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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18. 2016

죽음에 대한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불식시키는 방법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기름진 명절 음식으로 배를 채운 식구들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날아든 한마디.

“보지마!!!”

엄마가 아파트 맞은편 동으로 구급차와 경찰차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외친 말이었다.


“경찰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니 누가 죽었나보네. 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구급대원들은 사람이 숨이 붙어 있으면 살리려고 애를 쓰지만, 숨이 끊어진 사람은 먼저 손대지 않는대. 일단, 경찰이 먼저 확인을 해야 하나봐. 정초부터 사람 죽어 나가는 걸 보면 뭐가 좋겠어. 그러니까 다들 보지마.”


“엄마, 죽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뭐 있어? 결국, 죽음도 삶의 일부인걸... 요새는 TV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많이 해? 미국의 예일대에서는 죽음에 대한 강의가 17년이나 넘게 인기가...”

뒤에 이어질 책(죽음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는 


“암튼, 그래도 정초부터 죽은 사람 실려 나가는 거 일부러 볼 거 없으니 고개 돌리고 커피나 내려라~~~”

라는 엄마의 핀잔에 묻혔고, 나는 구급차가 보이는 거실쪽을 등지고 입을 삐쭉이며 커피를 내렸다.




“죽는 건 하나도 두렵지가 않은데, 죽는 순간이 두려워. 아플까봐... 그래서 못 죽어 ㅋㅋ”

20살 중반, 혹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적 인물로 비춰질까봐 진심은 ‘ㅋㅋ’, 과장된 가벼움 속에 숨긴 채 말했었다.     


10년 전, 예일대에서 17년간 죽음에 대해 강의를 했다는 ‘셸리 케이건(죽음이란 무엇인가)’ 교수님께서 혹시 나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있는 ‘상태’를 두려워하는데, 당신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있군요. 그건 적절하지 않아요.”

하고 말해 주셨다면 나의 두려움이 조금은 덜 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일원론, 이원론, 형이상학, 존재의 본질, 어쩌고 저쩌고... 무지하게 멋진 말들을 끌어다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개뿔 아닌 걸?     


진 것이 없으니 좋은 것을 빼앗길 것도 없는 삶이라고 생각해서 죽음의 ‘상태’가 두렵지 않았던 시절.

영생이고 뭐고 사는 것도 이렇게 지긋지긋한데 죽음 후에 뭔가가 더 있다면 그게 더 두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던 시절.

그 시절에 가지지 못했던 것, 그래서 나를 한없이 불행하게 만들었던 건 그저 대한민국의 정교사 타이틀, 명품몸매, 그에 걸맞은 남자친구, L사의 가방이었는데 어찌 감히 존재의 본질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20대 때에는 한없이 '현재'에는 부재하는 어떤 것들을 욕망하느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끝없이 불안했다. 내년에는 20kg을 감량해야지... 정교사가 되면 여행을 가야지... 그러나 ‘현재’가 없는 '미래'가 어디에 있으랴. 이런 저런 핑계와 불안감으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내게 주어지는 몫은 항상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현재' 뿐이었다.


그러다가 30살.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예술 작품을 보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조금씩 행동에 옮기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클림트의 '키스'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클림트의 ‘키스’를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자의 타오르는 욕망이 단순한 듯도 보이는 몇 개의 선(남자의 목미, 입, 눈썹부분)을 타고 넘어와 내 가슴을 짠하도록 찌릿하게 만들던 순간, 나는 내가 ‘현재’, ‘이 자리’에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림에 대한 감탄과 그동안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들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흘려버렸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아!’하는 외마디 감탄사로 터져 나왔었다.      


설렘을 캐리어에 싣고 여행하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며, 비루한 삶의 현장에서 분노를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죽음의 순간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고 살지 않는다. 벨베데레의 궁전에서 엿본 한 남자의 욕망은 내게 '현재'를 욕망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나는 이제 내가 예전에 가졌던 죽음의 순간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사실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의 다른 버전이었음을 안다. 이제 나는 죽음이 다른 의미로 두렵다. 비록 대단한 글이 아닐지라도, 퇴근하고 새벽 1시가 넘을 때까지 쓰는 이 즐거움을 박탈당할까봐 죽음이 두렵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글쓰기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삶 속에서 박탈당할까 두려워하는 각자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하며 잠을 청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감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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