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나는 하루키처럼, 혹은 운동을 좀 한다는 요즘 사람들처럼 러닝에 관심은 없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는 관심이 있었기에 그가 달리기라는 취미를 어떻게 해 나가는지, 달리기를 가지고 어떤 글을 쓰는지, 달리기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결국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오래전에 분명 1 회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는 글 마냥 모든 문장과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왔다. 아마도 내가 달리기에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의 달리기 이야기를 읽으며 그가 분명 숨겨 놓았을 본질적인 내용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니깐 '나는 달리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달리기를 통해 이것을 깨닫게 되었고, 더 나아가 글을 쓰고 삶을 살아가는 것에 이러한 의미가 있다!라고 외치는 하루키를 찾으려고 했다.
하루키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하루키는 책의 80% 이상을 순수히 달리기와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 그리고 10% 정도에 내가 원하던 이야기를 틈틈이 덧붙이는 수준이었다. 본식을 모두 마치고 약간의 디저트를 내어주듯이
책을 읽는 목적을 정해놓고 독서를 시작한 것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식사 코스 중에 디저트의 달콤한 기억만 강하게 남아도 그건 좋은 식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한 장을 모두 읽고 나서 충분히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키는 시작점에서 말했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막바지에 말했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이 두 문장은 사실 같은 의미다. 시작점에서 말한 공백과 침묵을 그저 달리는 행위는 눈으로 보았을 때 효율이 나쁜 행위, 공허한 행위로 보인다. 하루키는 효율이 나쁘고 공허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 중에 하나이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행위라고 말한다.
하루키는 마라톤 대회를 위해 매일 일정 시간 러닝을 하며 몸을 단련시킨다. 그렇게 꾸준히 달리던 그가 목표로 하던 대회에 나가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변수와 실전에서 따라주지 않던 신체 때문에 이전 보다 더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그럼에도 그는 달리는 행위를 즐기고, 끝까지 걷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기록의 진전은 없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 자체로서의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키며 스스로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기에 러닝과 마라톤 대회를 도전하는 일은 하루키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하루키의 디저트는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글 쓰는 행위는 언제나 귀찮고 심지어 고통스럽다.
글 쓰는 행위로 글쓰기 실력이 늘지도 않는 것 같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행위를 절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행위를 통해 소중한 것을 찾아내고 좀 더 나은 나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글을 쓰겠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보아도 쓸모없는 행위일지라도 나에게는 가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