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찾아온 손님
여름 8월, 전국은 장마로 인해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름휴가차 ‘산골짜기 둥지’인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짐을 풀고 먼지가 쌓인 방과 주변을 청소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챙겨 온 삼겹살을 꺼내 석쇠에 올렸다. 장작불과 함께 익어가는 맛깔스러운 고기 냄새는 입안에 자연스럽게 침을 고이게 했다. 몇 발자국 앞에서 따온 고추와 상추에 지글지글 익은 고기를 싸서 먹으며 장작불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함께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느긋하게 잠을 청했다.
새벽 2시쯤 폭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컨테이너로 된 작은 집은 그대로 소리를 흡수했다. 우두둑! 우두둑! 쏴아 쿵쿵 쿵…….
금방이라도 집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동안 알고 있던 빗소리와는 달랐다. 문을 여니 컴컴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비는 불투명하게 빛을 뿜으며 주름진 커튼을 치듯 거세게 내리치고 있었다. 천둥과 번개도 덩달아 굉음의 빛을 내며 거세게 땅으로 내리꽂았다. 그 모습은 무섭기도 하면서도 신비로웠다. 시간이 경과되면서 땅은 떨어지는 물을 다 흡수하기에 역부족이었는지 빗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점점 컨테이너 주위를 감싸며 폭포수는 흐르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잠길 것만 같았다.
3평짜리 컨테이너 농막. 3평 안은 집의 축소물처럼 필요한 가전도구와 물품들을 갖춘 작은 집이다. 10년 동안 한 달에 2번 이상 오면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가꾼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밭에 작물을 심어 놓고 캐지 않은 적도 있고 그대로 방치한 적도 많다. 혹 농부가 지나가다 밭을 본다면 '이 집 농부는 게으른 사람이군' 하며 착각할 정도로.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3, 4년은 400평 정도 꽉꽉 채울 정도로 다양한 작물을 심어 수확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수확한 작물을 여기저기 저장하다 보니 저장 장소가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 썩어나갔다. 어떤 것은 효소로 장아찌로 말리고 담고 했지만 양이 많아지면서 집의 베란다는 넘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나무 창고를 만들었다. 한쪽은 목욕탕 한쪽은 창고. 처음은 저장 장소가 넉넉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농사도구들과 작물들로 창고는 비좁게 되었다. 결국 남은 작물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하수구로 흘러갔다.
우리의 시간은 휴식이 아닌 노동에 노동을 더하게 되어 힘들었다. 그 후, 산속 이곳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휴식의 공간에서 필요한 노동만 사용하고 먹을 만큼만 심고 수확하기로 했다. 힘들면 일하지 않았다. 수확물을 많이 거둘 수 있음에도 먹을 만치만 가지고 갔다. 컨테이너 바로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가을이면 밤, 도토리, 으름, 다래 등 여러 가지 채집할 수 있는데도 그 또한 먹을 만치만 채집했고 대부분 아예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리보다 밑에 사는 마을 사람들과 약초꾼들이 주로 와서 수확해갔다. 그러면서 산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먹이를 다 가지고 가지 않기를 바랐다. 자주 등장하는 고라니, 멧돼지, 작은 동물들의 먹이가 부족하면 동물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문제이기도 했다. 집으로 밭으로 내려오는 동물들로 인해 조금은 피해를 봤고 또한 예상치 못한 서로의 만남은 머쓱한 상태를 만들었다.
밤새 폭포처럼 내리는 비로 인해 작은 집은 잠기기 일보 직전이다. 정신없이 집 주위로 물길을 내어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분주하게 움직였다. 빗물은 물길을 낸 자리를 박차고 거침없이 콸콸 내려갔다. 우리는 그 이후 잠을 청할 수 없었고 그대로 흡수되는 거친 빗소리를 계속 들어야만 했다.
우리는 여름휴가를 비 때문에 이렇게 보낼 수 없다 생각하고 산골짜기를 잠시 나와 옆 동네에 위치한 유명한 사찰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곳으로 가면서 편치 않은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지나가는 길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로 길은 위험했고 간혹 일부분 무너진 길도 지나가야만 했다. 휴가철이라 계곡은 사람들로 붐볐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어떤 곳은 다리가 잠겨 꼼짝없이 갇혀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잠긴 다리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도 보였다. 대충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산골짜기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도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장마는 우리를 안식처에서 안식할 수 없게 했다. 집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종이 상자 속 쓰레기를 분리하고 정리하다,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쓰레기 종이상자 밑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있다. 그 상장 안에는 동물들이 싫어한다는 농약이 있다. 뱀이나 쥐 그리고 그 외의 벌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간혹 흙과 컨테이너 주변에 뿌려놓는 농약이다. 위의 상자를 치우자 그 밑 작은 상자 안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 농약봉지에 기댄 채. 분명 효과가 있다고 한 농약인데 어이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머쓱한 만남이다. 나는 쓰레기 종이상자를 든 채 서로 놀란 눈으로 마주했다. 뱀도. 나도. 클로즈 업이 되었다. 눈과 눈의 시선이 잠시 멈춰진 것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올라왔을까? 작은 상자 밑엔 관리기 몸통을 넣어둔 80㎝ 높이의 큰 종이상자가 있었다. 그 높이를 올라와 작은 상자 안으로 들어온 뱀. 회색 몸에 그려진 검은 무늬는 눈과 흡사하게 날카롭게 느껴졌다. 대략 일 미터 정도의 길이에 가는 몸매를 가진 뱀. 무서운 것보다 먼저 어떻게 저 높이를 올라왔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다리도 없는 뱀이.
어렸을 때부터 뱀은 친숙한 동물이었다. 지금보다 환경이 깨끗해서 그랬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시골 동네는 뱀이 참 많았다. 집 밖으로 나오면, 길과 길옆 도랑에서 수시로 뱀을 볼 수 있었고 짐차나 농기계로 인해 깔린 뱀과 동강 난 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넓은 개울가에서 물놀이하며 수영할 때도 물속에서 뱀 허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뱀이 흉측하다는 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든다. 다만 싫을 뿐이다.
그런 뱀이 내 앞에 있다. 그것도 머리가 세모인 독사가 혀를 날름 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뱀을 싫어해도 죽이고 싶지는 않다. 민간 속설 중 죽이거나 먹지 말아야 할 동물 중 개, 고양이, 뱀이다. 예전부터 들려온 속설로 인해서 더 그런지 뱀을 죽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사실 죽이지도 못한다. 겁도 많고 생명 자체를 죽인다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물리지 않게 상자를 들어 옆 나무가 울창한 곳에 내려주었다. 풀 속으로 뱀은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짐을 챙겨 질퍽한 땅을 밟으며 내려왔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며칠 후 비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에 깔아 놓은 CCTV을 켰다. 산골짜기 작은 집 처마 밑에 장착한 CCTV 화면 속에 무언가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확대해보니 며칠 전에 풀어준 뱀이 상자 위에 너무나 편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