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의 '인'의 관계, ICT
ICT산업
전자계산기에서 시작한 트랜지터 컴퓨터의 출현은 세상을 바꾸었다.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초 은행에서 최초로 전산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개용용 컴퓨터(PC)가 보급되었고, 이미 1970년대에 미국의 국무성과 대학에서 시작된 인터넷(Inter-Net)에 세계가 연결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95년을 전후하여 인터넷이 상용화 되었다.
PC통신 이라는 텍스트 기반의 통신을 거쳐 검색엔진과 메일, 뉴스 서비스가 인기를 끌었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확대되더니, 이제는 방송과 빅데이터 까지 발전하였다. 이젠 휴대전화도 음성통화 보단 데이터 서비스 위주로 사용되고 있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각종 공공서비스와 기업의 업무를 비롯하여 전자상거래까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자리잡았다. 실로 정보혁명의 시대라 할 것이다.
ICT는 반도체, 통신, 데이터, 금융, 미디어 등 현시대의 전반에 걸쳐 있다. 심지어 앞서 거론한 자동차와 제품생산 공장자동화(Factory Automaion)에 까지 이른다. 4차산업혁명의 인공지능, 블록체인, 로봇도 정보통신기술에 해당한다. 이 기술의 핵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1926년 런던-뉴욕 간 대서양을 횡단한 해저케이블로 연결, 최초로 전화통화에 성공하고 또 50년 후에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었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대안일까?
플랫폼 경제라고도 불리며 산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플랫폼 경제(platform economy)는 플랫폼 의해 촉진되는 경제 및 사회 활동이다. 가장 일반적인 유형은 "디지털 중개자"(digital matchmaker)라고도 불리는 "거래 플랫폼"(transaction platform)들이다. 거래 플랫폼의 예로는 아마존(Amazon), 에어비앤비(Airbnb) 등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혁신 플랫폼"(innovation platform)으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플랫폼에서 작업하는 많은 독립 개발자(independent developer)들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기술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플랫폼 경제가 지속가능한 3차산업의 대안이 될 것인가? 좀더 지켜볼 일이지만, 금융 또는 ICT산업 처럼 새로운 창조가 없다면 그저 중계에 머무를 것이다. 위에 예로 든 글로벌 기업들은 현재까지 그렇지 못하다. 플랫폼 참여자인 공급자와 수요자를 단순 연결할 뿐이다. 물론 그 중계방식에 있어 실시간으로 개별 맞춤하고 있다는 것이 기존에 있던 서비스와 차별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전에 있었던 구글, 애플, 페이스북 처럼 없었던 서비스 자체를 창조하는 비즈니스가 생겨나야 한다. 새로운 서비스가 생겨나고 그 플랫폼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새로운 공급-수요자가 생겨야 신산업으로서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다.
1차산업에 머무른 동양, 서양에 패권을 내주다
우리나라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하멜(Hendrik Hamel(에 의해서다.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의 상선 스페르베르(네델란드어로 매(새)의 뜻) 호에 타고 있던 하멜과은 풍랑을 만나 제주에 표류했다. 조선의 왕 효종은 한양으로 불러 훈련도감에 벼슬을 주기도 하였으나, 한 여름에 서리가 내리는 등 이상기온 현상으로 흉년이 들어 굶어죽는 백성이 속출하는 상황에 하멜일행 중 몇이 굶어 죽는 등 방치? 되었다가 1666년 일본으로 탈출하였다. 한양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하멜은 먹고살기 위해 장터에서 광대처럼 대우 받기도 하였다. 조선의 정부와 시민은 그저 동물원의 코끼리를 보듯 하였던 것이다.
마치 영화 ‘천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코끼리 이야기와 같다. 장영실을 처음 만나는 장면. 물시계 그림에 나오는 코끼리가 없어 물시계를 만들수 없다고 장영실이 답하자, 세종이 왜국에서 선물로 바친 코끼리를 생각해낸다. 시종에게 그 코끼리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너무 많이 먹어 굶어 죽으라고 전라도로 보냈다고…폭소하게 만드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하멜도 이와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다시 하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이 당시 네델란드는 인도의 서쪽의 무역을 장악하였고, 동쪽 즉 중국과 일본에 대한 무역에 열심이었다. 중국의 도자기(차이나)와 일본의 은과 같은 상품을 유럽으로 가져가 거래하고 있었다. 20대의 하멜이 근무했던 상선도 이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 소속이었다. 하멜은 상선에 탑승한 군인 또는 경호원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풍랑에 표류했고, 13년을 비자발적 근무지 이탈? 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하멜은 동인도회사에 자신이 근무를 하다 표류하였으니, 15년에 달하는 급여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근무일지인 ‘하멜표류기’를 집필하여 회사에 제출한다.
