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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21. 2016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고 있을 뿐!! 미치진 않았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 출근길.

편의점에서 산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들고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여자,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포역 주변거리를 뭐 대단한 게 있는 것인 양 아침부터 ‘찰칵~찰칵~’ 사진 찍고 있는 여자를 만났더라도 당신은 오해할 필요가 없다. 혹시 아침부터 재수 없게 미친년을 만난 건 아닌가 하고 오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녀는 다만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고 있는 것뿐이니까.


이 길 끝에 개선문(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끝에 있음)이 없을 지라도, 천 원짜리 모닝커피 한 잔이면 낭만적으로 출근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아!!!

쓴맛은 어디로 갔는지, 연하디 연해서 구수한 보리차 물처럼 느껴지는 편의점 커피를 마시면서도 ‘레드~~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를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스위스 취리히의 '케 다리'에서 찍은 사진

“여기가 어디인 줄 알겠지?”

내가 물었을 때, 나는 당연히 친구가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오~~ 취리히네^^ ‘케 다리’에서 찍었구나?’


그런데 뜻밖에도 친구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어디야? 유럽이야? 스페인인가?”

물론, 구입한 지가 7년도 넘는 오래된 노트북으로 나누는 화상통화이니 화질이 오죽했겠냐마는... 그래도 뾰쭉뾰쭉뾰쭉 '프라우뮌스터', '성피터 교회', '그로스뮌스터'의 탑을 보고도 저런 소리를 내뱉다니... 나보다 나이가 10살은 더 많은 친구에게 벌써 노안이 온 것은 아닌가를 의심하며 도저히 참지 못하고 주제넘게 또 한 소리를 했다.


“설마, 여기가 어디인 줄 몰라보는거야?(우리나라에서는 한 살, 한 달 차이가 참 무서운데... 모든 상대가 ‘you'로 통하니 정중한 표현을 모르는 영어무식자한테 10살은 눈 하나 깜짝 않는 나이차이가 돼 버린다.) 네가 매일 보는 취리히야. 넌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는지 모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살고 싶은 나라로 손꼽는 지 알아? 너는 정말 감사할 줄 알아야 해~~~”


순간 흥분해서 갑자기 하느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광신도처럼 호들갑스럽게 돌변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너는 뭐가 그렇게 항상 감사하고 행복하니? 넌 정말 그렇게 행복하니? 난 가끔 네가 신기해 보일 때가 있어.”

“Sure!!! I'm really really happy."

하고 말하는 데 사실 속이 약간 ‘뜨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마포대교 북단에서 찍은 한강 사진

어느 날 누군가 뜬금없이 한강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어디인 줄 알아?”하고 물어온다면

“오~~ 아름답다. 마포대교 북단에서 원효대교 쪽을 바라보고 찍었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매일 보는 일상의 공간을 나는 얼마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보니 영~ 자신이 없다.  

   

나에게 유럽은 치열한 삶에서 조금은 빗겨서 꿈을 꿀 수 있게 만드는 낭만의 공간이지만, 내 친구에게 유럽은 그저 삶의 공간이다. 때론 듣기만 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오래된 성당의 종소리가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방해하던 훼방꾼이었다고 친구는 말했었다. 나에겐 로맨틱한 야경을 속살처럼 품고 있는 취리히가 친구에겐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때로는 상사와 다투기도 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묻어 있는 공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끝에 2년 전 겨울 여행 중에 썼던 다이어리의 한 구절이 떠올라 친구와의 통화가 끝나고 펼쳐보았다.          


지은이가 카톡으로 부럽다고 말했다.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지금. 일상과 멀어진 그만큼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나 자신에게 충실했던 순간들... 물론 나는 지은이가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시간을 갖고 있다.

부러움으로 안부를 전하는 지은이가 고마워 너스레를 떨면서 나는 지은이에게 말했다.
“정말 좋아. 그런데 잘 지낸다고 안부 전하느라 행복한 사진들만 올리는 거지, 여행도 삶인데 왜 힘든 순간이 없겠어? 밀라노에서는 기차에 팔이 끼고, 볼로냐와 베네치아에서는 체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허리를 굽혀 할머니처럼 걸어다니고, 베네치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갈 때는 야간열차를 타고 당최 지금도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이름도 모르는 역 대기실에서 새벽 2~3시에 노숙 아닌 노숙을 하고, 두브로니크에서 자그레브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결국 토까지 했다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기꺼이 감내하고 즐기게 만드는 게 여행이니, 삶이 여행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집에 돌아가서도 내게 주어진 삶을 여행처럼 즐길 줄 안다면 큰 지혜를 얻는 거겠지... 힘든 삶의 고비를 마주했을 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생각들이 나에게 큰 힘을 실어 줄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2년 전, 여행 중에 쓴 다이어리를 읽고는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겠답시고 이 길 끝에 개선문이 없을지라도 “오~~ 샹젤리제” 노래를 부르며 낭만적으로 감사하게 출근을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뿐!!! 미친년은 아니니 부디 오해들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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