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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Feb 23. 2021

이유식, 벌써 한 달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각종 책과 유튜브 같이 참고할만한 자료들은 넘쳐나지만 결정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이유식을 언제 시작하겠다고 딱히 정해놓지는 않았었다. 완분 아기는 4개월에 시작해야 한다고도 하고 요즘에는 늦게 하는 게 좋다고 하여 완분 아기도 6개월에 시작하는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아직 이유식에 대한 계획이 없던 어느 날, 4개월 아기의 정기검진을 위해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이 유식을 언제부터 할 거냐고 물었고, 그제야 이유식을 곧 시작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그 무렵 아기는 먹어도 배가 고픈 시기였다. 하루에 1000리터 미만으로 분유를 먹는 것을 권장하는데 며칠째 1000리터를 훨씬 넘는 분유를 먹고도 밤에 배가 고파서 울면서 깨는 날이 반복되었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드디어 온 것 같았다.


시판 이유식을 할 것인가, 만들어 먹일 것인가 남편과 논의를 한 결과, 우선 만들어 먹여 보고, 거부당하면 시판 이유식을 해보자고 결정했다.


이유식을 시작하려고 하니 준비물이 태산이었다. 물론 집에 있던 냄비, 칼, 도마, 그릇 등등을 사용해도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란 나도 내 남편도 현재 특별히 아픈 곳 없이 잘 자랐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국민 냄비, 국민 도마 등등.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열탕을 할 수 있는 실리콘과 유리로 된 적당한 가격의 상품들을 골랐다. 냄비를 가스불에 얹어 놓고 깜박하는 일이 잦은 나는 냄비 대신에 당근 마켓에서 이유식 마스터기를 샀다. 특별한 기능은 아니지만 작은 2단짜리 찜기와 믹서기가 붙어있다.


내가 준비한 이유식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 베이비무브 이유식 마스터기

- 이유식 숟가락

- 턱받이 (사은품 받은 것)

- 열탕 가능한 칼 2개 (고기용, 야채용)

- 실리콘 도마

- 이유식용 유리 용기

- 실리콘 주걱

- 의자 (집에 있던 바운서 각도 조절해서 사용)


이유식을 준비한다며 분주한 나를 보며 남편은 내가 이유식 덕분에 들뜬 것 같다고 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이유식이라는 하나의 과제가 주어지자 나름 행복하게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여러 책과 블로그의 레시피를 참고하여 첫 이유식인 쌀미음을 연습해서 만들었다. 쌀을 불려놓고, 이유식 마스터기에 쪄서 믹서기에 갈고, 채에 내리는 간단한 과정인데, 결과물은 예상과 달랐다. 아기가 분유가 아닌 다른 음식을 처음 먹는 것인데 너무 되직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두 번의 연습을 하고 나니, 적당한 점성의 쌀미음이 만들어졌다. 미리 연습을 해본 것이 다행이었다.


드디어 이유식을 시작하는 날! 남편은 이날을 함께하기 위해 연차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아기가 성장하는 중요한 순간들을 남편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참고한 유부트 채널에서는 아기에게 첫 이유식을 먹이기 전에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라고 했는데, 정신없이 이유식을 만들고, 턱받이를 해서 의자에 앉히고, 양가에 비디오를 찍어서 보낼 카메라를 세팅하고 보니, 이유식 탐색의 시간을 주지 못하고 바로 먹이고 말았다. 쌀미음에서 단맛이 나서 그런지 아기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었다.


이유식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이제는 소고기와 야채 한 가지를 섞은 미음을 먹이고 있다. 소고기는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먹이고 있는데, 소고기 없이 야채만 넣어서 프랑스식 이유식이라는 퓌레를 만들어 주었을 때 아기에게 한번 이유식을 거부당한 후로부터는 소고기와 쌀미음을 꼭 넣어서 만들고 있다. 엄마 아빠는 못 사 먹는 무항생제 한우만을 드시고 계시다.


그동안 해왔던 이유식 종류이다. 이유식 책에서 말하는 순서와는 다르게, 한살림 야채 코너의 사정과 우리 집 냉장고 사정에 따라서 그때그때 가능한 야채로 만들고 있다.

- 쌀미음

- 소고기 미음

- 양배추 퓌레 (프랑스식 이유식을 시도해 보았으나 퉤! 당함)

- 찹쌀 미음

- 소고기 단호박 미음

- 소고기 주키니 미음

- 소고기 감자 미음

- 소고기 당근 미음

- 소고기 고구마 미음

- 소고기 청경채 미음


이유식을 잘 받아먹는 우리 아기는 분유만 먹으면 배가 많이 고파서 아직 초기 이유식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두 번씩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양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너무 많이 주면 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많이 고민했지만, 지난주까지는 한 번에 80ml씩 먹였고 이번 주는 100~120ml를 먹이고 있다.


쌀미음보다는 철분이 많이 함유된 오트밀을 먹이는 게 좋다고 해서 해외배송까지 하며 거버 오트밀을 구입했는데, 아기에게 "퉤!"를 당한 후 찬장에 보관만 하고 있다. 오트밀을 좋아하는 내가 남은 것을 먹어 보았는데, 아기용 가루 오트밀이다 보니 우유에 섞어도 목 넘김이 너무 간질간질해서 나도 못 먹고 보관만 하고 있는 중이다.


본인이 숟가락을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기라서 이유식을 숟가락에 떠서 손에 쥐어주면 스스로 입에 가져가서 먹고 있다. 물론 입안으로 들어가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숟가락을 뺏어서 급하게 먹이기보다는, 아이가 맛을 즐기고 본인이 숟가락질을 하면서 얻는 보람과 배움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하여 아까운 이유식이지만 아기 주도형으로 먹이고 있다.


지난 설 연휴가 한차례 고비였다. 지방에 있는 시댁에 4박 5일로 다녀왔는데, 이유식 마스터기와 모든 준비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가 이유식을 만들었다. 시판 이유식을 사 갈까 고민을 했지만, 이미 설 연휴 전 배송대란이 일어나서 출발 전까지 배송이 어려울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다 짊어지고 가야 했다.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 이번에는 무슨 이유식을 만들까 고민하게 되어 매일 단조로운 생활에 활력이 생긴 것은 좋은 점인 것 같다. 물론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사러 가야 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나오는 설거지거리, 이유식을 한번 먹을 때마다 나오는 엄청난 빨래가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래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고, 턱받이 대신에 아기용 미술놀이 가운을 입히고 있다. 이유식 가운을 입히려고 할 때마다 좋아서 파닥파닥 거리는 아기를 보면 이유식을 만들고 뒷정리를 하는 노고는 잊힌다.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아기와 우리가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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