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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Nov 27. 2016

언론은 거들뿐!!!

요새 우리나라 전체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근혜>라는 영화의 촬영 세트장 같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엄석대가 휘두르던 부당한 권력은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 덕에 무너졌다. 엄석대를 전교 1등으로 만들기 위부정 시험을 치른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은 벌을 주고 이렇게 말했다. 석대의 다른 잘못들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이전과 같이 석대에게 학급 일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그러자 아이들은 석대의 잘못을 털어놓았다.


"석대는 제 연필깎기를 빌려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여자 아이의 치마를 들추게 했구요.", "돈을 내면 변소 청소를 안 해도 된댔어요.",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예요.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모두 절 시켰어요. 만약,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중학생 들을 불러다가 절 마구 팼어요.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결국 엄석대는 새로운 임원을 뽑는 중에 "잘 해봐, 이 개새끼들아." 소리를 지르고 교실 밖으로 도망쳤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근혜>에서는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가 도화선이 되었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 수정했다는 보도 이후, 많은 언론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순실이 딸 정유라가 이대에 부정입학했대요.", "대통령이랑 재벌이랑 쿵짝쿵짝해서 재단을 설립하고 자기들 욕심 챙겼대요.", "우리 대통령이 성형외과에서는 '길라임'으로 통했대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기사를 보며 우리는 촛불을 챙겨 광장으로 나갔다. 첫눈을 뚫고 광장으로 달려 나간 190만 명의 우리, 아직까지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4%를 제외한 우리에게 대통령은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영화는 촬영 중이다. "잘 해봐, 이 개새끼들아."라고 소리를 질러도 좋으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누구도 우리에게 촛불을 들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광장에 나가라며 몽둥이를 들고 엉덩이를 때린 사람은 없다.

언론은 거들뿐, 촛불을 들고 정의평화를 선택한 행동은 우리의 몫이다.




며칠 전,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부터 1년 동안의 연설을 미리 구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연설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입장의 국민들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대통령이 얼마나 고심했는 지를 알게 되었다.


참여정부 시절에 나는, 대통령 연설을 귀담아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언론에서 내뱉는 자극적인 단어들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내 나라의 대통령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많은 국민들이 그랬듯,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며 세상사의 모든 잘못을 대통령 탓으로 돌렸다.


조, 중, 동을 통해 세상을 보시는 어르신께서 몇 달 전에 말씀하셨었다.

"대통령이 책을 많이 읽어서 참 똑똑해."

"배가 나자빠진 것을 가지고 자네들은 왜 대통령 탓을 하는 거야?"


같은 어르신이 며칠 전에 말씀하셨다.

"허허 참, 박근혜 그건 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참여정부 시절, 연설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내가 그토록 경솔한 시민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경솔함의 대가로 나는 대통령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연설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셨다면, 여든도 훨씬 넘으신 어르신께서 자신의 일그러진 영웅에게 이토록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언론은 거들뿐, 보도 내용의 행간을 읽고 그 안에서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몫이다.




어떤 언론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실상에 대한 정보는 깊숙이 숨긴 채 겉으로는 거짓된 사탕발림에 열을 올릴 때도, 내가 듣던 팟캐스트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미 2년 전에 최태민과 대통령의 미심쩍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통령이 대답해 주지 않는 세월호 7시간의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분개했다. 그러나 듣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그 끈을 놓치지 않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 정치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항변하다가도 설렘 가득 담아 여행가방을 채울 때면, 정치고 나발이고 불편한 이야기들은 머릿속에서 쏘옥 빼냈다.


때로는 분개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불편한 진실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몇몇 사람들은 그 대가로 부당하게 돈을 챙겼다.


종종 내가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면

"너도 애 키워봐. 그런 생각할 틈이 있나. 나는 요새 동요만 들으며 사는데, 네 이야기 들으면 너무 무섭고 불편해."

하며  미심쩍어하던 친구들도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모두가 눈감고 귀막고 입닫고 있을 때도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주던 사람들은 지금 말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박근혜 하야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박정희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경쟁과 자본주의적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너무나 기본적이지만, 너무나 크고 어렵고 무거운 말들이다.

나는 또 때로 분개하고 때로 도망칠 것이다.

다만, 전력 질주해 도망치다가도 멈춰서 고개를 한 번 돌리고 뒤돌아서 한 걸음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론은 거들뿐,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승만을 찍어준 국민의 눈높이와 4.19 혁명을 일으킨 역사의 눈높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대통령의 글쓰기 >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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