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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un 08. 2022

태어나줘서, 잘 자라줘서 고마워

너의 날에 고마움을 가득 담아 엄마가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어렸을 적부터 생일이 되면 우리 엄마 아빠도 아닌 다른 어른들로부터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매사에 잘 꼬아 듣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말이 꼭 나를 주인공 자리에서 자꾸 밀어내려는 말 같아 괜 심사가 뒤틀리곤 했다. 물론 기분 좋은 날이면 엄마 아빠에게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살가운 애교를 곧잘 부리긴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의지였고, 누군가 강요하듯 이야기라도 하고 나면 김이 딱 새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그런 마음이 내 아이를 낳고 기르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다. 나의 고생을 감사받아야겠다 생각이 들 줄 알았다. 특히 현진이를 출산하던 당시 너무 고생했던 탓에 그 순간엔 다시는 애를 낳나 봐라 하는 마음을 먹을 정도였으니, 이 날의 고생을 기억해 꼭 진심 어린 감사함으로 돌려받으리라 생각이 들 줄 알았다.


그런데 낳느라 키우느라 다른 엄마들처럼 나름의 고생을 다 했어도, 아이의 생일엔 생일인 아이만이 우리 집의 주인공이고 고마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전히 생일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는 날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의학적 정보에 의하면, 출산 당시 느끼는 산모의 고통보다 태아 느끼는 고통이 수배는 더 크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던 당시의 힘듦을 기억하지 못하고 낳아놓은 아기는 말을 할 줄 몰라 그렇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엄마보다 더 큰 고통을 감내하며 세상에 태어났단 말이다. 그렇다면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게 아니라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줘야 하는 게 맞다. 엄마가 널 낳느라 고생한 걸 감사하라는 건 지극히 어른 입장일 뿐. 출산의 날 느낀 어마어마한 고통의 가장 큰 당사자는 사실 아기였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키우는 일 못지않게 커가는 일은 때론 고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 그렇지, 힘듦과 고됨과 시련은 분명히 모두의 어린 시절 속에 존재해왔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날들을 평온하게 살아가지만, 키가 훌쩍 자라는 날이나 이빨이 새로 나는 날 같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장의 순간 또한 아이들이 홀로 겪어내야 하는 고된 시간일 테다. 물론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어떤 일보다 고생스럽다. 대신 나는 매일 아이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 그날의 고생스러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하루하루 사랑이 충만할 수 있다. 수많은 순간들에 아이의 성장 덕분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어쩌면 감사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현진이의 생일에 생각한다. 오늘은 너의 날. 너만이 주인공인 날. 모든 감사와 축복이 너에게 향하는 날. 얼토당토않게 어린 아가들이 하는 레고 듀플로를 선물로 사달라고 해도 오케이 하는 날. 낮엔 스파게티를, 저녁엔 피자를 먹겠다고 해 속이 버터 덩어리가 된 것 같이 느끼해져도 맛있게 같이 먹어주는 날.


현진이는 생일에 바다를 보며 수영하고 싶다고 했고, 우리 부부는 둘째의 생일도 함께 축하할 겸 프라이빗 수영장이 있고 멀리서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둘째의 생일엔 가족 모두가 코로나 확진이 되어 집에 갇혀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우리만의 공간에서 실컷 웃고 떠들며 즐거운 생일을 함께 했다. 함께 바다를 봤고, 함께 수영을 즐긴 내 아들의 생일.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되어서 행복하다 말해준 너의 생일.


너의 생일을 기뻐해 줘서 고마워.

네가 우리에게 온 날을 행복하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태어나줘서, 잘 자라줘서, 나의 아들이어서 고마워 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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