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년 5개월 대행사 마케터 경험 후기
안녕하세요. 마케터 사월입니다.
현재 저는 인하우스 마케터로 근무 중이며 이전 직장은 외부 마케터, 즉 대행사 마케터로 경력을 쌓았는데요.
오늘은 제가 일하면서 느꼈던 ‘대행사 마케터’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해당 내용은 1명의 근무자로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업체의 분위기나 느낌이기에 대행사 마케팅 업계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감안하여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대행사 근무 이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근무 기간: 총 2년 5개월 근무
담당 업체 카테고리: 의류(여성, 남성, 아동), 화장품, 건기식, 쥬얼리, 식품, 가구, 잡화 등 소비재
저는 총 2년 5개월 동안 대행사에서 퍼포먼스 마케터로 근무하였는데, 인턴을 제외하면 정규직으로 제대로 된 실무 업무를 한 기간은 2년 정도로 당시 10-12개 정도 업체를 담당했었습니다.
업체 규모에 따라 들어가는 리소스는 배분 되었고, 10개지만 실제로 매일 체크했던 업체는 4-5개 정도 됐었습니다.
정규직으로 다녔던 회사를 기준으로 제가 다녔던 회사는 워라벨이 정말 좋은 대행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워라벨로는 대행사 중에 손꼽을 정도였는데요.
대부분 정시 퇴근이었고 매출 압박이 있긴 했지만, 패널티를 주고 압박의 강도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팀바팀이긴 했으나 푸쉬가 많은 업계 특성 대비 압박감이나 규제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규모가 좀 큰 회사여서 내부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데이터로 업체를 설득하거나 데이터 감각을 키우는 데 좋은 곳이었습니다.
앞서 근무환경에서 얄팍하게 칭찬을 했는데, 이제부터 당시 느꼈던 생각들을 여과없이 적어보겠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는데, 필요하신 부분만 걸러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있었던 회사는 워라벨이 업계 탑티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좋은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대행사는 밤 12시, 새벽 퇴근이 기본입니다. 업체가 이벤트를 주말에 하게 된다면 주말 출근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 되며, 퇴근 후 전화로 응대하는 것도 기본 업무 중에 하나가 됩니다.
워라벨이 좋았던 저도 업체가 주말 이벤트를 오픈하면 노트북을 켜서 이슈가 없는지 체크했고, 데이터를 살펴봤습니다. 휴가 때 들어오는 응대 및 요청에 대해서 근무일처럼 처리해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건, 대행사 마케터가 담당하는 업체는 1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하우스 마케터는 근무하는 회사의 이벤트와 이슈에 대해서만 신경 쓰면 되지만, 대행사 마케터는 10개 이상의 업체를 들여다 봐줘야 합니다.
'퇴근이 없는 느낌이다' 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개인의 워라벨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대행사는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신입이고 기술직도 아닌 저희에게 월급을 많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행사는 철저한 을입니다.
갑인 광고주의 말에 울고 웃어야 하며, 말이 안 통하는 광고주는 정말 많습니다. 물론 대행사도 성과가 안 나오는 것에 대해 말 지어내기 식 방어를 할 때도 있지만, 대행사도 성과가 잘 나와야 광고주와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좋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전략을 주려고 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거나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뱉고 보는 비상식적인 광고주들 정말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받아주고, 설득하면서 광고비를 쓰도록 하는 게 대행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내부 마케터들보다 높은 월급? 취업하기 쉬운 대행사? 왜 취업 시장에 공고가 많고, 돈 많이 받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 월급은 스트레스 값
저는 동종업계 성과, 매체 성과, 내가 했던 경험들을 기반으로 매체를 운영했고, 타당하다고 느끼지 않으면 test를 망설이는 편이었습니다. 확신이 있는 것들로만 운영을 했던 편인데, 사실 대행사에서 일하면서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해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팀에서 시킵니다) test를 해봐야 더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테스트는 필수 값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성과 지표로만 평가받는 대행사 마케터는 어쩔 수 없이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해 말 맞추기 식 방어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담당하는 A 업체의 매출이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유입수가 늘었다는 희망 같은 소스가 있을 때 대행사 마케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정말 심플하게 답변한다는 가정으로)
자사 유입 수는 증가해 모수 확보가 되었고, 해당 모수의 간접 영향이 15일 이후에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15일 이후에 성과?’ 중복 전환일 수도 있고, 이걸 설명하려면 기여도를 얼마나 볼 것인 사전에 정의하고 실매출과 비교 및 분석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데이터를 뽑고, 기여 모델을 구축하는 등 일이 늘어나게 되는데 1개 업체에 들어가는 리소스가 과하다고 판단해 광고주에게 위와 같이 ‘방문은 많았다, 인지가 있는 유저들이 추후에 구매를 일으킬 것이니 15일 정도 지켜보자’ 심플하게 설명하고 방어합니다.
