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지 않다, 곤충
'산골짜기 둥지'에 갔다. 도시를 벗어나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특히 올해는 집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편하다. 자연과 더불어 있다 보면 식물과 곤충을 자주 접하게 된다. 산속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전보다 더 식물과 곤충에게 눈길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이곳의 밤은 나방의 시간이라 할까. 나방은 나비와 다르게 밤에 활동한다. 밤에 날아다니는 나방의 종류도 다양하다. 조금 귀찮을 정도로 많다. 낮에는 주로 잠을 잔다. 나비에 비해 천대(?) 받는 나방도 무늬는 화려하다. 한낮에 자고 있는 나방의 색과 무늬를 자세히 본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애들은 왜 우리 집에 와서 자고 있지?
6월의 산딸기, 붉다. 붉은 열매를 보며 평상에서 밥을 먹다 엉덩이가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가시인가 하고 보지도 않고 손으로 치웠다. 그러다 엉덩이 옆을 봤다. 사슴벌레처럼 생긴 것이 뒤뚱뒤뚱 기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내 엉덩이에 약간 눌러져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사슴 풍뎅이었다. 회백색 빛이 나는 등과 작은 줄무늬 그리고 긴 다리. 여섯 개의 긴 다리는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꽃무지과에 속하는 풍뎅이 중 유일하게 뿔을 달고 있다. 암컷은 뿔이 없다. 색이 참 예쁘다. 보고 또 보았다. 곤충의 몸매, 선의 위치, 색깔의 변화. 뒤뚱 기어가기에 조금 걱정했지만 조금 지나자 원래의 걸음으로 기어갔다.
멋있는 모습에 찰깍!
하루 종일 밖에 앉아 있다 보면 기어가고 날아가는 곤충을 본다. 곤충과 벌레를 보다 보면 징그럽다기보다 특이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더 든다. 의자에 앉아 멀뚱 거리며 앞산을 보고 있는데, 햇빛에 투명하게 반사되며 날아가는 나비가 보였다. 토끼풀에 앉아 열심히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다. 활짝 핀 날개, 유리창 너머 비치듯 초록빛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얇은 날개로 어떻게 날아다닐까. 금방 날개가 찢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름을 알지 못하기에 검색해봤다. 이럴 땐 문명의 발전에 감사하다. 모시나비, 모시처럼 투명하게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기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추운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종이라 하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쩜 인간보다 더 강할지 모른다. 모시나비
호랑나비도 간간이 보곤 한다. 그렇지만 호랑나비 애벌레는 자세히 찾아봐야만 볼 수 있다. 호랑나비의 자태는 아름답다. 성충인 호랑나비는 예쁘다면 애벌레는 귀엽다. 초록으로 물든 뭉글뭉글한 몸매. 머리 부분에는 새들에게 무섭게 보이기 위해 가짜 큰 눈을 가지고 있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산초나무 잎을 좋아한다. 산초 잎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애벌레는 날개를 가지게 된다. 많이 먹어도 산초나무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짝꿍이 열심히 풀을 깎아 깨끗해진 산등성.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 하나 꼭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풀이다. 지천에 널려져 있는 풀. 산속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다니고, 밭에 농작물을 심고, 약초 나무 또는 과실수에서 제대로 수확하려면 풀을 뽑아야 한다. 풀을 제거해야 한다. 풀이 쓸모없다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잡초가 된다. 아직까지는 풀도 약초도 식용 풀도 나에게는 잡초이다. 누구에게는 이용하게 사용될 풀도 나에겐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냥 풀이다. 누구는 일부러 산을 찾아 머위, 취, 다양한 순, 약초, 버섯 등을 채취한다. 지인 중 한 분은 카톡으로 채취한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낸다. 그런데 나는 바로 옆에 있는 것조차 채취를 안 한다. 어쩜 손이 게을러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걱정스러운 몸 상태를 생각하면 열심히 채취해서 먹어야 함에도 나는 보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하지만 아마도, 머지않아, 곧, 채취하지 않을까. 풀이 약초로 보일 때, 건강한 먹을거리로 보일 때쯤 손이 부지런해질 것이다.
저녁 하늘이 맑은 날이면 '산골짜기 둥지'에서 풀처럼 이름 모를 곤충처럼 매달려 멍하니 하늘을 본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도 좋다. 글 쓰는 나의 행위 또한 줄에 매달려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둥, 윙하며 시간을 보내볼까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