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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Oct 07. 2022

평일 오후 5시, 놀이터에 가면

3살 아기들의 소셜라이징

매일 하원 후,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한다. 

마트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산책도 하고. 또.. 오늘은 뭐하지?

무더웠던 날씨가 점점 시원해지고, 놀이터에 가서 큰 형아, 누나들이 학원 끝나기 전에 노는 게 우리의 일과였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는 2개. 

하나는 아파트 상가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관리하는 놀이터인데, 아담한 사이즈에 비해 형아 누나들이 많아서 잘 가지 않는 곳이 있고, 조금 더 멀지만 최근에 공사를 해서 말끔해진 조금 더 큰 공원 겸 놀이터가 있다. 흥이와 나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좀 더 넓고 새로 만든 놀이터를 주로 이용해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흥이 하원 후, 동네 마트에서 흥이가 좋아하는 귤을 사고 집에 오는 길에 아파트 내 놀이터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때마침 흥이와 같은 반 친구 두 명이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형아 누나들도 가득했다. 놀이터에 들려서 놀아야겠다는 흥이의 성화에 놀이터에 잠깐 멈추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흥이와 같은 반 친구들 엄마들이 흥이에게 비타민 사탕과 과자를 쥐어주자, 흥이는 놀이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매일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 가는 것이 우리의 일과가 되었다. 흥이 친구들끼리 간식을 나누어 먹는 분위기 때문에, 우리도 나눠먹을 간식을 챙기게 된다. 


간식을 나누어 먹다 보면, 흥이는 아직 먹지 않았던 간식들도 먹게 되는 경우가 거의 매일 생겼다. 소시지, 홈런볼 등등... 너무 심한 초콜릿바 같은 게 아니면, 흥이가 먹도록 놔두는 편인데, 덕분에 흥이는 집에 와서 밥을 안 먹는 것이 새로운 문제가 되었다. 다른 친구는 놀이터에서 간식을 먹고 집에 와서 저녁밥도 잘 먹는다는데, 입 짧은 우리 흥이는 그게 안되나 보다. 그래서 요즘에는 놀이터에서 먹는것을 막는 것은 거의 포기상태이고 저녁밥 먹는 시간을 좀 더 늦추었다. 


12월에 흥이 동생이 태어나는 관계로, 원래 4시에 하원을 하다가 4시 반, 5시로 점점 하원 시간을 늦추게 되었다. 흥이의 다른 놀이터 메이트 3명은 5시 하원이다. 4시 반에 하원을 하는 기간 동안, 우리 흥이는 먼저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해서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내 가방에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간식을 찾아내서 손에 꼭 쥐고 있다가 5시가 넘어 다른 놀이터 메이트 친구들이 저 멀리서 나타나면 뛰처나가서 친구들에게 간식을 쥐어줬다. 


5시에 하원을 한지 이제 일주일.  넷이 하루 종일 어린이집 같은 반에 있었는데, 5시가 되어 픽업을 하러 가면 다른 친구들이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린다. 어찌나 망부석처럼 기다리는지, 먼저 놀이터에 가서 기다리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신발을 갈아 신으면 뛰어가서 그 옆에 서있다가 손을 잡고 달려 나간다. 너무나 신이 나서 방방 뛰고, 까르르르 웃고, 3 살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친구가 그렇게 좋은 걸까?


놀이터에 도착하면, 엄마들은 준비한 간식을 꺼낸다. 그럼 아기들은 과자봉지 주위에 동그랗게 모여서 과자를 집어 먹는다. 한 개씩 들어있는 과자나 사탕은 자랑스럽게 한 개씩 친구들 손에 쥐어준다. 신나게 간식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그때서야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탄다. 넷이 몰려다니며 놀 때도 있고, 다 흩어질 때도 있는데, 네 명의 3 살 아기들이 모일 때는 역시 새로운 간식을 누군가 꺼낼 때이다. 멀리서 놀다가도 귀신같이 나타난다. 


같이 놀다 보면, 우는 일도 있고, 웃는 일도 있다. 누가 밀어서 넘어질 때도 있고, 가져온 장난감을 친구가 가지고 놀면 화가 나기도 하나보다. 한명이 울면, 친구들이 모여서 다독여 준다. 말을 곧잘 하는 아기들과 말을 아직 잘 못하는 아기들이 섞여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참 신기하다. 


놀이터에는 3살 아기들보다 훨씬 큰 형아와 누나들도 많다. 형아와 누나들은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를 맨발로 타고 오르락 내린다. 3살 아기들보다는 와일드하게 놀다보니, 매일 형아 누나들에게 치이는 일도 발생한다. 형아 누나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관심이 가서 옆에 서서 구경도 한다. 형아 누나가 먹는 간식을 먹고 싶을때도 있는데, 그건 최대한 막으려고 하고 있다. 집에서는 본인이 대장이고, 어린이집에서는 다들 평등한 관계인데, 놀이터에 가면 자기보다 덩치가 큰 형아 누나들이 있고, 자기 맘대로 안되는 것들이 많아서 속상한 일도 생긴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흥이가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 


엄마들은 최대한 간식을 적게 먹이려고 노력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놀이터 옆에 편의점까지 있어서, 가끔 아이들이 편의점에 가자고 손을 이끄는데, 돈이 없다, 카드가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가야 한다. 한 명이 편의점에 가면, 다들 따라서 편의점으로 쳐들어가서 편의점을 턴다. 


집이나 차에서는 밍밍한 맛의 과자도 곧잘 먹는데, 놀이터에 가면 더 맛있는 것들이 많으니 손이 안 가나 보다. 과일이나 시시한 과자를 가지고 가면, 아무도 안 먹는 슬픈 일이 발생한다. 심지어 우리 흥이도 안 먹는다..


요즘은 해가 빨리지고 날씨가 추워져서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이다. 지금은 그나마 집에 가자고 하면 몇번 튕기다가 따라와 주는데, 첫 몇 주간은 집에 안 간다고 울고불고 발버둥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동생이 태어나면, 어린이집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와야 하는 우리 흥이. 해는 점점 짧아지니 이 놀이터의 행복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세 살 아기들의 우정과 간식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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