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몽골
여행은 사계절을 닮았다. 1년의 시간안에서 한개의 계절도 뛰어넘을 수 없듯이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사계절 중 가장 더운 여름이라면 여름이 오기 전 항상 봄이 먼저다. 포근한 봄날은 유난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여행의 출발일을 기다리는 설렘과 닮았다. 강렬했던 여름이 지나면 더위를 지친 몸을 식혀줄 가을이 찾아온다. 여행지에서 지친 몸과 흥분된 기분을 일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계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가을은 어느새 차가움을 더해 겨울이 된다. 추운 겨울날 우리는 지난 여름날의 뜨거운 온도,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여행의 여름은 가장 강렬한 추억으로 남지만 봄, 가을, 겨울도 각자 의미 있는 시간이다. 지난 2019년 몽골 여행은 여행의 모든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몽골 여행의 시작은 4월 따뜻한 봄이었다. SNS에서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몽골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와 유진은 망설임 없이 여행을 결정했다. 출국일을 8월 말로 정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몽골은 자유여행이 불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최소 4인 이상의 그룹을 만들고 현지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신청해야 한다. 몽골 여행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동행자 4명을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총 6명의 여행자는 7월 초 사전 모임 전까지 온라인으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여행지와 날짜를 결정하는 일, 정보를 모으며 여행지에서의 나의 모습을 그려가는 일, 새로운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드는 일, 출발 전 준비 과정은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듯 설레고 두근거린다.
어느덧 7월이 되었다. 장마도 끝나고 뜨거운 여름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전 모임 며칠 전부터 유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낯선 동행들이 혹여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사람들이 아닐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나까지 불안의 감정을 일으켰다. 다행히 우려와 달리 꽤 괜찮은 구성원이었다. 여행자 2명은 경찰이었고 2명은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는 어색할 겨를도 없이 몽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몇 시간을 떠들었다. “드디어 우리 내일 만나는 거네요? “여행자 1이 들뜬 마음으로 출국 전날 밤 단체방에 톡을 남겼다. 열대야 때문인지 여행자 1의 들뜬 마음이 전염되었는지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출국행 비행기에 뛰어올랐다.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친 비행기는 힘차게 활주로를 달린다. 드디어 바퀴를 접고 이륙한다. 하나, 둘, 셋, 계단을 오르듯 하늘길로 올라가는 비행기와 함께 마음도 하늘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몽골의 여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내일 돌아가는 거 실화에요?” 여행자 2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아쉬움을 내뱉었다. 귀국일 아침 돌덩이가 된 여행용 가방을 여민다고 남아있던 온 힘을 쏟아부었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다. 일주일 동안 함께한 정든 가이드와 헤어짐 때문인지 몽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다들 우울해 보였다. 기어코 여행자 3은 눈물을 삐죽 보였다. 조만간 서울에서 다시 보자는 가이드의 작별 인사로 마음을 달래고 지친 몸을 기내에 실었다. 서울은 이미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섞여있는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 돌덩이를 모조리 꺼낸다. 고비 사막의 사나운 모래 바람 덕분에 바스락거리는 옷가지들은 세탁기에 넣어버린다. 샤워를 마치고 그리웠던 침대에 마침내 몸을 뉜다. 차가워진 가을의 밤공기가 방안에 들어온다. 창문을 닫고 다시 눕는다. 몽골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한둘 씩 정리하며 훨씬 상쾌해진 기분으로 잠이 든다.
몽골에 대한 기억이 아른거릴 때쯤 11월 겨울이 왔다. 냉장고 앞에 서면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 모양 자석이 붙어있다. 뒤를 돌아 고비사막 앞에서 데려온 귀여운 낙타 인형이 탁자 위에 앉아있다. 삶의 공간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몽골의 추억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부산 본가로 내려갔다. 유진은 몽골 때 찍은 사진을 몇 장 인화해서 건넸다. 사진을 보며 머릿속 한쪽에 넣어둔 몽골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몽골에서 만난 이른 아침의 태양은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란 지평선에 걸터앉아 유난히도 붉은빛을 뿜어냈다.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은 차가운 초원의 밤공기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침낭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을 잤던 몽골 밤의 기억이 스친다. 내년에는 몽골 호수 지역을 돌자며 이야기한다. 셀러는 감정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몽골 여행은 단순히 일주일의 짧은 순간이 아니었다. 그해 봄부터 시작해서 겨울이 될 때까지 한때는 강렬하게 한때는 잔잔하게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