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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Sep 13. 2024

누가 나에게 돌코락스를 먹였나

-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 글 쓰는 걸 배우고 싶어서 국문과에 갔다. 국문과에 가면 글 쓰는 걸 배우는 줄 알았던 것이다. 문예창작과란 것이 번듯하게 있었는데 나는 몰랐고 몰랐기 때문에 탐색도 해보지 않았다(나만의 논리 완성).


국문과 수업에서 기억나는 것은(놀라울 정도로) 없지만, 문단과 문장과 어절과 단어... 형태소까지 뭐 분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부하듯 분석했던 게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난다. 내겐 너무 어렵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단어까지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음절까지 쪼개고 쪼개서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신기한 건 신기한 거고 아쉽게도 내게 흥미롭지는 않아서 내 눈은 책과 교수님을 열심히 쳐다보았으나 머릿속은 이따 친구들과 시원한 생맥을 마시기로 한 해리피아(아는 사람=배운 사람)에 먼저 가 있었다.


무지한 선택으로 국문과에 간 대가로 대학 시절 내가 글이란 걸 써본 것은 '소설 창작' 수업 때뿐이었다. 그 수업은 짧은 소설로 시험을 대신했는데 내가 제출한 소설은 아주 일차원적인 스토커 이야기였고 A를 받았다. 별다른 복선이나 반전 없이 뻔하게 쓰인 스릴러 소설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후하게 받은 점수가 아닐까 싶지만, 당시에 나는 나름 열심히 썼기에 A+를 받지 못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한편 그때 A+를 받은 한 친구의 소설은 제목부터 그럴싸했고 내가 봐도 좀 더 복잡한 구성과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훗날 그 친구는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된다. 편입까지 하며 글쓰기에 사활을 건 것 같던 친구는 어쩌다 보니 지금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교집합 같은 관계라서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능력만 가진다고 될 일도 아니다. 심지어 '열심히' '잘' 하더라도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때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또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시 나로 돌아와서 애초에 내가 문예창작과에 갔다면 나는 지금 전업 소설가나 시인, 아니면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나 방송국의 보조작가로라도 일하고 있었을까? '만약에'라는 가정에도 꼭 그랬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글 쓰는 직업을 고민했다는 게 아니라 직업을 갖는다는 것 자체에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이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미래에 대한 계획도 준비도 없이 살았다는 게 이상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랬다.



나처럼 살지 말고
전업주부로 집안일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어.



엄마는 내게 자기처럼 고생하지 말고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서 전업주부로 살라고 종종 당부했다. 다른 말들은 죽어라고 안 듣던 내가 그 말만큼은 어찌나 단단히 알아 들었는지... 미래에 대한 준비 따위는 일절 하지 않고 연애만 열심히 했다. 뒤늦게야 이 생각이 시대착오적이며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준비된 것 없이 어정쩡하게 나이가 들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이제 많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잘 모른 채 몇 개의 직업을 경험했고 몇 년 전에는 마흔을 맞아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자 라며 퇴사를 했다.


자발적 퇴사일지라도 퇴사는 약간의 분리불안증을 동반한다. 오랫동안 내 삶의 큰 비중이던 일이 사라짐과 함께 내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도 사라졌고 그 공간을 채우던 온갖 소란스러움들 역시 한순간에 사라졌다. 테트리스처럼 빠듯하게 맞춰 가던 업무와 나와 얽혀 있던 사람들과 그 사이사이를 채우던 소소한 사건들과 농담들과 간식들까지.

   

퇴사의 시원섭섭함이 조금 가라앉고서는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뒀던 버킷리스트를 꺼내어 봤고 거기에는 신춘문예 도전도 있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 전부 토요일이 되었으니 나는 정말이지 마음껏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잇자면 이쯤에서 남편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내 남편은 나에게 엄마 같은 사람이다. 진짜 친정 엄마 같다는 말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라는 말이다.

남편은 기대하지 않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다. 기대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내가 충족시킬 수 없는 기대로 나를 키웠던 엄마가 못내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것이 편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달달한 치즈케익을 곁들여 쌉쌀한 커피를 마신다. 담배는 피우지 않으나 이 정도 만으로도 내 감성은 깨어난다. 이제 쓸 수 있을 것 같다. 글.

그렇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새로운 감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니 나도 카페에서 분위기있게 글을 쓰고 싶었다. 아주 헛바람만 단단히 들어가지고. 그치만 카페에서 글쓰고 싶은게 죄는 아니잖아요..?


기대하지는 않지만 지지해 준다. 남편은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될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은 채, 아니 내가 글을 쓸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채 내게 파아란. 깊은 바다와 같은 색깔의 노트북을 선물해 주었다.







노트북을 받은 날 내 마음은 이미 명작 소설을 열두 권은 써낼 수 있을 것처럼 섣부르게 일렁였다.

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 내게 뿌리깊은 지병이 있다는 것을... 귀차니즘과 건망증은 나의 발목을 꽉 붙들어 매 둔 족쇄이다. 그것은 나를 결코 책상 앞으로 갈 수 없도록 잡아두고 있었다. 어쩌다 의지를 그러모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나는 끝내 쓸 수 없었다. 쓰려고 하면 할수록 내 머리는 돌처럼 굳어져 단 몇 줄의 글조차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간신히 시작만 하고 확장시키지 못한 글들이 탈모 온 머리처럼 군데군데 저장되어 있었다.

매듭짓지 못한 글들은 결국 읽힐 수 없다. 나는 내게 기대하지 않는 남편의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글을 쓰겠다고 산 노트북으로 어디서든 넷플릭스를 마음껏 보며 절망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지박약의 내가 어떤 계기로 여기저기 처박혀 있던 글들을 꺼내어 매듭짓고 브런치 작가 신청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정녕 돌코락스라도 먹었던 것일까?


나의 계기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였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브런치스토리 안에서의 신춘문예 같은 것이다. 매년 모집 창이 뜨면 나도 해보자! 부풀어 올랐다가 며칠 뒤면 까맣게 잊어버렸고 문득 다시 생각났을 때는 이미 프로젝트가 끝나버린 후였다. 진심인지 입버릇인지 모를 '아쉽네'로 마무리하는 루틴을 벗어나 이번에는 진짜로 지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쥔짜 최최최종 진짜로.


프로젝트에 지원하려면 일단 브런치 작가부터 되어야 한다. 나는 이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에 곧장 브런치 서랍을 열고 '얼굴만 있는 인형'들(1화 참고) 속에서 10개의 얼굴들을 추려냈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아는 나는 분명히 또 까먹고 말 것이었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묵혀있던 글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하나씩 매듭지어졌고 언제 다 마무리짓나 싶던 10개의 글들이 완성되었다.


미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벼락치기에도 일가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것이다
-플라톤











하지만 나의 뻘짓은 계속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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