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다. 당시 우리 집은 단독주택들이 양쪽으로 쭉 이어지고 길 끝은 막혀 있는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좁고 긴 응달의 그 골목은 우리 집이 있던 안쪽부터 입구까지 완만한 내리막길로 되어 있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서로 약속 없이도 문 밖으로 나와 서성이면 삼삼오오가 되었고 그럴 때면 함께 학교놀이나 공기놀이, 술래잡기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들을 하곤 했었다. 우리의 하루는 골목처럼 길고 길어 그 모든 놀이를 다 하고도 해는 중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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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맨 끝집에는(그 집이 아닐 수도 있다) 나보다 어린 남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마당 평상에 엎드려 혼자서 그림을 그리다가 대문 밖으로 나왔고 마침 맨 끝집의 남자아이가 세발자전거였는지 자동차 같은 건지 아무튼 파란색으로 기억되는 바퀴가 달린 무언가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지나치는 그 아이의 어깨를 툭 건드렸고 그 아이는 웃으며 눈인사를 하고는 저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그림을 그렸던 것 같은데...
엄마가 퇴근을 했고 갑자기 맨 윗집 남자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내가 그 아이를 밀치는 바람에 걔가 넘어져 다쳤다고... 얼굴인가 어딘가가 까졌다고 했던 것 같다. 엄마는 거듭 사과를 했고 나에게도 사과를 시켰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런 게 아닌데..."
억울했다. 나는 그 아이가 넘어질 만큼 세게 치지도 않았고 나를 지나쳐 골목 저 아래로 신나게 내려가던 멀쩡한 뒷모습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는 자기가 혼날까 봐 동동거리다 내가 밀쳐서 넘어졌다고 해버렸을 거라 짐작되지만, 당시에는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친하게 같이 놀던 그 아이가 나를 모함한 것 같아 배신감을 느꼈고 내가 밀쳐서 넘어진 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그냥 사과만 시키는 엄마에게도 서운했다. 처음으로 누명을 쓴 자의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너무 당황하면 말이 잘 안 나오고 눈물만 난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스케치북을 들고 방으로 가 맨 뒷장에 이 억울함을 썼다. 천추의 한이 맺힌 사람처럼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크레파스로 꾹꾹.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스마트폰을 만나고부터는 읽지도 쓰지도 않게 되어 부득이 과거형으로 쓴다.) 모으고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잘 못하는 관계로 내 글들은 남아있지도 성장하지도 못했다. 사유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역시나 끈기가 없어 깊이가 얕다. 대학원 시절 한 수업시간에 강점검사라는 것을 했었는데 창의력은 최상위, 호기심은 최하위라는 결과가 나왔다. 교수님은 창의력과 호기심은 연관성이 높아 보통 비슷한 순위로 나오는데 상반되게 나온 내 결과가 특이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나 스스로는 호기심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호기심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고, 내가 호기심이 많은지 적은 지에 대해 호기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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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하루하루가 바쁘고 피곤하여 엄두를 못 냈고 퇴사 후에는 나의 지병(귀차니즘&건망증)으로 인해 쓰지 않았다. 아무리 귀찮아도 백수인 내가 그렇게 많은 잉여의 시간들에 글을 안 썼다는 것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건 아닐까? (갑분) 고백하건대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이다. 원하지 않아도 나는 하루의 대부분 핸드폰을 쥐고 산다. 글을 쓰고 싶지만 핸드폰을 쥐고 있어야 해서 나는 글을 쓸 손이 없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는 스마트폰 중독 강사 과정을 수료한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나는 온갖 핑계들에 파묻혀 쓰기를 미뤄왔다.
내가 브런치의 서랍을 다시 열어본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뽀얀 초라한 행색의 서랍 안에는 쓰다 만 글들과 오래전 싸이월드에 썼던 글들이 이사를 와 있었고, 가장 깊은 곳에는 20년 10월에 써둔 글이 있었다. 그리고 21년 8월에 쓴 <지원참고>라는 제목의 글도.
두서없이 뒤죽박죽인 서랍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브런치고 자시고 한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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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비는 없지만 가끔 하루 이틀 배변 활동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다(그냥 똥을 못 쌀 때가 있다.라고 쓰고 싶었지만 이왕이면 점잖은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럴 때면 하루종일 뭉근하게 불쾌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어 진다. 변기에 앉아 힘을 주고 힘을 빼고 한숨을 쉬고 짜증도 내면서 기어이 나올 것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를 찾는다. 미루는 마음은 변비와 같다.
저 잡동사니 같은 글들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것일까? 정리의 시작은 비우는 것이라던데 어차피 맺음도 못한 글들 싹 다 지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글들을 쓸까 싶었지만, 그보다는 시작한 글들을 하나씩 마무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미루지 않기로 다짐했다. 힘을 주고 힘을 빼고 한숨을 쉬고 짜증을 내게 될 수도 있겠으나 이번에야말로 나는 꼭, 이 얼굴만 있는 인형 같은 글들을 완성해 볼 것이다.
너는 머뭇거릴 수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벤자민 프랭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