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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10. 2023

아침에 한 알, 자기 전에 네 알

반려병과 약 먹기, 일상 지키기

1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사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개월 후,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리고 9년 가까운 세월을 우울증과 함께 살아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게 아니라 수면과 바닥 사이의 어딘가에서 무겁게 부유하듯, 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라앉은 것도 아닌 상태로 지냈다. 느릿느릿한 물살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채로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흘러갔다. 밖에서 보면 흔히 생각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나는 비정형성 우울증으로 불면증은 없었으며 - 카페인 섭취가 과해서 수면 시간이 짧기는 했지만 - 발병 후에 체중이 증가했다. 머릿속에도 몸속에도 안개가 낀 듯한 브레인 포그(brain fog, 우울증을 다룬 한 일본 책에서는 이 증상을 '탁한 우무'라고 표현했다.)가 내 삶을 장악하는 가운데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맡은 일들을 해냈고, 마감에 늦기가 일쑤였다. 작년에 드디어 정신과를 찾았고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지만, 그전까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의지의 힘'과 '영양제 파워'로 버텼다. 세인트 존스 워츠, L-테아닌, L-티로신, 지금은 수입 금지된 5-HTP... (참고로 내 경우는 영양제 5-6알이 새끼손톱의 절반의 절반만 한 정신과 처방약 한두 알의 효과에 훨씬 못 미쳤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다.)


왜 병원에 찾아가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건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어떻게든 나 혼자서 방법을 찾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도 한몫했다. 정신과에 가면 내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야 할 텐데, 그게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무슨 궤변인가.) 그 외에 일반적으로 사회에 깔린 정신과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나는 애초에 병원 자체를 잘 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천식이 심해져서 폐기능이 몹시 떨어졌을 때도 친구가 끌고 간다고 협박하기(?) 전에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천식인 줄 알면서도 그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은 혀를 차셨다. 처음 찾아갔던 정신과 선생님도 비슷한 표정이셨다. '우울증에 걸린 지는 7년 반쯤 됐고요...'라는 말에 선생님은 '왜 지금까지 기다리셨어요ㅠㅠ'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아, 그게... 제가 원래 병원에 잘 안 가거든요... 심신이 골골대는 게 자랑도 아니고... (그렇지만 그냥 막무가내로 시달릴 필요도 없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7년 반 동안 병원을 찾지 않았던 내 마음이 바뀐 것은 일종의 갑질을 당하고 한 클라이언트에게 일감이 끊긴 후에 우울증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도 잠이 쏟아졌다. 밤에 지치도록 잠을 자고, 그러고도 또 낮에 쓰러져서 낮잠을 잤다. 커피를 하루에 두세 잔씩 마실 때의 일이었다. 5-6시간씩 자다가 갑자기 두 배가 넘게 잠이 쏟아지자 겁이 났다. 의지의 힘으로도, 영양제 파워로도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우울증과 함께하는 삶을 7년 반 보낸 끝에 드디어 정신과에 예약을 했다. 뇌파 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를 마친 후에 우울증이 맞고 뇌 기능이 저하되어 있다는 답을 들었다. 처음으로 정식 진단을 받은 많은 분께서 비슷하게 느끼시겠지만 차라리 속 시원했다. 나한테 의학적인 문제가 있구나.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진단을 받았으니까 치료도 될 거야.


정신과 초진 후에 의사 선생님은 새끼손가락의 반의 반만 한 알약 두 개를 처방해 주셨다. 매일 자기 전에 그 두 알을 먹는 것만으로 생활이 훨씬 쉬워졌다. 약에 잘 적응해서 한 번 증량하고 나자 얼마 안 가서 금방 낫겠구나 하는 지나치게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고 한 달 만에 고양이 2번이가 중병에 걸려서 순식간에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날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음식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다. 뭘 먹어도 처음 몇 초 동안 '음, 맛있네...'하고 건성으로 생각한 후 모든 음식의 맛이 무채색으로 변해버렸다. 내 경우는 원래도 '죽음'이 트리거가 되어 우울증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었기에, 일상을 지속하려면 약을 증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도 그 덕분에 그 힘든 시기를 그나마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느낀다.



지금은 아침에 한 알, 자기 전에 네 알. 그렇게 하루에 다섯 알을 삼킨다. 날마다 빼먹지 않고 열심히 약을 복용한다. 그 덕분에 어느 정도의 일상이 가능하다. 늦지 않게 맡은 일을 마칠 수 있고, 한 번 외출한 후에 며칠간 끙끙 앓지 않아도 된다. 즉 어느 정도는 기능이 회복됐다. 반면 불만인 점도 있다. 무기력증과 무쾌감증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아직은 물속에 잠긴 듯한 기분이다. 남들이 수면에 머리를 내밀고 수영해서 멀어져 가는 걸 보면서, 나는 물에 잠긴 채로 꼬물꼬물 움직인다. 마치 해마가 등지느러미를 펄럭펄럭펄럭 움직이며 감질나게 나아가는 것처럼. (검색해 보세요... 이게 의외로 귀엽습니다.) 가끔은 한동안 제자리에서 더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럴 때 나 자신에게 '네 우울증이 그렇게 심한 거야'라고 말해 주기는 쉽지 않다.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약을 먹는데도 그 정도라니 네가 나약한 거야'다.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걸 막기는 힘들다. 다만 그런 생각이 밀어닥쳤을 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어기제를 쌓아야 할 뿐이다. 그렇지만 조바심도 느껴진다. 남들은 이미 빠른 속도로 수영해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려 하는데, 나는 여전히 수면 밑에서 꼬물대고 있으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여정이 있는 법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서글프지 않은 건 아니다.


가끔은 더 적극적으로 약을 써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변의 한 친구는 20년 넘게 우울증과 함께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정신과에 다녔지만 아주 최근에서야 자신과 잘 맞는 병원을 찾았고, 선생님이 약을 적극적으로 바꿔 주셔서 한동안 실험한 결과 자신에게 잘 맞는 배합을 찾았다고 한다. 우연히 본 그 친구의 약 봉투는 알록달록한 알약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예전과 비교해서 그 친구는 정말로 달라졌고, 많이 차분해졌으며 여러 일을 해내며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한때는 툭하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는 글을 SNS에 올리곤 했던 그 친구를 보면 정말 포기하지 않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맞는 약 배합을 찾은 후에 그 친구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도 우울증이 '의지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이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날마다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더 높은 삶의 질을 경험하고 있다. 약을 복용하는 덕분에 이들은 더 잘 움직이고, 더 적은 고통을 느끼며, 더 수월하게 기능할 수 있다. 정신과 약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에 삶이 그만큼 더 수월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며 감탄한다. 물론 자신과 잘 맞는 주치의를 찾아 자신에게 적합한 약물 배합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약을 복용한 후 자신의 상태를 잘 지켜보고 어떤 영향이 있는지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내 경우는 크게 이렇다 할 부작용을 겪지 않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특정 약물에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약 새로 처방받은 약물에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주치의와 상의해서 처방을 바꾸면 된다. 신체적인 증상을 다스리는 약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아침도 나는 서방정 한 알을 삼키며 그 성분이 오늘 하루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어쩌면 그 덕분에 물속에서 한 뼘만큼 더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오늘을 마치는 순간까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테니까. 저어도 한 달 전, 일 년 전과 비교해서 나는 어느 정도 전진했으니까. 어느 날 뒤돌아보면 지금 이 자리가 까마득하게 멀리 보일 그 순간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기쁘게 알약을 삼킨다.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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