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하울이를 만나러 부천에 사는 언니집에 갔다. 빌라 공동출입문 앞에 서서 호출벨을 누르는 순간부터 하울이는 이미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하울이 목소리였다. 까랑까랑 힘차게 울려 퍼지는 하울이 소리를 들으니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해로 7년을 살아온, 사람 나이로 치면 50대를 바라보는 하울이는 처음 본 그날처럼 미친 듯이 나를 반겼다. 어서 안아달라고, 어디 갔다 왔냐며 쉴 새 없이 두 다리로 폴짝이며 뛰는 하울이를 냉큼 안아야 했다. 어릴 적에 다리가 부러져서 수술을 한 번 받았고 몇 년 저에는 슬개골 탈골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여름에 털을 다 밀어버렸는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네 다리가 훤히 보였다. 하울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한참 쓰다듬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하울이는 여전했다. 작고 하얗고 보송했으며 크고 까만 두 눈은 반짝거렸다. 강아지의 맑은 영혼은 우리와 달리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거나 변질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울이는 7년 전에도, 1년 전에도, 4개월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달리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 곳에서 반짝이는 두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던 하울이와 달리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언니의 결혼으로 나는 하울이를 떠나보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하울이 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울이를 언니 품에 내어주던 그날 밤, 극도로 불안하고 두려워하던 하울이의 감정을 나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이 사람과 나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구나, 그 사실을 하울이는 짧은 순간에 모두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울이를 보낸 뒤 밤새 눈물을 펑펑 쏟아냈지만 이중적 이게도 하울이를 데려와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하울이를 떠나보내는 대신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미안함과 더 나아가 죄책감이라는 돌이 마음 한 구석에 들어와 콱 박혔다. 그 돌은 문득문득 들썩이며 하울이를 상기시켜 나를 괴롭혔다.
언니는 결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를 출산했다. 자신의 인생에 아기는 없다며 하울이가 나의 유일한 자식이라고 말했지만 신이 결정한 운명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했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한 줌의 관심도 없었지만 자기 자식에게만큼은 놀라울 만큼 거대한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았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안고, 분유를 타 먹이며, 울고 웃는 아기를 보며 언니는 행복해했다. 엄마가 되어버린 언니의 모습은 낯설었다. 아기는 어느덧 돌이 지나서 두 발로 걸어 다녔고, 어린이 집에 다녔다. 한 가족의 어였한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아기는 낯선 사람도 좋아했다.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내 머리칼을 만졌다. 순하고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내가 보아도 이렇게 이쁘고 귀해 보이는데, 이제 언니에게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니 애달프게도 하울이는 더 이상 언니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아기, 남편, 그리고 자신 그다음쯤으로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 있었다. 언니는 하울이를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하울이를 한 번 더 보살 폈을 시간에 이제는 아기를 한 번 더 안아줘야 했고, 하울이 밥을 먼저 챙기는 것보다 입이 짧아 밥을 잘 먹지 않는 아기에게 뭐라도 먹이기 위해 신경을 쏟아야 했다.
배를 뒤집고 누워 웃고 있는 하울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이 늙어 있었다. 털과 코에는 윤기가 없었고 예전보다 더 말라 있었다. 몇 달 전에 이빨이 썩어서 두 개나 빠졌다는 언니말이 기억나 입을 벌려 이빨 상태를 보았다. 앞니가 위에 하나, 아래 하나 빠져서 텅 비어 있었다. 남아있는 이빨들도 치석이 잔뜩 끼어 있거나 썩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철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금세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타고 올랐다. 마음 한 켠에 박혀 있던 미안함과 죄책감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언니는 매일 양치를 해주고 있다고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였다.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만 반복하며 주저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회사에 가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아기를 돌봐야 했다.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어쩌면 당연한 주저였다. 더 이상 하울이는 자식만큼 신경 써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느껴졌다. 혹시 산책은 어떻게 하고 있냐는 물음에 언니는 자주는 나가지 못한다며 고래를 흔들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다그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럴 자격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나가고 있는 말을 듣고 고생이 많다며 언니를 위로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해가 떨어지고 있을 때쯤 하울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 줄만 들고 와도 신이 나서 뱅뱅 돌며 보채는 모습에 마음은 더 아렸다. 산책에서 돌아와 발을 씻기고 나서야 하울이는 내 품에 안겨 곤히 잠 들었다. 아직도 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좋지 않은 이빨 걱정에 자고 있는 하울이의 입술을 몇번이나 뒤집어 상태를 확인했다.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 치아 관리, 치석 스케일링, 치료방법, 치주염 등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찾아본 정보를 보내고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가자는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치료 비용이 많이 들면 절반은 내가 부담하겠다며 언니를 설득하고 있었다. 답은 걱정해 줘서 고맙다. 고민해 보겠다였다. 더 이상 회신할 수는 없었다. 이것 역시 언니의 탓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하울이를 한 번 더 무시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울이를 위해서 온전히 내 시간과 돈, 책임을 짊어질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선뜻 자신을 내지 못했다. 이사도 해야 하고, 일도 바쁘고 등등 갖은 핑계를 세고 있었다.
이사가 끝나면 하울이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와 짊어지기 힘겨워질 정도로 무거워진다. 하울이에게 소홀한 언니를 잠시나마 원망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다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울이를 가장 먼저 안아 들지는 못했다. 그 대신 미안함과 죄책감의 돌은 더 무거워져 세게 나를 짓눌렀고 마땅히 참아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하울이가 이 사실을, 인간의 잔인한 이기심을 몰라서 천만다행이다. 언니에게 병원에 데려가라고 책임을 넘기던 그날 밤도 하울이는 오랜만에 나를 만나 행복한 하루였다며 곤히 잠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