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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Jun 03. 2021

아이 주도 이유식 두 달째

유기농만 드시는 상전께 올리는 세끼 밥상의 세계

1월, 아이 4개월 중순부터 시작한 죽 이유식.


너무나 잘 먹어서 아이가 5개월이 되었을 때부터 하루 세끼 죽을 먹이기 시작했었다. 한번 먹일 때마다 반복되는 바닥청소와 옷 갈아 입히기에 지쳐 있던 어느 날, 아이가 죽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죽을 먹이려고 하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던 그때쯤, 어디서 보고 알고 있었던 아이 주도 이유식이 생각났다. 그래서 사월의 어느 날, 아기 칠 개월 차, 갑자기 아이 주도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 주도 이유식 책을 사고 카페에 가입했다. 시험 삼아 준 찐 브로콜리와 찐 당근을 너무나 잘 먹은 우리 아기는 죽이 아니라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나 보다.  그날부터 내 이유식 세계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더 이상 믹서기로 죽을 갈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대신 찜기가 열심히 일을 했다.  주는 대로 잘 먹는 아기가 이뻐서 이것저것 주다 보니 어떤 날은 하루에 다섯 가지 종류 음식을 주기도 했다. 찐 야채와 과일에 이유식 책에 나오는 머핀, 찐빵, 고기 스틱까지.



하지만 우리 아기는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다. 찐 야채와 과일은 잘 먹었지만 내가 만들어준 찐빵이나 고기 스틱이나 머핀은 입에 넣지도 않았다.  요리 똥 손인 엄마는 유기농 쌀로 쌀가루를 만들고, 재료를 갈고 뭉쳐 에어 프라이기에 구워 열심히 만들었지만, 아드님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아기 낮잠 자는 시간에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래도 엄마는 괜찮아..


그래서 등장하게 된 삼총사.  두부, 계란, 고기이다. 아침엔 두부, 점심은 계란, 저녁엔 고기. 그리고 찐 야채와 과일을 한 가지 종류씩 같이 주고 있다.  국수 종류도 한두 번 줘봤는데 잡는 건 열심히 잡는데 노력만큼 국수가 입에 들어가지 않아 보는 사람이 너무 안타깝다. 그래도 특식으로 가끔 주려고 한다.


아이 주도 이유식을 하면서 하루 세 번, 밥을 먹을 때마다 옷을 갈아입히고 있다. 빨래 거리는 더 많아졌다.  그래도 양손 가득 음식을 쥐고 볼 빵빵하게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 주도 이유식 카페에 들어가서 다른 아이들은 어떤 것을 먹고 있나, 내 요리에 뭐가 잘못됐나 알아보는 소통의 기회가 되는 건, 아는 아기 엄마 하나 없이 홀로 육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참 감사한 일이다.


가끔씩 식탁 의자에 앉는 걸 거부해서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울기도 하고,  의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기도 하고, 입에 넣는 음식보다 턱받이에 떨어진 음식이 더 많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먹어주는 우리 아기가 엄마는 참 기특하다.


유기농 채소와 무항생제 고기 드시는 아드님을 위하여 엄마는 오늘도 유기농 가게를 돌아다닌다.  그나마 정부에서 지원하는 임산부 꾸러미가 유기농 식재료 구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잘 먹고는 있는데 요즘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몸무게가 많이 늘지 않아 걱정이다. 고기를 먹고는 있는데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입 밖으로 나오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서 엄마는 그게 또 걱정이다.


오늘도 아기가 낮잠 자는 동안 저녁 식사를 준비해 본다. 엄마는 라면을 먹어도 너는 유기농 밥상을 차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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