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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27. 2016

‘다시 산다면’이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월요일 퇴근길에 친구의 ‘브런치’에 들렀더니

“일요일 저녁입니다. 내일은 월요일이지요. 내일 출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시가 한 편 올라와 있었다. ‘나딘 스테어’라는 사람이 쓴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시였다.     


85세의 할머니께서 인생을 돌아보면서 쓰신 시라고 하는데, 건방지게도 읽는 중간중간에 ‘오!! 나는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내 인생의 소중한 명장면들과 함께...




시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됐다. (박스에 있는 내용들은 전체 시 중에서 임의로 부분만을 발췌한 것입니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굳이 농활 티셔츠를 챙겨 입고 학교에 기어나갔다. 과도하게 술을 처(누가 봐도 곱게 마신 것은 아니니 적확한 표현을 위해 빼 먹을 수 없는 한 글자다.)마시고 공공장소에 과하게 실례를 했다. 나의 가슴팍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농부가 깃발을 들고 있었고 배에는 투쟁의 냄새가 물씬나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개처럼 끌려 들어와 동기 앞에서 엄마에게 싸대기를 맞았고, 자퇴서를 작성하시는 아빠앞에서 석고대죄하며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서른도 훌쩍 지나 나간 소개팅

봄처녀의 기운을 낯모를 오라버니께 전해드리리라!!! 야심차게 분홍색 코트를 사 입고 나갔다. 생전 처음으로 했던 분홍색 네일아트는 옵션이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소개팅’을 검색 했던가 어쨌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현모양처를 꿈꾸는 60년대 규수 흉내를 내다가 상대방을 두 번은 못 만났었다.


할머니께서 더 많이 저지르고 싶으신 실수가 이런 것이야 아니겠지만...

암튼, 85살 할머니에 비하자면 그 반도 못 살아온 인생이지만, 생각만 해도 ‘콱! 죽어버리고 싶은’ 실수는 이 밖에도 ‘하도 할샤(많기도 많구나)’다.



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
산도 가고 강에서 수영도 즐기리라.
아이스크림도 많이 먹고


나는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부자가 아니라서 여행을 더 자주 가기 위해

저 편한 세상의 아파트에 살겠다는 꿈을 꾸지 않는다. (감당 못할 견적때문은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답은 못하겠지만)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에 성형수술을 적지 않는다. 여행 중에 산 8만원짜리 가죽가방을 명품가방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자가용이 없이 출퇴근을 하면서도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또 걸으며 돈 내고 헬스장에 안 가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노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퇴근하는 길, 마포대교를 건너며 바라본 노을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객愁수도 둘 듸 없다.’ 부분에 밑줄 쫙~ 나그네의 객수..."

‘객수(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이나 시름)’라는 단어가 고작 몇 평되는 좁은 교실에서 밑줄 쳐가며 배우기에는 너무도 크고 깊은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여행 중 노을을 보고 객수를 느끼며 깨달았다.


프랑스 남부, 모나코와 니스의 중간에 있는 ‘Beaulieu-sur-Mer’ 해변에서


프랑스 남부, 모나코와 니스의 중간에 있는 ‘Beaulieu-sur-Mer’ 해변에서 보낸 오후.

휴대폰은 숙소에 남겨둔 채, 수영복만 챙겨 입고 나가 남부 프랑스의 따뜻한 햇살을 만끽했던 오후.

‘찰칵!! 찰칵!!’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할 수는 없는 인생의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며 내 생에 최고의 순간을 가슴 속에 ‘오롯이’ 새겨 넣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좌), 스페인 살라망카(우)에서

밥 챙겨먹을 정신도 없이 싸돌아다니는 여행객에게 아이스크림은 천주교 미사 시간에 받아 모시는 성체와도 같은 법이다.



보라, 나는 매 순간을,
매일을 좀 더 뜻깊고 사려 깊게 사는 사람이 되리라.
(중략)
그리고 순간을 살되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라
먼 나날만 바라보는 대신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리라.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고 장담은 못하겠다. 그저 죽을 때까지 매 순간을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싶다.



이제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보다 간소한 차림으로 여행길을 나서리라.


2013년에는 배낭 하나 메고 가장 간소한 차림으로 여행길을 나섰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 떠난 라오스 여행에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데이지 꽃도 더 많이 보리라.


스위스에서는 기차나 케이블카를 타는 대신, 하루에 10시간씩 산행을 한 덕에 더 많은 꽃을 볼 수 있었다.

60일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요란스럽게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엄마는 내가 신발을 벗기 전까지만 반가워했다. 내가 신발을 벗자마자 엄마는

"우웩... 뭐야? 내 평생 이렇게 썩은내는 처음이야!!!"

호흡곤란을 동반한 구토 증세를 보이며 나를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일주일 후, 엄마가

"어떻게 된 냄새가 일주일이 돼도 안 빠지냐? 아무리 생각해도 회생 불능이야. 그 신발은 버려."

라고 말했을 때, 나는 화답했다.

"흐음... 나는 이 냄새가 알프스의 꽃향기처럼 느껴지는 걸?"




내가 이렇게 건방지게 85세의 할머니께서 ‘다시 산다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지금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브런치’에 글을 올린 친구 덕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나조차 고민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 준 친구였다.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지 뭐.", "나는 네가 꿈이니 열정이니 하는 말을 할 때면 듣는 것만으로도 지쳐. 지금도 이렇게 충분히 힘든데? 난 내가 좀 열심히 안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하고 어린 아이가 심술 부리듯 툭툭 내뱉는 말들도 귀담아 들어주는 친구였다.


내면의 불안을 견뎌내지 못하고 툴툴 내뱉는 소소한 말들을 지나치지 않던 친구가 상황에 딱맞는 책을 추천해 주면 나는 그걸 읽고 넘어지지 않았다. 급기야 친구는 나를 주말 독서토론 모임에 끌어내더니만 모임이 끝나면 두 시간씩 청계전을 함께 거닐며 붙잡고 얘기했다. 내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을 두고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논리적으로 반박해 줬다.


친구랑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청소년기에 못 이룬 발달 과업을 이룰 수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아정체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거다.


이런 친구가 전하는 시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내 인생의 소중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가슴속에는 고마운 마음이 자리잡는다.

 

남들 다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을 자기 발로 걸어나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친구가 전하는 시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름아, 2012년 우리의 여름 여행이 기억나니? 체코에서,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었던 내 감정들이 마구마구 분출되던 순간을 기억하니?


2012년 여름 밤. 체코의 프라하성을 배경으로...


15년을 만나왔던 우리였다.

무던히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내가 그토록 여과없이 감정을 분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소한 것들에도 격하게 감동받는 모습을 보면서...

여행하는 내내 낯선 나의 모습을 보면서 너는 그동안 내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

이때부터다. 네가 나에게 질문을 하고, 책을 추천하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게.


카페에 앉아서 하루 종일 책을 보고 싶다는 너를 끌고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도 다녔던 여행이었다. 그 해 여름처럼, 우리에게 그런 행복한 여행의 기회가 다시 온다면 그 때는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진득하게 카페에 앉아 종일토록 이야기하고 책을 보고 글을 쓰자꾸나.


네가 내 친구여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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