저는 이런 방어를 하면서 현타를 많이 느꼈는데요.
하지만 이는 업체의 생태계에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부 마케터였다면 테스트 값이 좋지 못해도 이런 이유가 있고 설명하면 내부에서 받아주지만, 외부마케터의 성과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하며 맘에 안 들면 다른 대행사를 이용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대행사 입장에서는 말 맞추기 식으로라도 업체를 데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 편으로는 이건 대행사를 사용하는 업체들의 사고 변화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걸 악용하는 대행사들도 많기에, 업체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이건 어쩔 수 없는 딜레마이며, 개선하기 어려운 생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대행사를 이용하는 업체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담당하는 대행사 마케터가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라면, 성과에 대한 바운더리를 넓혀주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러면 진짜 더 괜찮은 테스트를 해주려 노력하며, 말맞추기 식으로 속이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대행사의 KPI는 광고매출입니다.
물론 업체의 매출이 좋으면 광고비 증액을 할 수 있는 배경을 갖출 수 있지만, 대행사는 업체의 성장 여부를 떠나 광고매출을 얼마나 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좀 과하다고 느끼는 광고비를 제안할 수밖에 없으며, 한마디로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아내려고 합니다.
제가 이직을 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었는데요. 저는 업체를 성장시키기 위해 광고를 태우려고 했습니다. 즉, 내부 마케터의 관점에서 일하려고 했고, 보수적으로 매체 test를 하고 광고비를 증액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일하는 회사의 목표가 아니었기에 더 하라는 푸시를 많이 받았고 그게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대행사에 있으면 정말 정말 다양한 매체의 세팅부터 운영 노하우까지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많은 광고 상품이 존재했나 싶을 만큼 다양한 매체를 접해볼 수 있고, 세팅 전 계정 이관부터 스크립트 설치까지 관련된 여러 업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광고 상품이나 매체 성과가 나오면 가장 먼저 전달되는 곳이 대행사 업계이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노하우도 많고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건 사람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노력하면 배울 수 있는 곳은 확실합니다. (영업만 하는 대행사를 제외)
모든 업계가 그렇지만 이곳에도 실력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다른 업계와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잘 보인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정성적인 것보다는 정량적인 지표로 결과를 보고하다 보니 분명하게 실력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연차가 높다고 잘하지 않고, 연차가 짧다고 못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차에서 오는 경험치를 절대 무시할 수 없지만, 수치적인 성과로 평가받는 직무이다 보니 매체 운영에 대한 실력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이는 연차와 무관합니다. (단, 업체를 대응하는 스킬에서 연차 경험치는 확 차이남)
그래서 막 업계에 들어간 분이 계시다면, 가능하면 잘하는 분이랑 친해져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주워듣는 것만으로도 엄청 도움이 되거든요.
광고비 증액, 미디어믹스 제안, 매체 확장, 담당 업체 케어 모두 영업입니다.
담당 업체를 달래고, 가끔은 가스라이팅(?도 하면서 목표한 광고 매출을 달성시켜야 하죠.
마케팅만 한다? 매체 운영만 한다? 그건 업무의 일부이며, 어떻게 보면 해당 직무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광고주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콜영업 같은 걸 하지 않는 대행사 사람들이여도 사람 대응 스킬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다르게 말하면 사람을 상대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입니다.
생각보다 업계는 정말 정말 좁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될지 모른다는 걸 잊지 마세요.
대행사도 많고 이직도 많다 보니 "어 걔 거기 갔다는데?" 이러는 순간 이직한 회사에 나의 전 회사의 히스토리가 퍼지는 곳입니다. 퇴사를 말하고 사람들이랑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어디 가면 알려달라” 였는데, 그 뒤에 따라붙는 말이 “어디 가면 아는 사람 있어서 금방 아니까 그냥 직접 말해줘요” 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 업계가 진짜 좁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업계가 그렇지만 이곳도 말 많은 곳이라는 걸 잊지 말고 말과 행동을 단정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직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글을 적으면서 ‘그땐 그랬지’ 라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같은 마케팅 업무여도 어디에서 일 하냐에 따라 정말 다르다 보니 2년 넘게 했던 업무가 아늑하게 느껴지네요.
단점을 많이 적긴 했지만, 분명히 장점도 존재하는 곳입니다. 내가 커리어를 어떻게 시작하고 꾸려가고 싶은지 잘 생각하고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제 막 취업을 시작하는 사회초년생들이 시작을 잘 정하시길 바랍니다. 요즘은 평생 직장이 없어 이직을 하면 되지만, 저는 첫 회사에 쌓는 정보들이 다음 경로를 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업계를 모르는 신입분들에게는 더더욱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