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는 푸바오만 사는 것이 아니다

by 루시

최근 용인 에버랜드를 다녀왔다. 요즘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푸바오도 보고 사파리월드도 들어가려면 오전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입장 대기 줄을 서야 했다. 에버랜드 주토피아는 국내 동물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동물보호 환경 및 사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문은 거의 10년 만이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에버랜드 개장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설적인 측면에서 낙후된 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에버랜드가 동물복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실증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점들이 눈에 거슬렸다.


사파리의 대형동물과 판다월드의 판다는 에버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동물들을 보기 위해서 최소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많은 사람에게 남다른 관심을 받는 만큼 에버랜드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관람 시간을 제한하고 관람객과 동물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어 동물들의 불편을 최소화했다. 또 서식 환경도 생태환경에 최대한 가깝게 조성하려는 노력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소동물의 사육환경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법적으로 지켜야 할 사육장 크기가 작은 소동물과 사육장은 동물을 전시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통유리로 된 좁은 사육장 안에서 라쿤, 바위너구리, 원숭이 등 많은 수의 동물이 모여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동물들을 보기 위해 창 앞에 바짝 붙어 손가락질하며 이들을 구경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육장 안 동물들은 인간들의 따가운 시선을 쉴 새 없이 받아내야 했다. 아무리 지능이 낮은 하위동물일지라도 매일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전시되어야 하는 현실은 분명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에버랜드도 동물을 위한 완벽한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다수 동물원의 실상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지난 10월 16일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그랜트 얼룩말 세로의 여자 친구 코코가 죽었다. 코코는 작년 5월에 태어나 6월 광주 우치공원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전입했다. 새로는 2019년 6월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지내다 2021년 엄마 루루, 2022년 아빠 가로를 잃고 축사에서 홀로 지내다 울타리를 부수고 동물원에서 탈출한 적이 있다. 원래 얼룩말의 수명이 약 20년인 것을 감안하면 코코, 루루, 가로 모두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이 죽어버린 셈이다. 10월 25일 이경숙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설공단에서 받은 ‘어린이대공원 동물 폐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2023년 5월까지 폐사한 동물은 총 177마리며 이 중 96마리가 질병, 사고사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폐사한 동물 중 ‘국제 멸종위기종(cites)’은 76마리에 달한다. 멸종위기종에 속한 동물을 사육할 시, 사육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개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동물원의 부실 운영으로 고통받는 동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남 부경동물원의 동물복지 문제는 개장 초기부터 계속 제기되었다. 사자, 호랑이, 늑대 등 대형동물들을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실내 사육장에 전시하고, 1~2년마다 털 관리가 되어야 할 양들은 어떤 관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지난 6월부터 부경동물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동물원의 실태를 고발하는 게시글을 시청 게시판에 올리면서 동물원의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갈비뼈가 앙상히 보일 만큼 비쩍 말라서 일명 ‘갈비사자’라고 불리던 바람이는 사람들의 이목에 집중되어 7월 청주동물원으로 보내졌다.


부경동물원은 2020년 코로나 확산으로 관람객이 줄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시설 투자나 관리 인맥 감축 등이 열악한 환경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개장 초기인 2013년부터 계속 불거졌다. 여러 차례 문제 제기에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동물권 인식 부족과 부실한 동물원 관련법 때문이다. 김해시는 동물들의 서식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현행법령으로 개선 조치가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 동물원 관련법은 적당한 서식 환경에 대한 기준이나 벌칙 조항이 없어 과태료나 개선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이어서 “다만 매월 1회 수의사와 동행해 동물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고 큰 문제는 없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질타와 언론의 비판을 받았던 서울어린이대공원, 부경동물원의 행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민영 동물원은 이보다 더 참혹한 환경에서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동물을 전시한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관련법 개정이다. 10월 10일 환경부는 “오는 12월부터 동물원, 수족관 허가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물원수족관법 정부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고 “앞으로 동물의 생태 특성을 고려한 사육시설과 적정한 전문인력이 갖춰지면서 동물복지가 전반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부터 개정되는 동물원수족관법은 이전과 달리 101개의 조문을 만들어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을 둔다. 또 기존에는 최소한의 등록 요건만 충족하면 동물원 운영이 가능했지만, 동물원 허가제로 개정되면서 동물 생태 습성을 고려한 시설과 복지에 관한 기준을 충족한 동물원만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동물원은 사육환경의 적정성을 주기적으로 동물원 검사관에게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기준은 신규 동물원에 한정되고 기존 동물원의 경우 5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한계점이 버젓이 드러난다.


법의 한계를 메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안이 필요하다. 동물원 시설에 대한 인식 재규정과 동물권 인식 확대이다. 동물원은 동물 전시가 아닌 다양한 생물의 증진과 보존 그리고 보호를 위해 필요한 시설이라고 재규정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의 동물권 인식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기후 변화와 인간, 야생동물의 서식지 손실과 밀렵에 의한 개체수 감소, 야생동물 생존의 위협 문제에 집중하고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자 멸종위기 동물의 보존지, 보존 과학의 터전”이라는 철학을 고수한다. 지구상에서 인간과 동물이 상생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인간의 인식개선 밖에는 없다.


부경동물원이 경영난은 서식 환경 악화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동물들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아무리 법이 개선될지라도 소자본 민영 동물원은 법 울타리 안에서 최소한의 환경만 유지하며, 동물 보호보다 전시 목적에 우위를 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동물보호 단체나 개인이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정부와 동물보 호단체, 시민이 연합하여 동물원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재원이 부실한 민영동물원의 폐원하고 국립공원 형태의 대형 사파리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의 장기 정책으로 채택하고 매년 예산과 인력을 늘려 단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사는 푸바오는 오후 2시부터 볼 수 있다. 내부 관람 시간도 5분으로 제한한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운영 방식이다. 두 시간이 넘는 긴 대기 줄을 견디고 마침내 내부로 들어갔지만, 푸바오는 나무 위에서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었다. 두툼한 뒤통수와 엉덩이밖에 볼 수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관람객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하지만 큰소리를 낼 수 없다.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사육사들이 주의를 준다. 이곳 에버랜드 판다월드는 인간보다 판다가 우선이다. 동물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앞으로 모든 동물원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판다월드와 푸바오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 동물원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동물원에 가는 우리의 마음도 지금보다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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