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열여덟, 서른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나는 어느 봄날 잠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비를 맞고 길 위로 쓰러진 벚꽃들. 생기를 잃은 꽃잎은 빗물에 흠뻑 젖어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철퍽이며 마지막 숨을 들썩였다. 봄의 끝 자락이었다. 한 시간의 짧은 레슨을 끝내고 학원 밖으로 나오면 무더웠던 한낮은 어느새 어스름 해져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성인반 피아노 레슨은 단계를 높여가는 바이엘, 체르니처럼 체계적인 교육이 아니다. 그럴 것이 배움의 이유가 콩쿠르 입상이나 대학 진학이 아닌 오로지 흥미에서 시작한 취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치고 싶었던 곡을 목표로 쉽고 귀에 익숙한 곡부터 배워 나간다. 그중 바흐의 Prelude No1이 있었다. 나는 다 크고 나서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다. 어릴 적 또래들에 비해 짧게 배웠던 피아노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지만, 즐거운 삶을 위해서라는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하나정도 있어야 한다던 어떤 유명인의 조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강하게 나를 건드렸던 것은 열망이었다. 어느 날 흘러 들어온,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민들레 홀씨만큼 작고 가벼운 음악에 대한 열망이었다.
열 살에 나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 책가방을 피아노 가방으로 바꿔 들고뛰는 듯 걸어서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시장 골목 끝자락, 낡은 벽돌 건물 이층에 있었던 학원은 허름한 외관과 달리 언제나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피아노가 한 대씩 놓여 있던 개인 연습방이 적어도 3개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우아해 보였던 하얀 피아노 연습방을 좋아했다. 기다리지 않고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새하얗고 기다란 피아노 뚜껑을 연다. 희고 검은 검반들을 하나씩 눌러본다. 유난히 짧은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이 검은건반에 잘 닿지 않아 애를 쓰다 보면 짜증이 난다. 그러나 서툰 연주도 금세 흥이 올라 네 번째 손가락을 무시한 채 빠르게 악보를 넘긴다. 바닥에 닿지 않던 두 발은 들썩거리던 손가락에 맞춰 앞뒤로 동동거린다.
피아노를 치는 일은 즐거웠다. 학원은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나는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끝으로 더 이상 학원에 가지 않았다. 아마 체르니 100번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난 지금 체르니 삼십몇 번을 치고 있어”, “난 오십 번까지 쳤어” 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홀씨 한 알 날려보지 못한 채 숨겨야 했다. 대학진학 준비로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열여덟, 음악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던 친구를 발견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였다. 연주는 너무 빨랐고 필요 이상으로 강했다. 허나 잘 치고 못 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홀려 있었다. 넋을 놓은 채 숨죽이며 그녀를 지켜봤다. 그녀가 내 존재를 알아챈다면 더 이상 연주를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녀는 문 너머 있던 염탐꾼의 존재는 모른 채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와 닿아 있던 그녀의 몸은 피아노의 일부였다. 그녀의 영혼은 손끝을 타고 피아노 건반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뜨거운 영혼이 스며든 소나타의 선율은 바글바글 끓어올라 그녀의 머리 위로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나도 저렇게 쳐보고 싶다. 월광 소나타를’
내 안에 열망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입시라는 현실이 비현실에 가까운 열망보다 앞섰다. 열여덟, 세상이 정해 놓은 다음 계절은 대학이었고, 피아노와 같이 지극히 흥미로운 행위는 계절을 거스르는 것과 같았다. 봄비에 꽃잎을 떨구는 일은 나무의 운명이었고, 어린 나무는 강한 빗줄기를 맞으며 꽃잎을 움켜쥐며 운명을 거스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서른, 다 커버린 나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계획에도 없던 피아노를 다시 배워야겠다며 홀씨를 바짝 세웠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하나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가끔 바이올린을 켜요” 텔레비전 속 유명인은 음악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했다. 피아노가 또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무료하나?’ 싶었다. 나는 곧장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배우지 말아야 할 걸림돌은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 민들레 홀씨가 필요했다.
피아노를 치는 나의 손짓은 한 박자 씩 늦었다. 음표 하나를 누르고 동시에 다음 순서를 준비할 만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번에 여길 눌러야 한다는 판단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피아노를 치지 못했다. 단지 남의 글을 베껴 쓰듯 건반을 꾹꾹 눌러 나갔다. 바닥에 닿아버린 두 발은 굳게 다문 입처럼 꼼짝달싹 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서른에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다른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머리를 굴려야 했고, 골똘히 생각해야 한다. 배움의 시작은 모두 그러함에, 잠시 다독여 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을 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지만 나는 또다시 피아노를 포기했다. 유난히 덥고 짧았던 3개월 남짓의 봄날을 시한부로 열망은 조용히 죽어갔다.
오랜만에 듣는 월광 소나타였다. 뮤지컬에 빠져서 공연을 보러 다닌 지도 거진 일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뮤지컬 ‘베토벤’ 무대 위에서 월광 소나타가 넘버로 흘러나왔다.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는 보름달이 뜬 밤, 프라하 까를교 위에서 흐느끼며 소나타를 부른다. ‘소나타는 원래 저런 곡이었지’ 칠흑같이 검은 블바타 강이 곧 달을 삼켜버릴 것처럼 우울하다 못해 음침한 곡이다. 뜨겁게 끓어올라 정수리 위로 피어오르던 소나타는 이제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날은 어둡고 추웠다. 낮 동안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비는 멈췄지만, 비가 남기고 간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그토록 작고 가볍던 열망, 나의 민들레 홀씨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 유난히 춥던 날, 나는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