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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05. 2016

15인용 도미토리 3층 침대에서 눈뜬 빌바오의 아침

오늘의 커피는 맥심 화이트골드 커피믹스

1년 동안 타칭 ‘대한민국 청년(벌써 청년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나이가 돼 버렸지만-.-;;)실업자’요 자칭 ‘자율적 무급 휴가자’로 지내다가 4일 전부터 출판사 편집부에 늦깎이 인턴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생전 처음 접하는 회계분야 전공서적의 교정을 보며 21세기를 살아갈 딸에게 시대에 뒤쳐지게시리 주산을 4년 동안이나 가르쳐 주신 부모님께 처음으로 감사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숫자에 질려버려 복리 계산도 못하는 바보가 되었다며, 주산 배운 에너지를 컴퓨터 배우는 데 쏟았으면 한국의 스티븐잡스가 되었을 거라며 볼멘소리를 했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숫자들이 금방 눈에 들어오고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교정을 보는 내 안에 7살 주산신동(7살이 뭘 조금만 잘 해도 신동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는 걸 감안해 주시길...)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엉덩이가 들쑤시고 사팔뜨기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잠 휴식을 취하려 커피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달달한 맥심 화이트골드의 노란색 ‘EASY CUT!’을 잡아 뜯는데 그래도 ‘감사’라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열심히 일한 오늘, 어쩌면 나는 빌바오의 호스텔에서 꿈꿨던 나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섰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밤,  많은 이들의 꿈을 싣고 항해하는 배 모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자아내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15인용 도미토리 3층 침대에서 눈뜬 빌바오의 아침

     함께 숨쉬는 마음이 든든한 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다."

 

여행을 다녀온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3일 후면 50일간의 나의 배낭여행도 벌써 작년의 일이 되어버리겠구나...’싶어 아쉬워하는 이때,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2015년에도 1988년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 위로가 된다. 나의 여행 또한 30년이 지나도 나와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참 위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덕선이의 남편이 과연 정환이일지 택이일지 마음 졸이며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나는 정환이와 택이 둘 중에 누군가는 가을날 열매가 ‘툭’하고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은 가슴 철렁한 좌절감을 맛봐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파서 그저 스쳐 지나가듯 무심하게 띄엄띄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가슴에 ‘콕’하고 와서 들어앉는 노래가 있어 같은 노래를 2시간 동안이나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는데 또 스냅사진 같이 흰 머리 50대 부부의 모닝키스 장면이 마음속으로 ‘찡~~~’하게 노래를 따라온다.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 함께 숨쉬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벽은 없을 것 같아~~~." (응답하라 1988 OST, 노을의 '함께' 중 일부분)


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빌바오'

스페인의 북부에 있는 ‘빌바오’라는 도시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그리 많이 찾는 곳은 아니었다. 나 또한 성지 순례자들의 종착지이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향로미사로 유명한 대성당이 있는 스페인의 북부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가기 전에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가? 말아? 다음에는 '살라망카'를 가고 싶은데 고작 미술관 건물 하나 보자고 반대편 쪽으로 향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침에 일어나 하루에 한 번 출발하는 빌바오행 기차에 올라탄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네르비온 강 옆에 세워져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는 배 모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티타늄 패널이 햇빛에 반사될 때마다 다채로운 색을 뽐낸다는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술관의 외관에만 관심이 갔는데, 검색을 해서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 보니 "놓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스페인 최고의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1980년대 중반에 산업침체로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자, 인구가 줄어 들고 각종 공해와 쓰레기들이 넘쳐나 도시 자체의 존폐가 우려될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랬던 도시를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살려내려 했던 프로젝트의 중심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의 조선소 자리, 산업 폐기물이 쌓였던 곳에 티타늄을 외피로 한 배 모양의 미술관을 지었다는 건축가의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하며 현재는 이 도시의 희망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여행자들의 꿈까지 싣고 항해하는 이 배에 나의 꿈도 함께 싣고 싶어졌다.


산티아고를 출발한 지 9시간이 지나고... 아직도 왜? 인지 모르겠는 이유로 중간에 철도회사 측에서 마련해 준 버스로 갈아탄 후, 한 시간 정도를 더 가서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빌바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부푼 꿈을 안고 찾은 도시였건만...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단돈 2만원이라는 것만 확인한 후 예약했던 호스텔의 이용 체감난이도는 상급이었다.