17세기 네델란드는 무역, 금융의 중심지 쳤다. 전 세계를 누비던 상선의 침몰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제도, 증권거래소와 같은 활발한 주식거래제도가 있었다. 바로 동인도회사가 세계최초의 주식회사로 인정되고 있다. 심지어 네델란드에서는 튤립의 뿌리에 대한 투기바람이 불어 가격이 100배 넘게 폭등하는 일도 있었다. 램브란트와 같은 화가, 예술가가 몰려들었고 문화적으로도 세계 최고였다. 이렇게 금융, 무역 산업이 번창했던 유럽과 달리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우리는 그저 1차산업 중심, 가내수공업 수준의 2차산업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
일본은 달랐다. 일찌기 적극적으로 유럽과의 무역에 나섰고, 나가사키 항을 개항하였다. 하멜은 자신의 근무일지에서 조선이 중국에 속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조선을 건너뛴 일본을 무역 상대로 하였다는 것이다. 효종 정권이 보여준 태도에 비추어 보면 이 말이 근거 없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조선시대는 서비스업이 거의 없다 시피 하였다. 기껏해야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시전’과 무허가 소매업인 ‘난전’의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정도였다. 심지어 제조업과 상업을 천시하였고, 아니 경멸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경제의 태동은 불가능했다.
하멜표류 500년 전 당나라의 수도 ‘서안’은 세계 최대의 도시 였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17세기 부터 시작된 동양문명의 뒤쳐짐(산업적, 경제적)은 오늘까지 근 300년을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제조와 서비스산업의 전쟁
2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제조와 서비스산업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새 세로운 산업, 4차산업이 태동할 것인가?
서비스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대오를 형성하였고, 제조산업은 중국이 선두에 있다. 미국은 금융서비스산업을 장악하고 전세계의 돈은 움직였다. 월스트릿의 은행, 투자, 투자자문 등 요소요소에 전세계의 가장 우수한 인력이 지속적으로 몰려들었다. 월스트릿은 세계 자본시장의 심장이 되었고, 워엔버핏과 같은 대부가 그 심장을 지휘하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금융산업은 유대인이 일찍부터 뛰어들었고, 그들의 입김이 크다.
미국은 긴축통화 발행국으로 세계금융시장의 룰을 만들어왔다. 무역에서 결제되는 화폐로서 미국 달러가 사용된다. 또한 기업은 물론, 국가까지 신용에 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도 미국의 기업이 독점적이다(무역에서는 그렇다). 시장의 룰을 정하고, 자신들의 화폐로 거래되는 세계 금융서비스산업은 넘을 수 없는 미국의 파워가 된 것이다. 그러나 2009년 “Occupy Wall st.” 미국시민들에 의해 일어난 시위는 1%가 99%의 부를 독점하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강력하게 반대의 목소리가 울렸던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그 1년전에 미국의 금융위기는 4-50년을 확장하던 금융서비스 체계가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중국은 미국을 사기꾼이라고 맹비난했고, 위안화를 무역의 결제화폐화 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때 미-중 전쟁은 환율전쟁, 또는 화폐전쟁으로 시작되었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중국에 동조하는 모양을 보이기도 하였다.
미국 중심의 3차산업의 시대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세계시민이 품게된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 아니 미국의 자국민이 강력하게 자신들에게 문제제기 하는 모양새다. 3차산업을 서로 연결된 사람 간의 정보전달과 서비스라고 정의된다면, 다분히 신뢰와 정의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에 직결된다. 최근 파리환경협약의 파기와 같은 사례에서 트럼프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미국인들 마저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 틈을 중국이 비집고 들어오는 형국이다.
홍성국 저저의 ‘수축사회’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말한다.
인류는 수만년의 역사를 통해 지속적인 확산을 경험하였다. 농업혁명(1차산업)-산업혁명(2차산업)-정보화혁명(3차산업)을 겪으면서 문명의 확대재생산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의 확대재생산이 아닌 축소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고.
청년의 일자리 문제, 세대간 갈등 또한 축소하기 시작한 새로운(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패러다임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또한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