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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Mar 09. 2022

18개월, 무염식을 종료합니다

많이 버틴 걸까?


이제 우리 흥이가 본인이 먹던 간 안된 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는 엄마 아빠가 먹는 메뉴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자기 음식은 안 먹고 엄마 아빠가 먹는 메뉴를 먹겠다고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참고하는 자기 주도 이유식 카페에서는 두 돌까지는 무염식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흥이가 돌이 지나고 나서는 육수, 아기 간장, 양파잼, 사과농축액 등을 사용해서 조금씩 맛이 들어간 음식을 주기 시작했다. 흥이는 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반찬을 물에 헹구어 주시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계속 유지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짜장밥 같은 것이 나오는 날에는 어린이집 초기에는 짜장을 빼고 배식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흥이가 16개월이 된 이후에는 짜장을 아주 아주 조금만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복직 후 어린이집 식단을 보고 아직 흥이가 먹지 않았으면 하는 간식이 나올 때면 내가 따로 만들어서 보냈었는데, 사무실 일이 많아지고 정신이 없어서 전보다 잘 챙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흥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심지어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날이 오고 말았다!!! 그날 퇴근 후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자책했던지… 어린이집에서 탕수육도 먹고, 오무라이스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고, 흥이는 엄마가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어린이집 밥은 어쩔 수 없지만 집에서는 무염식/저염식을 섞어서 진행했다. 보통 오전 간식, 점심과 오후 간식은 어린이집에서 먹고 오기 때문에 집에서는 아침밥, 오후 간식 2, 저녁밥을 먹었다. 아침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없어서 아기를 따라다니며 먹일 수가 없어서 놀면서도 혼자 먹을 수 있는 김+밥 또는 구운 야채를 많이 주었다. 그러다가 요구르트를 먹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에 요구르트, 바나나, 시리얼 또는 빵 구운 것을 주고 있다. 오후 간식 2는 보통 과일을 준비했다. 흥이는 이번 겨울딸기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딸기와 귤을 번갈아가며 준비했고 밤이나 고구마를 주는 날도 있다.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 저녁밥이다. 보통 국+반찬 2가지를 준비하는데, 간을 안 한 뭇국, 사골국, 된장 사골국, 미역국 등을 돌아가면서 먹이고 매생이죽, 호박죽, 야채죽도 가끔 주었다. 흥이는 고기를 안 먹는 아기이기 때문에 고기를 아주 잘게 갈아서 국에 넣기도 했는데, 고기가 씹히면 바로 뱉어버렸다. 반찬도 야채 위주로 무 들깨 볶음, 찐 당근, 두부부침, 구운 버섯 등등을 번갈아 가며 주었다. 


이런 패턴에 질린 걸까. 주말마다 열심히 국이며 여러 음식을 준비하는데, 한입도 안 먹는 일도 종종 발생하고, 나는 열심히 준비한 음식을 거의 다 버려야 하니 나대로 힘든 나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엄마 아빠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계속 ‘아~’하면서 입을 벌리고 있어서, 물에 면을 헹구어 주기도 여러 번이었다. 보통 흥이가 먼저 밥을 먹고, 어른들이 밥을 먹는데, 어른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이 너무 가서 옆에서 계속 ‘아~’를 하고 손을 뻗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아빠가 책상에 올려두었던 초콜릿 케이크를 몰래 입에 가득 묻히면서 먹고 행복하게 웃으며 나타난 적도 있다. 


그러다가 어른들 식탁에 있던 피클도 먹게 되고, 물에 헹군 김치도 먹게 되고, 점점 간이 들어간 음식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무염식과 점점 멀어지는 거겠지


하루는 내가 먹는 콩나물국에 무려 고춧가루도 있었는데, 본인 밥은 안 먹고 내 것을 퍼먹는 게 아닌가. ‘그래… 뭐라도 먹고 커라’라는 자포자기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본인 밥은 안 먹고 내 밥을 하도 노리길래, 흥이에게 주고 남은 반찬을 내 그릇에 올려놓고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본인 밥은 안 먹으면서 같은 음식인 내 그릇에 있는 반찬을 열심히 먹는 게 아닌가! 심지어 고기도 들어있었는데 말이다. 


흥이는 그 음식이 뭐가 되었든지 엄마 아빠가 먹는 음식을 본인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점심에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소시지가 들어간 김치볶음밥. 그리고 흥이는 씻은 김치와 고기 대신 당근과 완두콩이 들어간 김치볶음밥이었다. 같은 메뉴 이건만, 색이 달라서일까, 흥이 눈에는 엄마 아빠 김치볶음밥만 맛있게 보였다보다. 결국 엄마 밥그릇에 손을 뻗어 한입 집어먹고는 얼굴이 빨개졌다. 같은 메뉴에 흥이에게만 간을 다르게 해서 주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먹히지 않는가 보다. 


최근에는 고기를 너무 안 먹고 밤에 자꾸 깨서 철분제를 먹이기로 했는데, 철분제를 주스에 타서 주기 위해서 흥이에게 주스를 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분제가 들어간 주스는 어찌나 정확히 아는지, 결국 주스만 먹는 날이 늘고 있다. 엄마가 해준 음식보다 사제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이제 아는 것 같다. 


아직 냉동실에는 만들어 놓은 국이 한가득이다. 엄마 아빠와 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우리 흥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슬슬 무염식/저염식을 포기해야 할 때가 오는 것일까. 흥이는 이제 간이 안된 음식보다 간이 된 음식을 먹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래, 뭐라도 먹고 건강하게 잘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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