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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18. 2023

미국에서 친구의 어머니가 오셨다

우리의 관점은 다르기에 더욱 아름답다 - 1

"엄마가 오신다니 많이 기대되겠다, 그치?" D는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엄마랑 나랑은 성향이 많이 달라서..." 여기서 성향이란 정치적 관점을 뜻한다. 머나먼 아시아의 작은 반도...에 딸린 섬에 사는 아들을 보러 미국에서 찾아온다는 D의 어머니는 공화당 지지자라고 했다. D로 말할 것 같으면 나사가 살짝 빠진 듯한 표정과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성격이 기본 모드인 민주당 지지자이다. 만약 D의 어머니가 아들만큼이나 열정적이고 매사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라면 두 모자의 평소 대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D는 어머니의 방문을 기대하면서도 약간은 걱정하는 눈치였다. 꼭 정치적인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도 독립한 성인 자녀가 부모와 함께 장기적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건 어느 정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하물며 정치적 관점이 정반대라니. 우리나라만 해도 명절에 오랜만에 마주친 가족끼리 무심코 정치 얘기를 꺼냈다가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여행을 좋아하는 D는 어머니를 위해 다양한 계획을 준비해 두었다. D가 정착한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먼 이국땅까지 날아온 어머니를 섬에 가둬 두기는(?) 안타까웠을 터. D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할 계획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여행한 얘기보다 뭔가를 먹은 얘기가 더 많더라만. D의 어머니는 산 낙지까지는 도전하지 않았지만 주꾸미 파전을 맛있게 드셨다며 자랑하셨다.) 그 후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느라 연락이 뜸했던 D가 다시 연락을 해 온 것은 지난주 언젠가였다. "월요일부터 엄마랑 서울에 갈 거야. 그때 얼굴 볼 수 있으면 보자."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게있었다. 작년에 또 다른 친구 K의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을 때 함께 탔던 서울 시티 투어 버스. 고령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던 두 분은 높은 개방형 2층 버스에서 편하게 서울을 구경하며 즐거워하셨다. "야, 작년에 다른 친구 부모님이 오셔서... 2층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또 다른 맛이... 많이 걸을 필요도 없고... 남산, 동대문, 고궁을 전부 다 도는데... 내가 쏜다!" D는 좋은 생각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꼭 내가 쏘겠다고 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곧장 날짜를 잡고 표를 예약했다. 그래, 마이 프렌드, 우리는 2층 높이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게 될 거야. 내게 감사하게 될 거다. ㅋㅋㅋ


출처: 서울 시티 투어 버스 모바일 홈페이지


며칠이 지난 후인 월요일, D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에 도착해 종로구의 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야, 내일 몇 시 버스 탈 거야? 좋은 자리 찜하려면 출발 시간보다 한 20분은 일찍 도착하는 게 좋을 텐데." (서울 시티 투어 버스는 오전 9시 30분이 첫차이며 광화문에서 40분마다 출발한다.) "9시?" "첫 차 타자고?" "너무 일러서 그래?" "생각보다 조금 이르긴 한데... 뭐 일찍 일어나서 후딱 마치면 좋지." "나도 좀 이른 것 같은데 엄마가 5시 반에 기상하셔... ㅠㅠ" 아아, 그 말을 듣자 지난달 부다페스트의 숙소에서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폰을 보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휴가 중에도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것은 전 세계 엄마들의 공통 특성인가 "알겠어. 그럼 9시에 보자. (나 원래 10시까지 자는데... ㅠㅠ)"




그날 밤, 나는 한참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깼다. 고양이 때문인지, 찬 공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계를 보자 새벽 4시 반이었다. 기상 알람을 맞춰둔 시각은 7시. (그리고 7시 8분, 7시 15분, 7시 23분, 7시 30분, 7시 35분...) 살짝 깬 것도 아니고 정신이 완전히 들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도로 잠들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아침은 찾아왔고, 나는 반 좀비 상태로 집을 나섰다. 근처의 독일 빵집에 들러 초콜릿 크라상과 사과빵 하나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잠이 부족하면 밥심 아닌 빵심으로라도 버텨야지. 아니, 물론 커피도 마셔야지. 커피는 나의 힘이니까.


