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 엘르
이번 주제는 음악이래. 내가 음악 얘기를 한다면 무슨 글을 쓸 것 같아? 하고 넌지시 친구에게 물었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 Top3에 들어가는 친구가 키워드를 듣자마자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거 말고 없네'.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전염된 나도 낄낄거리며 웃고 대답했다. '그치? 그거 말고 없어'.
나를 아는 모든 이가 아는 그 이야기.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할 이야기. 그래서 꺼내 본다.
어느 덕후의 이야기를.
때는 2004년 어느 겨울, TV 신봉자는 그날도 TV 앞에서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리모컨만 위아래로 누르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고는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법, 평소라면 지나쳤을 SBS 인기가요에서 운명처럼 멈췄다.
한 남자가 침대에서 하품을 하고 일어나 옷을 차려 입더니 거울 앞에서 한 바퀴 돌곤 노래를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어나 창을 열고 상쾌한 공기에 나갈 준비를 하고…” 보컬의 목소리에 빠져 나도 모르게, 아침도 아닌 대저녁에, 얼어 죽을 찬공기로 가득한 날씨임에도, 그 말 따라 창을 열고 겨울공기로 폐부를 채웠다. 들려오는 가사처럼 창을 열어 맡은 상쾌한 공기는 참 추웠다. 그렇게 나에게 작은 신이 생겼다.
당시엔 소리바다가 대세였다. P2P 음원 공유 사이트로 맥주병인 나도 거기서 만큼은 헤엄 꽤나 치곤 했다. 윈도우 XP가 구동되던 데스크탑을 붙잡고 G그룹을 검색하고 1집부터 6집까지 전곡을 다운받았다. 앨범별로 정리해 폴더를 만들어 차곡차곡 담고 폴더에 표지도 넣어서 앨범처럼 만들었다.-지금 생각해보니 불법의 성지지만 당시는 저작권 인식이 워낙 약했다는 변명을 해본다. CD도 당연히 샀다.-
그렇게 만든 앨범을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 하루에 한 번씩은 재생했다. 앨범을 통으로 다운 받았기 때문에 타이틀곡 뿐 아니라 수록곡까지 골고루 듣게 되었다. 어떤 건 가슴 찡하게 좋았고, 어떤 건 인상 쓸 정도로 나와 맞지 않았다.
한 그룹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신기했다. 반복해서 듣고, 때로는 스킵 하면서 ‘하트’ 앨범에 담을 음악을 골랐고 당시 중학생이 되던 나는 조금씩 '취향'을 길러낼 수 있었다. 가사가 좋은 노래, 리듬이 좋은 노래, 그냥 어쩐지 맘을 울리는 노래를 정해지지 않은 순서로 들었고, 바탕화면에선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가 만들어준 규칙 없는 파형이 뜨곤 했다. 잔잔한 연못 한 가운데 돌을 던져 만들어낸 울림처럼 퍼지는 원이나 그라데이션으로 커지는 기다란 선형 파동을 보며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모양대로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G그룹은 안정감 있는 보컬과 쉼을 선사하는 가사로 유명했다. 복잡한 사춘기로 세상을 삐뚜룸하게 바라보는 나를 인도하는 성경 같았다. 친구들에게 말 실수 하거나, 서툰 경험에서 비롯된 아쉬움이 생길 때마다 나는 울면서 컴퓨터를 구동했다. 성호를 긋듯 ‘하트’ 폴더를 누르고 방구석에 쳐박혀 죄를 고백하듯 절실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들의 음악은 신부님이 되어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나를 훈계하고 보속해줬다. 불순한 마음으로 가득한 날에는 나 대신 통회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때아닌 고해성사를 마치면 신기하게도 마음에 안정이 이렀다. 신이 없는 내게 그들은 신이었다.
나의 경우 ‘덕통사고’를 당해 불이 지펴진 케이스였다. 난 G그룹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내게 중간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겁대가리를 상실한 중1이 팬카페에 올라오는 스케줄을 확인하곤 하교 후 전자사전과 책 가방을 든 채로 서울 여정에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서울은 눈 뜨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며 어디 중학교 1학년짜리가 함부로 다니냐고 잔소리 했지만, 나는 엄마의 눈을 피해 KBS, MBC를 잘도 헤집고 다녔다.(SBS는 목동이라 멀어서 자주 못 갔다.)
