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근한 사랑

by 권은지

나는 90년대 노래를 좋아한다. 속칭 세기말 감성이라는 건데 라떼는 말이지 사랑하면 다 하늘나라로 떠나곤 했다. 왜 하늘은 널 데려가는지는 모르는 건 물론이요, 천국으로 편지를 보내기도 예사였다. 어린 나이에 사랑은 짙은 향만 남기고 아름답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줄 알았다. 어릴 때 들은 세뇌 같은 노래를 중얼중얼하다가 막상 사랑을 하려니 이거 원 왜 이리 형태가 많냐 말이야.


일단 아무도 죽지 않은 채로 사랑을 해야 했다. 음, 너랑 나 둘 중에 아무도 안 죽는다고, 그럼 애절해질 수는 있어?라는 질문에서 시작된(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서툰 사랑이 결국 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자 하는 못된 심보로 번져 테스트가 되고 천겹토스트처럼 얇고 높이 쌓인 오해가 불화를 일으켜 불에 질러 다 태워야 끝나는, 그야말로 불같은 이별을 몇 번 하고 나서야 사랑은 이런 게 아니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


새해가 되면서 빼박 30대 중반에 들어섰다. 앞만 보고 돌격하던 경주마와 같은 사랑에서 벗어나 사랑의 모양을 넓게 받아들이는 30대 유부녀로 진화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문득 거울에 비친 바라봤는데 막 쓰기 좋은 검정 모자, 딱 나에게 필요한 사이즈라며 들려준 크로스백, 자신의 출근길에 피부로 느낀 온도를 아침부터 공유해 선택하게 한 외투, 그가 세탁한 깨끗한 맨투맨과 바지,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선물한 아식스 운동화, 추위를 많이 타니까 꼭 챙겨 다니라는 풀로 충전해둔 손난로형 보조 배터리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익숙하게 그의 손을 탄 내가 서있었다.


이젠 무릎 꿇고 절절한 사랑 고백을 받지 않았음에도 이것이 사랑임을 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마르고 닳도록 귀에 속삭이지 않았음에도 그가 보낸 출근 잘했냐는 문자 메세지가 사랑임을 안다. 새삼스럽게도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음을 경험해 보고서야 깨달았다. 결혼 N년차에도 손 잡아서 떨리면 부정맥이라던데, 기념일엔 꽃을 주겠단 약속을 무사의 다짐처럼 지키는 진정성엔 제법 설레며 사소한 일상에서 그의 사랑을 체득하고 있다.


불꽃만이 사랑은 전부가 아닌 것처럼 사랑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자라난다. 은은하게 타는 숯에서도 따뜻함을 느끼고 활활 타지 않는 손난로에서 온기를 느끼듯이. 타오르는 형태에 목맬 것 없이 타오르고 있음에 우리는 사랑의 온기를 받는 셈이니까. 그래, 사랑 어렵지 않잖아.


지난 연말과 연초를 거쳐 참 많은 모임을 했다. 예전이라면 연애나 하라고 한 소리 했을텐데 이번엔 조금 다른 연설을 했다. 눈 뒤집혀야만 사랑이냐, 사랑이 별거냐. 우리가 만나 시간과 온도를 나누면 이게 사랑 아니냐. 우리 앞으로도 오래 사랑하자. 그게 어떤 모양이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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