광화문에 도착해 사이렌 오더로 스타벅스에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더니 '32번째 음료로 준비 중입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떴다. 몇 번째라고?! 오래 세월을 프리랜서로 살아온 나는 광화문 직장인들의 치열함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때 마침 8시 35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저 사람들 모두 이 정도면 충분히 이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커피를 주문했고, 그런 주문이 쌓여서 최소한 32잔이 되었으리라. 나는 스타벅스 매장에 도착해 커피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9시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주문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나도 취소해야 하나 하고 생각할 즈음, 예정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다며 D에게 문자가 왔다. 에헤라디야!


무사히 카푸치노를 득템 해서 서울 시티 투어 버스 매표소로 걷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의 수많은 사람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걷다가 나와 부딪힌 한 행인이 어이없게도 내게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다들 무슨 생각에 빠져서 앞도 제대로 안 보고 걷고 있을까. 매표소에 도착해 예매 정보를 보여주고 표를 받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밖으로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내 인내심의 상징인 카푸치노를 마시고 초콜릿 크라상을 먹어 치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식음료를 들고 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데 영어 안내판의 '심지어 커피조차 안 됨'이라는 표현이 왠지 모르게 웃기면서 기억에 남는다. 그 단호함이라니.


D 모자는 10-15분 후에야 도착했다. 아들을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D의 어머니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나를 포옹했다. 나 만큼이나 졸려 보이는 D의 손에는 역시나 커피가 들려 있었다. "어제 잠 잘 잤어?" "아니." "나도." 아아, 친구야. 우리의 고난이 예상되는구나. 반면 D의 어머니는 쌩쌩한 표정으로 내가 건넨 사과빵을 받아 들었다. 한때 독일에서 4년간 살았다는 그녀는 제대로 된 독일 빵 맛이라며 감탄했다. D가 큰 컵의 커피를 다 마시는 동안 우리는 9시 30분의 첫 차를 보내야 했다. '식음료 금지, 심지어 커피도 안 됨.' 버스 앞문 옆에 붙어 있는 안내판의 영어 문구였다. 현대인의 제1 에너지원조차 허락되지 않는 신성한 공간. D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나자 두 번째 버스가 출발할 때가 됐다.




두 번째 버스는 안타깝게도 개방형 2층 버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D가 찍어둔 첫 번째 목적지, 남산골 한옥 마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가는 길 내내 D의 어머니는 이런저런 건물을 가리키며 감상을 말했다. 내게는 일상적이다 못해 평범한 도시의 빌딩 숲도 대도시 출신이 아닌 그분에게는 특별해 보였나 보다. 약 10분간 달린 후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다. D의 어머니는 한옥과 그 안에 전시된 가구들을 보며 '예쁘다', '멋지다'를 반복하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전혀 낯선 시선으로, 낯익지 않은 이 건물들을 보는 이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이 땅에서 나서 자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굳이 한옥 마을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옥의 평균적인 모습은 대체로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안 본 눈 사고 싶다'는 표현은 이런 데서 나온 것일까.


한옥 마을을 나서면서 D는 예전에 서울의 살 때의 해프닝을 말해 주었다. 한 행사에 참여한 D는 페이스페인팅 부스를 발견했고, 담당자에게 자기 얼굴에 '바보'라고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당연히 담당자는 D가 '바보'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재차 확인한 후에야 주저하며 그 요청을 들어주었다. D는 - 아마도 내 생각에는 잔뜩 신이 난 상태였을 것이다 - 그 얼굴 그대로 지하철에 탔고, 당연히 모든 이의 시선이 D의 얼굴에 꽂혔다. 잠시 후에 한 대학생이 몹시 주저하는 태도와 말투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해주더란다. "저기... 당신 얼굴에 '바보'라고 적혀 있어요." "네, 알아요^o^" (나는 그 대학생이 바로 앞에 있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었는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 D는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정서상 자기 희화화를 통한 개그가 잘 안 먹히는 것 같아." "그런지도 모르겠네. 개그맨이 특정한 문맥 속에서 말한다면 모를까." 역시 누군가의 관점이란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자신이 성장한 환경은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할 테고. 반대로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개그가 D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재미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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