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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09. 2016

내게는 너무나 깜찍한 그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

오늘의 커피는 콜롬비아 수프리모

“앗!!! 맛없어!!!”

내가 제일 처음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엄마가 내뱉은 말이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살아가던 내가 근근이 모은 돈으로 ‘2015 서울카페쇼’에서 장만한 핸드드립 세트를 가지고 야심차게 내린 커피였는데... 엄마는 반사적으로 맛이 없다는 말을 토해냈다.


잠자리에 들려는 식구들을 모아놓고 호들갑스럽게 내린 나의 개시용 커피는 에티오피아 커피였다. ‘카페쇼’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비니엄 홍’ 선생님의 커피였지만, 문제는 바리스타에게 있었다.

로스팅 상태를 무시한 채 에스프레소용 커피처럼 얇게 갈아서 내린 검은 액체의 맛이 좋을 리는 없는 법이다. 물줄기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커피맛은 지금 생각해도 민망할 지경이다.


이날의 오명을 씻기 위해 이후로 나는 매일 커피를 내렸다. 단골손님은 오로지 한 사람. 내 커피가 (더럽게) 맛없다고 했던 엄마 뿐이었다. 엄마는 매일 내가 내리는 커피를 마셨고, 꿈보다는 해몽이 더 좋은 나의 커피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커피를 내릴 때마다 나는 로스팅 상태, 애프터 테이스트, 바디감을 운운했다. 어떤 날은 원두가 특히 좋다며, 이런 원두는 어디서 구하기도 힘들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스읍!!!’하며 생전 한 번밖에 해보지 않은 커핑장면을 연출했던 날은 베리 향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내 단골손님의 정신을 쏘옥 빼놓았다.


3달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엄마는 ‘그윽하다, 맛이 딱 떨어진다, 입 안에 향기가 오래 남는다, 코 뒤쪽 공간까지 향기가 전달된다.’ 등등 자신만의 스타일로 맛에 대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맛에 대해 표현할 때의 진지한 액션은 전문가도 울고 갈 지경이었다.


나는 이제 하나밖에 없는 단골 고객님의 취향을 간파하게 되었고, 엄마는 더 이상 내가 내린 커피를 두고 ‘맛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찾아낸 엄마의 커피가 콜롬비아 수프리모다. 엄마는 연하게 내린 수프리모를 먹었을 때, 머리까지 올라가는 커피향이 두고두고 입 안과 비강을 맴돌며 남는 게 참 좋다고 했다. 오늘도 엄마랑 수프리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세탁기가 빨래를 끝냈다며 신호를 보내왔고, 엄마는 커피를 마시자마자 세탁이 끝난 빨래들을 챙기러 베란다로 나갔다.




20년 동안을 한 집에 살면서도 집수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우리는 보름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예전의 흔적을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새롭게 단장한 집에서 내년에는 나도 공짜로 지하철을 탈 나이라며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엄마는 새색시마냥 살림하는 재미에 부쩍 빠져버렸다.


20년을 버텨 온 살림에 버리지 않고 남길 수 있는 물건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빨래를 할 때마다 덜거덕 덜거덕 요란한 소리를 내던 오래된 세탁기도 이참에 새로운 놈으로 교체했다. 그런데 문제는 150cm가 넘는 지, 넘지 않는 지 항상 우리를 궁금하게 만드는 엄마의 키. 엄마는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낼 때마다 까치발을 들고도 모든 빨래를 집어 들 수가 없어서 항상 SOS를 요청했다.


오늘도 ‘따뜻한 커피로 기분 좋게 데워 놓은 내 몸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세탁기가 있는 추운 베란다로 나가는 건 싫은데...’하고 생각하며 엄마에게서 이어질 SOS요청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부르지 않고도 모든 빨래를 넌 후, 당당한 모습으로 거실로 귀환했다.


“어? 어떻게 된거야? 양말까지 끄집어 낸거야?”

하고 묻는 내게 엄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간단하게 한 말씀만 하셨다.

“나가 봐~~~”


세탁기에 빨래는 없었다.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내가 비굴하게 요청했더니 엄마는 선심을 쓰듯이 진지하게 시연을 해 보였다.


내 몸의 온기고 뭐고 그저 궁금해서 베란다에 나가 봤더니 엄마는 깜찍하게도 세탁소 옷걸이를 이용해 리빙센스를 발휘해 놓았다.


저녁에는 당장 필요한 욕실 슬리퍼, 휴지통 등을 사러 마트에 갔는데 엄마가 의자 하나를 또 진지하게 고르는 모습이 나는 마냥 재미있다. 식탁이 높아 서서 밥을 먹으면서도 나이 60넘어 아일랜드 식탁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며 행복해 하던 엄마는 앉아서 밥 먹게 해 줄 적절한 의자를 물색했다.


“식탁 높이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의자를 골라?” 하고 묻는 내게

“으이궁... 너는 며칠을 사용해 보고도 그걸 몰라? 앉아 보면 알지!!! 높이는 맞는데 마음에 딱~~ 들지가 않네. 의자는 다음 기회에~~~”

     

앉아 보면 알지!!! 내가 이 사진을 좀 공개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그저 쿨하게 말했다. “음~~ 그닥 뚱뚱하게 안 나왔군. 오케이~~~.”


하고 말하는 엄마가 도대체 언제부터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될까를 생각하는데 몇 해 전에 보았던 또 다른 엄마의 뒷모습 한 컷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따라와 피식 웃음이 났다.


2012년 9월 말에서 10월 초, 우리 가족은 베이징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중추절 연휴와 겹친 10월 1일의 중국 국경일, 중국 곳곳에서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는 실로 대단했다. 중국인구 많다많다 듣기는 했지만, 몸소 경험해 보니 어릴 적 교과서에서 봤던 한국전쟁 중공군의 인해전술이라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싶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일행을 놓칠새라 데모하는 사람들처럼 팔짱을 끼고, 귀중품을 잃어버릴새라 가방을 품에 껴안고 다니던 중국 사람들 사이에 끼어 왕푸징 거리에서 천안문 광장까지 휩쓸려 가던 엄마는 전쟁에 참전한 지휘관처럼 식구들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가방은 꼭 품에 앉도록!!! 우리 겉모습은 중국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니 중국 국기를 가지고 다니자!!! 그러면 귀중품, 특히 적어도 여권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테니까!!!”

이전에도 중국 여행을 다녀 온 엄마는 중국에서는 여권만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에게도 중간중간 여권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던 터였다.

엄마의 재치 덕이었든지 아니었든지 우리 가족은 잃어버린 물건 하나 없이 건강하고 즐겁게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오성기 하나로 중국인 코스프레에 도전했던 부부(좌), 그마저도 동물의 세계에 심취해 오성기를 분실함(우)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였었는데, “워 스 한궈런(我 是 韩国人).” 하고 말하는 듯한 엄마의 뽀글이 머리와 아빠의 등산복 패션을 지금 사진 속에서 확인하니 우리의 진지함이 도리어 푸하하하 큰 웃음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깜찍씨(가끔은 끔찍씨)~~~

아무쪼록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유쾌하고 건강하게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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