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을 파다 뒤를 돌아봤더니.

by 권은지

'난 80 넘음, 죽을 거야' 스무 살을 갓 넘긴 시절 주구장창 떠든 말이다. 고백하자면, 스무 살 이전의 삶은 지난했고, 의사는 1도 반영되지 않은 벌어진 일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어야만 했다. 산다는 건 생존이었다. 동시에 주변을 바꿀 용기가 없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꿋꿋하게 살아가다 왕자님에게 선택 받는 신데렐라처럼 예쁘기라도 했으면 다를까? 다 뒤집어 엎고 집을 뛰쳐나오는 명랑소녀 성공기를 그려야하나? 지금이야 피식 웃게 되는 몇 가지 가정들이지만 그땐 눈물로 쓴 희망의 IF였다.


애석하게도 가난은 사람을 치졸하게 만들었다. 어색한 친구 사이 가벼이 건네고픈 사탕을 망설이게 하고, 아빠가 문구점을 하는 친구에게 그 문구점에서 모은 메달로 산 공책을 선물하게 한다. 가뜩이나 없는 자존심이 박박 긁히고, 또 긁히다 보면 너무 아파서 움츠리게 된다.


아 아파요, 그만하세요. 내상 치료를 위해 웅크릴 여유는 없다. 웅크리면 그때 가난은 다시 덮쳐오니까. 역시나 내 의사는 1도 반영되지 않은 캄캄한 가난은 이번엔 빛을 가려버렸다. 갑자기 밝은 빛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을 찌푸리는 것처럼 어둠에 익숙해지면 빛을 두려워 하게 된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작은 웅크림 속에서 스스로를 가둔다. '안 될 거야', '글렀어' 라는 이름이 붙은 땅굴을 만들어 지구 내핵까지 들어갈 정도로 깊고도 은밀하게 판다. 땅굴을 파다 보면 뭐가 나오냐면 일단 앞에도 옆에도 모두 축축한 흙이다. 땅굴엔 돌 뿌리도 있고, 썩어 빠진 부스러기들도 많지. 한없이 파고 또 파면 어느새 더 이상 땅굴을 팔 숟가락도 힘도 없어지고 말야. 땅굴도 한 두 번이지 하도 파다 보면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 질문에 도달하는 순간 딩-하고 머리가 맞는다. 언제까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자연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 주변은 어떤지 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한다. 매번 보던 앞을 보고, 이번엔 옆을 본다. 언제라는 질문은 뿌연 각막을 벗겨낸 것처럼 시야를 트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동시에 그동안 보지 못한-눈 앞에 두고도 외면했던- 그림자를 깨닫고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 깊은 땅굴로 들어갈 수록 희미하게 다가오는 한줄기 빛. 눈을 찌푸리지 않아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선명한 그 빛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그야말로 구원, 그때 다시 한 번 딩-.


그러게 말이야, 내 뒤가 빛이었지? 살짝 몸을 틀어 내가 팠던 땅굴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간다. 난 분명히 땅굴을 파면서 어둠만 봤는데 뒤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한 줄기 빛 하나로 그동안의 삼면과는 전혀 다른 삼면을 보여준다. 나아가야 할 길을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가고 싶다 그 문자 자체인 열망에 사로잡힌다. 스쳐 지나왔던 돌 뿌리를 디디고 썩어 빠진 부스러기 옆에 숨어있던 나뭇가지를 밟아 다가간다. 어두웠던 방에서 일어나 커텐을 치고 만난 빛은 처음엔 눈을 찌푸리게 하지만 점점 익숙해져 당연해지는 것처럼 점차 나아지는 삶을 피부로 느낄수록 더 위와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이쯤에서 주제로 돌아가 보자. 가장 인간다운 욕망은 무엇일까?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끝나지 않는다. 다음을 갈구하고, 이상을 원한다. 그저 욕구 해소로 끝나지 않고 욕망 하는 것이 인간이다. 가장 인간다운 욕망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용기에서 기인한다. 이대로 멈출 수 없다는 의지를 시작으로 나아질 거야-위로- 그리고 나아갈 거야-앞으로-란 희망을 품고 달리는 무모함이 멋져보이는 게 인간이다. 고리타분하면서 동시에 독창적인 나아지고하는 욕망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한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용기가 욕구하는 동물이 아닌 욕망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음... 아직도 80이 넘기 전에 죽고 싶냐고? 막상 빛을 보고 달려보니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서 80은 좀 짧아 보인다. 웁스, 어쩌겠어. 조금 더 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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