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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23. 2016

세계 물의 날  클릭 한번으로 내게 주는 면죄부

오늘의 커피는 스타벅스 비아 이탈리안 로스트

커피에 혀 관심이 없던 시절

그래서 머리에 별 달린 왕관을 쓰고 전 세계에 표준화된 맛을 전파하는 여신님께서 주시는 커피는 그저 스타벅스라서 맛있고 비싸서 맛이 있던 시절


‘ITALIAN’이 커피의 로스팅 정도를 나타내는 표현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이탈리아 사람이 직접 로스팅을 한 커피인줄로만 알고 한동안 열심히 마셨던 적이 있다.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카페에 앉아 느하게 커피를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열흘 정도밖에 머물지 않았던 이탈리아를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호들갑스럽게 그리워하던 재작년 일이다.


어쩜 개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커피는 역시 이딸~리안 스따일이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더니만 무식하면 용감하고,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다.



작년에 커피를 배우면서 ‘ITALIAN’이 커피 로스팅 단계 중 가장 마지막 단계를 말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래서 볶은 원두는 진하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워지고 커피에서는 쓴맛이 강하게 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끄러운 맘에 얼굴을 붉히며 혼자 조용히 웃었다.

    

이제 나는 내가 커피에 대해서 잘 안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그저 커피를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잘 몰라서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을 즐길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여전히 스타벅스의 비아 이탈리안 로스트는 맛있다. 비싸지만 맛있다.


이 녀석은 인스턴트 커피인데도 입 안에 그득한 향기를 충분히 남길 줄 안다. 이 녀석은 이탈리안로스팅이 되었음에도 “저는 아주 쓴 놈입니다.”하고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소함과 구수함의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은근하게 쓴맛을 내어줄 줄 아는 녀석이다. 이탈리안로스팅 특유의 탄향을 은근히 간직하면서도 과하게 끈적이지(오일리하지) 않고 깔끔함까지 겸비한 녀석이다. 심지어, 정수되지 않은 물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이 녀석은 그야말로 ‘선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녀석을 두 사발(잔 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많은 양이니 사발이라고 하는 게 맞다.)이나 마셨고, 그만큼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 거렸고, 변기의 물을 더 많이 내렸다.      




그런데

‘카톡’하고 퇴근 무렵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생각도 못 했었는데 ‘3월 22일 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란다. 하필이면 커피도 많이 마시고 오줌도 더 많이 싼 오늘이 ‘세계 물의 날’이란다.      

어린 여자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물에 관한 진실’을 알려준다.



‘얼마나 낭비되나요?’를 클릭하는데... 긴 생머리, 통통에서 퉁퉁을 오락가락하는 덩치, 너는 무슨 샤워를 하는 데 한나절이 걸리냐는 엄마의 잔소리, 커피 두 사발 등등 내가 오늘 하루 ‘펑펑’, ‘콸콸’ 써버린 물소리가 ‘뜨끔’, ‘뜨끔’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깨끗한 식수 선물’을 클릭하고 ‘후원하기’를 누른다. 그마저도 정기후원은 영 자신이 없어서 일시후원 10000원으로 오늘의 나에게 면죄부를 쥐어주는데...



“참~ 쉽쥬?”

하는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그렇다. 물을 아끼는 것보다 10000원 한번 클릭하는 게 훨씬 쉽다.


역시나

이상은 가깝고 현실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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