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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Dec 24. 2017

정상 궤도를 이탈한 삶이 아님을...

너의 책이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

책을 출간하기 위한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네가 쓴 글들이 책에 담겨 내게 왔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힘을 얻었다는 사실을 너는 알까?


단어 하나, 문장 하나와 씨름하며 써낸 원고를 투고하던 너. 원고 안에 담긴 노력을 알아봐 주신 출판사 사장님. 읽고 쓸 독자들과 책등에 새겨질 글자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디자이너. 자신의 일을 정성스레 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 책이 우리가 정상 궤도를 이탈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 힘이 났다. 네 책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대학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파트를 장만하는 게 정상 궤도의 삶은 아니야.

사실, 우리 삶에 정상 궤도란 없어.

대학을 그만두고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공무원이 되는 삶, 대기업을 그만두고 글을 써서 작가가 되는 삶,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삶 모두 그저 다양한 삶의 궤도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정상 궤도를 이탈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긴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만의 삶의 궤도를 조금씩 그려내고 있는 거지."


책장을 넘겨 글을 읽기 시작하니 책 속에서 '친구'로 등장하는 나를 만나는 재미가 있더라.

내가 이렇게 멋진 말을 했었나 싶어 어깨가 으쓱해지다가도, 나의 미숙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묻어있는 것 같은 글귀를 만나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끔했다.


네 글을 읽으며 종종 생각했다. 작가를 가까운 친구로 둔다는 건, 매우 선명한 거울 하나를 곁에 두고 사는 것과도 같다고. 가끔 민망할 때가 있긴 하지만, 나를 돌아보며 조금은 더 성숙한 삶을 꿈꾸게 만드니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들춰보게 만들고, 4년 전에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사진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작가 친구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축복에 가까운 일인 것 같아서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네 책을 읽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펼쳐 들었다. 《데미안》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 말해 줬다고 얘기한 친구는 아무래도 나일 테니까.


오랫동안 《데미안》의 서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點)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위의 구절을 읽으며 열등감을 극복했다. 내가 소중한만큼 다른 사람들도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서 정상이라고 제시해 주는 궤도가 아니라, 나만의 궤도 그리는 방법을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데미안》 서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나는 독일 여행을 가서 읽지도 못할 독일어판 《데미안》을 사오고, 기어이 헤세의 고향 '칼프'까지 찾아갔었다.


네 책을 읽고 4년 전에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사진을 다시 봤다. 볼로냐에서 책방 사진을 찍어 보낸 친구도 나일 테니까.


4년 전 겨울, 이탈리아 남부에서 북부로 올라가는 여행을 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볼로냐에 굳이 들른 건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손꼽히는 볼로냐 대학이 궁금해서였다. 법학의 기초를 세우고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가르쳤다는 대학의 박물관도 기억에 남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너에게 보낸 사진 속 장면이었다.  


볼로냐에 도착한 첫날, 미식의 도시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만드는 느끼한 스파게티를 저녁으로 먹고 대성당 주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Librerie.coop'이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라도 도서관 내지 서점 협동조합을 의미한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볼로냐에 가겠다는 내게

"거기 협동조합이 발달한 도시래. 나는 네가 로마에 간다는 것보다 볼로냐에 간다는 게 더 부러워."

하던 너의 대답이 떠올랐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월요일 저녁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 모여 있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니 무슨 행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북콘서트나 저자와의 대화 같았다.


평일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정해진 자리가 다 차자 계단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 듣는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가 함께 이곳에 있다면 우리 모두 더 행복할 것 같아서 네가 그리워졌다.


너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중에 우리 머리가 하얗게 세도 이곳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처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보냈었다. 너도 아직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내 그리움이 네게도 잘 전해진 게 아닐까 싶다.



정상 궤도를 벗어난 삶을 살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분들께 너의 책이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너의 책이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책 한 구절에서 살아가는 용기를 충분히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의 책이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마음 한편에 소중한 꿈을 품고 살아가도 된다는 것을 너의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 정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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