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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06. 2016

여전히 감히 ♡♡♡

3월 2일, 대부분의 학교가 개학을 하는 날이다. 출근하는 길에 ‘카 : 지은아! 종원이(아들) 초등학교 입학 축하해.’, ‘카 : 나는 개학 첫날부터 지각할까봐 조마조마해...’, ‘카 : 복직이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파이팅이야!!!’ 2년 전 내가 그랬듯이 학교로 출근하는 친구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들은 내가 더는 교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설렘과 긴장이 묻어나는 친구들의 메시지는 미친 듯이 정신없는 개학 첫날의 일상으로부터 내가 한 발짝 비껴서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학교에 있었다면 첫 인사에, 각종 조사에, 청소에 정신이 없었을텐데, 나는 오늘 대학 새내기들이 사용할 한자 교재의 편집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단순한 업무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의 마지막 아이들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를 떠올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익숙하지 않은 엘살바도르 커피가 과연 어떤 맛을 낼지 설레는 마음으로 봉지를 뜯었다. 2년 전,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날 때도 그랬었다. ‘연극영화과 2학년 아이들이라는데 개성이 얼마나 철철 넘칠까? 다들 아이돌 멤버처럼 생긴 건 아닐까?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들 같은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을 하며 걱정과 기대와 설렘이 버무려진 마음을 안고 학교로 향했었다.


봉지를 뜯으니 크기는 작지만 동글동글 예쁘게 생긴 홀빈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보관통에 담으려 봉지를 기울이니 고르게 중배전 된 갈색의 홀빈들이 웃으며 인사를 하듯 우루루 쏟아져 내렸다. 아이들도 그랬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여느 고등학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모델 뺨치게 키가 큰 아이도, 첫눈에 봐도 후광이 비칠 정도로 스펙터클한 외모를 가진 아이도 우리 반에는 없었다. 건강한 웃음을 가진, 예의바른 아이들이 내 눈에는 그저 동글동글한 홀빈들처럼 예뻐 보였다.




어쨌든 커피는 쓰다. 엘살바도르 커피는 쓴맛이 강하거나 지배적인 커피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든 엘살바도르 커피에서도 역시 쌉싸름한 쓴맛이 났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내게 쓴맛을 안겨줬다.   

  

3월 초, 나는 통하지도 않을 어설픈 공식을 아이들에게 적용했다. ‘학기 초에 아이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1년이 고달프다!!! 학기 초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잡는다!!!’ 아이들이 참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괜히 아이들의 머리와 교복 상태를 트집 잡으며 깐깐한 선생님 코스프레를 했다.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 및 용의상태에 대해 체크하라며 자기관리 점검표를 만들어주고 압박했다. 흰자위가 눈의 2분의 1을 차지하는 눈빛으로 아이들은 나에게 말했다.

“쌤은 저희를 몰라요.”  

   

2개 학년의 수업 준비, 3월 초에 이 몰려있던 담당 업무, 토요일에도 이어지는 아이들의 공연까지... 항상 시간에 쫓기며 수라도 하지 않을까 불안했던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소소한 일들까지 참견하는 게 아이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했지만, 정작 아이들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밤새워 영화를 찍고 배우처럼 연기아이들을 볼 때면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아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힘들다는 핑계로  감정에만 몰두했던 시기, 그래서 정말로 나는 아이들을 몰랐다.




그러나 커피는 달기도 하다. 엘살바도르 커피는 단맛이 좋고 구수하며 부드러운 커피였다.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달하고 구수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아이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본 후, 내가 정말 자율적인 아이들의 담임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회의를 하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후, 내가 정말 멋진 아이들의 담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반 아이들은 약속을 하면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다. 영혼 없이 대답만 "예.. 예.."하며 한 귀로 흘려보내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일방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볼멘소리를 했던 거였다.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은 잃지 않는 아이들 회의 시간에도 처음에는 날카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다가 점점 다른 친구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나중에 줄곧 나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에 내 속을 많이 썩 게, 버릇없이 굴었던 게 미안하다고... 그런데 나는 혀 버릇없다고 느꼈던 적이 없으니 이 얼마나 버르장머리가 있는 아이들이란 방증인가.    

학기 초, 내게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지난 해 담임선생님을 따르고 챙기던 모습이 오히려 진심으로 예뻤다. 아이들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처음으로 담임을 맡으시고 아이들에게 애정을 정말 많이 쏟으신 분이었다. 기본 생활습관, 내가 놀랐던 학급회의 분위기 등, 많은 부분들이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애쓰신 덕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 담임 만났다고 쪼르르 달려와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좋았다. 그만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할 줄 아는 아이들이라서 더 예뻤다.




커피는 밸런스도 중요하다. 엘살바도르 커피는 단맛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약간의 산미와 쓴맛이 부드럽게 조화를 이뤄 밸런스도 괜찮았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조화는 가장 큰 강점이었다.

    

한 사람씩 보면 모두 개성이 뚜렷한데, 모두 모였을 때는 조화를 이루는 게 아이들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아이들은 회의를 통해 규칙을 정한 후, 그것을 지키며 1년 동안 지각비를 모았었다. 학년이 끝날 때쯤에는 학급비가 상당히 모여서 2학년 마지막 날에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을 수 있겠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몇 몇 친구들이 공놀이를 하다가 재규어 후미등을 깨뜨렸을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논해서 학급비로 자동차 수리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결국, 공놀이를 했던 친구들이 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모은 돈인데 본인들을 위해 쓸 수는 없다고 해서 한 아이의 어머님께서 보험처리를 해 주시면서 아름다운 미담이 마무리되었다.      


통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외모나 개인적 기량 면에서 개개인이 특출나게 두드러지는 학년이 아니기 때문에 입시 국면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 돋보이겠다고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없어서 그 어느 학년보다 조화로운 공연을 만들어냈던 아이들이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옆에 있는 동료들의 기량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배우라면 언제든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동기들에게 따뜻한 마음 또한 내어줄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아이들이니 어느 곳에서든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 낼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나의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셨던 말을 이 아이들을 보면서 종종 되새겼었다.

오늘 밤, 쌤은 여전히 너희를 “감히 사랑한다.”고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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