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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10. 2023

먹는 게 남는 거

여섯 번째 사랑의 언어 - 음식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있다. 게리 채프먼이라는 사람의 저서로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것도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하다. 그 요지는 사람마다 애정을 표현하고, 또 표현받기를 원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서로의 방식이 다른 경우는 이를 이해해야 그 관계가 순탄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달콤한 언어로 애정 표현을 표현하고 표현받기를 원하는데 상대는 선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며, 서로 그 차이를 모른다면 매사에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서로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도 서로 외국어로 소통하는 듯한 갑갑함 속에서 관계의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연애를 하지는 않지만, 내 사랑의 언어는 아마도 음식일 것이다. 평소 남에게 먹이는 것으로, 혹은 음식을 추천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편이다. 경기도에 사는 절친네 집에 동네 맛집 음식을 사 들고 찾아가거나, 심지어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서 퀵으로 보내거나. 말로 하는 애정 표현이 없는 집에서 자란 탓에 '소중한 친구야,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앞으로도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잘 지내자'라는 낯 뜨거운 말을 하는 건 도무지, 도무지 내 시스템 구조상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친한 사람들에게 많은 걸 먹이고, 상대가 좋아할 자잘할 물건들을 선물한다. 양쪽이 복합된 선물인 조리도구를 사 줄 때도 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음식이란 상대의 일부가 되는 거잖아?)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 남는 사람들도 기회가 오면 먹여서 복수를 하겠노라고(…) 벼르는 친구들이다. 특히 이웃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 영어권 친구들은 생활 속에서 그걸 실천했다. 부친상을 당한 첫날, 온종일 낯선 문상객을 받고 밤늦게 돌아왔을 때 골목 위쪽에 살던 친구가 손수 구운 라자냐를 들고 나를 맞아 주었다. 과거 어머니를 잃었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면서 친구가 꼭 쥐여준 라자냐를 어떻게 먹어 치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리의 금손을 소유한 이탈리아계 친구였으니 아마 미각을 익사시키는 슬픔 속에서도 맛있게 먹어 없앴을 것이다. 그 라자냐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따스한 마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중에 그 친구가 SNS에서 과격한 우파 발언을 늘어놓을 때도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참을 인자를 마음속에 새겼다. 최근에 그 친구가 우파가 득세한 브라질로 떠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디 그곳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며 잘 지내길.)



9년 가깝게 키운 고양이 2번이가 황달과 용혈성 빈혈로 떠난 후, 고양이를 키우는 동네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2번이가 어제 떠났어. 요로 질환인 줄 알았을 때 먹이려고 사둔 요로 케어 처방식 사료가 있는데 너희 고양이가 혹시 먹을까?' (친구네 고양이는 확실히 요로 질환으로 처방 약을 먹고 있었으므로.) 며칠 후에 친구는 사료를 받으러 연락했고, (매우 뜬금없지만) 내게 줄 작은 치즈케이크를 구워 놨으니 받아 가라고 말했다. 친구에게 받은 작은 치즈케이크는 생뚱맞게도 시리얼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2번이를 잃은 후 매우 나답지 않게 뭘 먹어도 식욕이 없던 터라 그 케이크를 먹기까지 약 1주일이 소요되었다. (치즈케이크는 냉장 상태에서 숙성하면 더 맛있어지므로 나쁠 건 없었으리라고 믿는다.) 설탕이 약간 덜 섞여서 파삭파삭 씹히던 크러스트와 달달한 치즈를 감사한 마음으로 앉은자리에서 모두 퍼묵퍼묵했다.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남편의 재발령으로 다시 미국에 돌아간 친구는 2번이가 떠난 후에 충격적일 정도로 감동적인 위로 선물을 보냈다. 출장 오는 남편을 통해 집에서 구운 호박빵(!)을 보내온 것이다. 친구 남편은 은박지에 싸인 이 빵 때문에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며 약간은 진땀을 뺐다고 했다. 작은 파운드케이크 크기의 앙증맞은 호박빵 역시 앉은자리에서 뱃속으로 사라졌고, 내 몸의 일부가 되는 동시에 계속해서 걸어갈 힘을 주었다. 과거에 두 사람이 한국 생활을 할 때 나는 그 집 도그시터로 4-5년간 일했고, 친구들이 휴가를 갈 때면 거의 그 집에서 생활하며 개들을 돌봤다. (그동안 집에서 심심했을 고양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친구 남편이 부친상을 당해서 부부가 함께 고국을 방문한 후 돌아오던 날, 나는 두 사람이 즐겨 먹는 진한 맛의 멕시코식 닭고기 수프를 한 냄비 가득 끓여서 그 집 냉장고에 집어넣고 개들과 인사한 후 돌아왔다. 그 수프가 마음의 위로가 되었노라고 했다. 그 일은 몇 년이나 지나서 태평양을 건너온 손바닥만 한 호박빵으로 내게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나는 지난달을 또다시 도그시팅으로 바쁘게(?) 보냈다. 애인과 함께 고향을 방문한 친구를 위해 장난 아니게 귀여운(!!!) 반려견을 며칠간 돌보게 되었는데, 친구가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다. 친구네 집 소파에서 푹 자고 깨어난 나는 음성 메시지를 듣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말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돌아올 때까지 계속 강아지를 도볼 테니 일정이 변경되더라도 걱정은 하지 마.' 원래 일정보다 열흘이나 늦게 친구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나는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그 집 냉장고를 꽉꽉 채우기 시작했다. 냉동실에도 아이스크림 여러 통을 쟁였다. 두 사람이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날 저녁에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서 친구가 좋아하는 레몬 치킨을 만들었다. 레몬즙과 버터를 넉넉하게 넣어서. 하루쯤은, 이런 날은 건강보다 맛이 더 중요해, 하고 생각했다. 저녁 늦게서야 돌아온 친구와 그 애인은 그동안 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면서 얘기를 듣고 대충 짐정리가 끝난 후에 우리는 포실포실한 쿠스쿠스를 곁들인 레몬 치킨을 먹어치웠다. 맛있게 배불리 먹으면 0.00001% 정도는 슬픔과 허탈함이 가시기라도 할 것처럼. 듣기로는 상을 당한 친구네 집에는 날마다 이웃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을 들고 드나들었다고 한다. 특히 인기 메뉴(?)는 당근 케이크였다고. 그래, 잘 익어서 달콤한 당근채와 고소한 견과류, 달콤한 크림치즈 아이싱이 곁들여진 당근 케이크는 조금이나마 친구 가족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은 디저트를 먹은 후에 올라갈 혈당을 걱정하는 것보다 그 달콤 쌉싸름한 맛에 영혼을 위로받는 것도 필요하지.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일부는 우리의 일부로서 남으니까.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변색되기도 하고, 선물은 낡으면 망가져서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식이라는 건 한 번 먹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랑의 언어는 앞으로도 계속 음식일 가능성이 크다. 피가 되고 살이 되며, 또 영혼과 정신이 되어 영원히 상대의 일부로 남는 선물이니까. (적어놓고 보니 몹시 집착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아마도 착각일 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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