우선,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몰라 걱정할 틈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복닥거리는 게 답답해 수시로 드나드는 이용객들 틈에 묻어 호스텔 입성하고 보니 밤늦게 도착한 나 따위를 기다려주는 직원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니가 해라~~~ 체크인. 마~이 늦었다 아이가.’라는 말이 떠올라 방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코끝에 스치는 스멜~~~. 현관에 들어설 때 내가 상상했던 정도의 냄새는 아니었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제대로 샤워도 하지 않았을 각국 사람들이 뿜어내는 향취가 그리 좋을 리는 없는 법이다. 나 또한 행여 자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서 당장 필요한 용품만 챙겨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침대에 들어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을 한국인 배낭여행객의 향취를 더했다. 15명 함께 쓰는 도미토리에 제일 늦게 도착한 내 몫으로 남겨진 침대는 3층에 있었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누군가 뒤에서 잡아끄는 것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며 90도 경사의 사다리를 오를 때, 생전 해보지도 않은 암벽 등반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곤 내일 최대한 빨리 이곳을 탈출하리라 다짐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맞은 편에 있는 호스텔

그런데 다음날 아침.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눈을 뜬 내 앞에서 반쯤은 하얀 머리를 한 50대 후반 정도의 부부가 따뜻하게 포옹하고 온화한 미소로 눈빛을 교환한 후 모닝키스를 했을 때, 나는 마음 먹기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제 밤에는 좁은 공간을 15명과 나눠 써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오히려 15명이나 복닥이는 방에서는 나 한 사람의 움직임과 소리가 그다지 방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해졌다. 지켜보는 눈이 이리 많은데 누가 내 물건을 쉽게 가져가랴 싶어 도난염려 때문에 노심초사 했던 마음에는 배짱이 생겼다. 어제 밤만 해도 가득했던 경계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주변에 유흥가도 없고 술 마시며 흥청거리는 사람들도 없었는데 이들도 나처럼 꿈을 실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자 괜시리 동지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심지어 이전에는 여자들과 샤워실을 공유하는 것조차 불편해했던 내가, 남녀 사용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샤워실에서 기분 좋게 샤워하고 나와 웃으며 낯선 사람에게 “굿~모닝!!!”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날 이후로 나는 여행 내내 그 어떤 도미토리를 이용하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는 긍정의 화신이 되어버렸으며 내 돈 내고 호텔을 이용하면서도 혼자서 넓은 공간을 이용할 때면 그렇게도 감사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빌바오에서 어떤 부부의 모닝키스를 보기 전에 나는 신혼여행이라면 당연히 '이곳이 지상 낙원이로구나...' 싶게 만드는 풀빌라가 있는 호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모닝키스를 본 후,  나는 그저 그곳이 어디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누군가 있다면 따뜻한 눈빛으로 모닝키스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 함께 숨쉬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벽은 없을 것 같아~~~.” 노래를 듣고 있는 이 순간 빌바오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가보다.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나신다던 핀란드 할머니

대단한 아침 조식은 아니었지만 간소하게 준비된 빵과 우유를 기분 좋게 먹고 나와 숙소 맞은편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핀란드에서 오셨다는 할머니께서 내게 사진을 함께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 보셨다. "저도 할머니와 함께 사진 찍고 싶어요."하며 찰칵~ 찰칵~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빌바오에서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떠나는 길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를 만나기 전, 나는 ‘몇 십 년 후에 당신은 폐휴지 줍는 손수레를 잡을 것인가? 여행용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을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금융상품 광고를 보며 내가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가 될까봐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행을 다녀와서 줄어든 내 통장 잔액을 봐도 전혀 불안해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면 당연히 비싼 호텔에 묵으며 럭셔리하게 여행을 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흰 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배낭을 메고 당당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면 그저 몇 십억 벌어 놓은 돈으로 편~하게 편~하게 사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온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살아 내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론디가(위), 축제날처럼 흥성스러운 일반적인 주말 밤거리(가운데), 핀초 골목(아래)              

혹시 나처럼 ‘빌바오, 가? 말아?’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하고 싶다. 반드시 가라고!!! 빌바오에 가면 나처럼 삶의 불안을 떨치게 만들어 줄 자신만의 천사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바라보며 꿈을 꿀 수 있는 도시, 고풍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큐브 모양의 건물을 내부에 품고 있어 반전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알론디가(복합 문화 공간)’가 있는 도시 빌바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도시이니 말이다. 게다가 구시가에 있는 핀초 골목에 들러 맥주와 함께 맛있는 핀초라도 먹는다면 이 도시에 방문한 것을 후회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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