당시 내가 살던 시에서 서울 여의도까지는 1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시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하길 몇 번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형부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준 미키마우스 MP3 속에서 흐르는 노래를 들으면 용기가 솟아났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신길역에서 환승하던 내 귀엔 엄마의 잔소리 대신 그들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룹은 1세대 아이돌로 한 시대를 호령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보기 힘들어졌다. 엔딩이 아닌 오프닝을 맡았고 점차 보기 힘들어졌다. 'The Last' 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끝으로 활동이 뜸해지더니 급기야 활동을 중단한다는 기자회견까지 하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내 인생의 BGM은 그렇게 멈추고 말았다.
옛말에 틀린 말 없다고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 G그룹이 활동을 멈춘 후에도 나는 그들이 부른 노래와 비슷한 음악만을 찾아 들었다. 피가 JYP라는 나의 교리를 만들어 G그룹을 자주 프로듀싱했던 작곡가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공감가는 가사로 이뤄진 음악이 주었는데, 혼자 고립되어 있던 내게 은총과도 같은 음악들이었다. -아멘-
그리고 2014년, 먹고 노는 졸업반 대학생이 되서 인생의 BGM을 바꿔야 하나 고민할 때쯤 그들이 돌아왔다. 떡볶이를 먹다 뜬 G그룹 티저 알람은 나를 곧장 겁대가리 상실한 중1로 만들었고 취업을 준비해야 했던 대딩에서 머리 큰 덕후가 되어 이젠 서울이 아닌 전국을 쫓아다녔다.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아하!' 그렇다, 나는 그 시기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찍어댔다. 밑도 끝도 없었다. 그 시기 내가 이러고 다니는 걸 안 엄마는 미친년이라며 욕했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중1도 못말렸는데 스물넷을 어떻게 말려. 그렇게 끝없이 쫓아다닐 때에도 내 귀에는 그들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또 엄마는 원치 않던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2025년, 내 덕질은 여전히 ing형이다. 나는 1-2년 단위로 열리는 콘서트 '얼굴을 비추러' 가곤 한다. 명절마다 모여 같이 노는 가까운 사이처럼 내 가수와 나는 서로를 잘 잊고 지냈다가 잘 만나서 행복한 하루 이틀을 보내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은지씨 시절엔 G그룹이 활동했나?" 하는 덕후 급발진 시키는 질문에도 무던히 넘길 수 있는 강한 덕후로 진화해 텐션을 유지 중이다. 아직도 내게 오래된 가수가 뭐가 좋냐며 종종 놀리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세대 아이돌 좋아하면 그런 질문 안할 거세요? 라고 되묻고 싶은 마음을 참고 사람 좋은 척 웃는다. 어쩌라고요^^!
어떨 땐 그렇게 많이 들은 노래는 지겹지 않냐고도 묻는다. 천만에, 덕후가 자존심 상하는 일 중 하나가 첫음을 듣고 자기 가수 노래를 못 맞추는 일이다.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거쳐 이뤄낸 자랑스러운 성과인데 이게 어떻게 지겹나고요^^!
살면서 뭔가에 익숙해질 만큼 열정을 다해 반복해봤는가? 벅차는 사랑을 건넸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봤는가? 바라만 봐도 행복해본적이 있는가? 익숙해질 만큼 사랑하는 건 내 마음이 정하는 게 아니다. 소울이 정하는 거지.
나는 후회 없이 좋아했다. 열정을 쏟아봤다. 시간, 돈, 노력, 체력을 갈아서 부을 만큼 사랑했다. 때문에 나는 미련이 없다. 나는 원 없이 불 타올라 심지를 다 태워야지만 끝나는 사람이란 걸 경험으로써 깨달았고 날 조금 더 알게도 됐으니까, 그거면 됐다.
내게 음악을 좋아하냐 물으면 아니,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럼 내게 음악이 뭐냐 되묻는다면 내가 품고 있던 열정을 터트려준 매개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직 내 인생의 BGM은 바뀌지 않았지만, 다른 어떤 덕통사고가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G그룹을 미친듯이 쫓아다녔던 그때처럼 새로운 덕통사고를 기다리며 난 후회 없이 사랑하고 불 타올 준비를 한다. 그래, 난 덕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