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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Mar 31. 2017

때로는 힘이 되는 잡생각도 있더라.

수술실 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떤 지는 쓸개 빠진 엄마 덕에 알게 되었어. 엄마가 담석증 때문에 수술실에 들어갔던 날,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꼈거든.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쩌지? 그럴 리가!!! 명의라고 소문난 분인데 당연히 잘 되겠지. 선생님 컨디션은 좋으시려나? 전신마취를 하는 게 몸에는 엄청 무리가 된다는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 속에서 수술이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부여잡고 불안감을 떨쳐내려 애쓰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너의 수술 소식을 들었을 때도 너보다 네 어머니가 더 걱정스러웠다. 수술실 앞에서 어머니가 어떤 시간을 보내실지 훤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수술실 앞에서 네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불안한 시간이 조금은 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기 화면에 수술 진행상황이 나와요. 아직 대기중이네요.”

“너 오늘 일찍 오느라 고생했는데, 내려가서 커피 먹자.”

수술실로 들어가는 너를 보며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참으시던 어머니가, 나부터 챙기시더라.

“수술 들어가기 전에 보호자 찾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수술 시작되면 커피 사와서 마셔요.”     

커피를 마시며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고마워. 네가 옆에 있으니까 상황 돌아가는 것도 잘 알겠고, 걱정도 덜 된다.”

“고맙긴요. 어머님 처음 뵌 게, 벌써 24년이에요. 중학교 1학년 때, 일 하느라 바쁜 저희 엄마 대신 어머님께서 챙겨주신 저녁이 더 많았어요. 첫날 저녁으로 해주신 돈가스가 아직도 생생한걸요. 보름이랑 같이 했던 구몬수학도 어머님이 챙겨주셨어요. 제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거 아시잖아요. 지금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좋아요.”

“넌 또 그 소리야. 네 말대로 벌써 24년이야. 잊을 만도 한데 항상 그걸 생각하고 사는 네 마음이 참 귀하다.”

어머니랑 나는 전에도 몇 번이고 했던 이야기를 이렇게 반복하며 너를 기다렸어.

    

“평소에는 둘째 사위가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오늘은 쟤 옆에 든든한 남편이 있었으면 힘이 될까 싶네.”

너한테는 표현하지 않으실 어머니의 속마음을 마주한 나는 짐짓 밝게 대답했다.

“요 짧은 시간 든든하자고요?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지혜롭게 사는 경우도 많지만, 여러 문제들 안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보름이는 자기 생각 확실한 아이인데, 아직 결혼하고 싶은 사람 못 만난 것뿐이죠. 오늘 같은 날 남편 없어서 아쉬울 아이 아니란 거 아시죠? 절대 그런 생각 마셔요.”

“그러게.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이 드네. 지금이야 내가 이렇게 곁에 있지만, 나중에 나도 없을 때는 또 누가 지켜주나 싶어서”

“저 있잖아요. 어머님, 저희에게는 아직 순영이도 남아 있사옵니다. 걱정을 마옵소서.”


시집이나 가라는 말 따위는 입에 담지 으시던 어머니께서 건네는 말씀에 일부러 장난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정말 걱정이 많이 되시는구나, 어머님도 이제 할머니의 마음을 담으실 만큼 나이가 드셨구나’ 싶어 가슴이 찡하던 찰나

     

“어! 회복중으로 넘어갔다. 그럼 수술 잘 끝난 거지?”

“예. 저희 엄마 수술할 때 보니까 마취 깨고 회복되는 시간도 꽤 걸리더라고요. 걱정 마시고 이제 나올 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1시간을 더 기다린 후, 어머니와 나는 네 이름을 듣고 수술실 앞으로 달려갔다. 수술 직후에도 정신줄 놓지 않고 의연히 등장하는 너를 보며, 그런 상황에서까지 조금의 신체 노출도 용납하지 않으려 매무새를 신경 쓰는 너를 보며, 약해졌던 어머니의 마음이 좀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수술실 앞에서 떠오르는 잡생각들을 따라 너의 어머니와 이야기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나눴던 이야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 처음 내비친 마음속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떠오르지는 않아. ‘수술대기, 수술중, 회복중’이라는 단어를 따라 마음 졸이고 가슴을 쓸어내리시던 어머니도 대화의 내용을 잘 기억하실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이날의 잡생각들이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확실히 우리의 불안한 시간을 빨리 지나가게 만들었으니까. 잡생각도 함께 나누니까 힘이 되고 좋은 순간들이 있더라.     


명상책도 읽고, 운동도 해 보고, 쓸데없는 잡생각을 혼자 털어내려 애쓰다가 그래도 안 되면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며 맥주 한잔으로 털어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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