소리가 없었다면, 내가 스페인 남부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이국적인 야자수가 아니라면, 저렴하고 맛있는 따빠스로 배를 채우지 않았다면, 혹시라도 강도를 만나지는 않을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거닐고 달려보지 않았다면 과연 플라맹고를 보면서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하는 극대화된 오르가즘의 절정을 맛볼 수 있었을까? 다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본다. 박수 소리만으로도 사람을 황홀경에 빠지도록 만들었던 현장의 분위를 전혀 담아 내지 못하는 동영상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나는 괜히 김빠진 맥주를 손님에게 대접한 것 같은 민망함을 느꼈다.
공연이 끝나고 기념품 상점에서 샀던 배지에 손을 얹어 'my flamenco - heart'를 따라 써 본다. 동영상을 틀어 놓고 눈을 감으니 귓가에서 캐스터네츠 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다고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