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2)

뱀, 휴가 오다

by 장버들

3년 전부터 이상하게 손타지 않던 물건들이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사유지인데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리 낌 없이 지나다닌다. 산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산이다. 하지만 주인이 있는 산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은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지나가며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올라간다. 경계선이 없다면 그럴 수 있다. 도시도 아니고 산속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은 좋다. 가볍게 인사하고 차 한잔 정도도 마실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유가 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터치받기 쉽지 않기에, 어느 정도 표시를 해놓고 일부는 망으로 울타리를 쳐놓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망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렇게 갑자기 당하는 입장이 되면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 멋쩍게 '뭐지'하며 쳐다보다 밥을 먹는다. 그들은 우리에 물어보지도 않고 경계선을 넘나들며 지나간다. 우리가 없는 ‘산골짜기 둥지’에 그들처럼 뱀도 경계선을 넘어와 머물기 시작했다.……




그렇게, 뱀은 우리의 터전에 머물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이면 폰에 깔아놓은 CCTV 화면을 튼다. 생중계로 방송되는 TV를 보듯. 작은 네모 스크린 안에 꿈틀꿈틀, 때론 그대로 정지 상태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똬리의 모습을 그렇게 지켜보았다.


뱀의 모습은 너무나 느긋했다. 8월이라 사람들이 휴가 가듯. 뱀도 우리의 안식처로 휴가를 왔다. 정작 법적인 땅의 주인은 가지 못한 채 화면을 통해 휴가 온 뱀을 지켜봐야만 했다. 뱀은 그곳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아침 9시~10시 사이에 출근한다. 아마도 덤불 사이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먹고살아야 하니 풀 속에서 지나가는 곤충, 개구리, 쥐 등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파충류 중에서 가장 특수하게 진화한 뱀은 몸이 가늘고 길며, 다리·눈꺼풀·귓구멍 등이 없다. 자발적 퇴화와 진화는 혀를 미세한 감각 부위로 만들었다.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혀는 냄새와 진동을 느끼며 방향과 거리감을 알아내며 이동과 먹이를 잡는다. 다리와 날개를 가지는 대신 척추에 붙어 있는 400개 이상의 갈비뼈와 온몸을 휘감고 있는 비늘은 자유자재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뱀의 입과 턱은 위아래 좌우로 크게 벌릴 수 있어 먹이를 먹는데 최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뱀이 며칠 째 떠나지 않고 농막을 지키고 있다.


상상해본다. 눈을 감고 나의 혀를 쭉 내밀어 본다. 그리고 지나가는 또는 주위의 사물 진동을 혓바닥으로 느껴본다. 그러다 점점 혀가 길어지는, 욕심이 생겨 혓바닥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양옆의 것들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혀의 감각에 모든 신경 세포를 기울인다. 점점 귀와 눈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시력은 상실하기 시작한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나의 몸을 변형시킨다. 우두둑, 갈비뼈가 날개가 되듯. 겹겹이 늘어나고 피부는 갈라지며 화려한 비늘이 생긴다. 누군가 나를 본다. 눈을 뜬다. 눈의 둥근 홍채는 서서히 가늘어지며 너를 쳐다보며 혀를 날름거린다.


종이상자 위에서 출근한 뱀은 숲 속을 누비다 6시쯤 돌아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매일 관찰하게 되었다. 오늘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날은 저녁 7시가 되었는데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자기 집으로 갔나’하고 생각했지만, 나의 예상을 깨고 뱀은 돌아왔다. 상자 위로 천천히 유연하게 올라와 똬리를 틀고 정지 상태가 된다. 늦은 밤에도 CCTV로 시청을 한다. 밤에 혹시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확인해보지만,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간혹 몸이 욱신거리는지 긴 몸을 움직이며 네모 상자 위에서 왔다 갔다 하다 다시 똬리를 틀고 잠을 자는 듯 움직임이 없다.


비가 이틀 동안 멈추지 않고 내렸다. 비가 와서 그런지 뱀은 출근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상자 위에 있다. 삼 일째 되는 날, 난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안 먹어도 괜찮을까. 배고플텐데.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동물들은 조절 가능한 몸을 가졌기에 그대로 지켜보았다. 점심이 지나 다행인지 비가 멈추고 햇빛이 나왔다. 뱀은 늦은 출근을 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저녁 시간에 들어왔다.


장마가 끝난 것처럼 며칠째 햇볕의 쨍쨍 뜨거운 열기가 땅을 달궜다. 농막 앞으로 설치한 지붕은 비를 막을 수 있지만 여름 햇볕이 거의 그대로 투과되어 뜨거웠다. 뱀은 햇볕이 뜨거운 날은 조금 일찍 나갔다. 햇빛이 뜨거워서 시원한 덤불 속으로 출근한다는 것을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열기가 식으면 들어온다는 것도.





이렇게 일주일 지났고 우리는 새로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저 뱀이 여름 내내 자기 집이라 생각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지났다. 계속해서 CCTV에서 뱀을 보며 우리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뱀이 계속해서 있지는 못할 것이다. 가을이 되고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땅굴을 찾아 들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볼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나 바보 같은 행동이다.


또 하나의 방법, 잡아서 다른 곳으로 멀리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뱀 수송 작전을 위해 유튜브 방송과 정보를 검색하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도구, 신발 집게를 구매했다. 신발 집게의 입모양은 날카롭게 생긴 것도 있고 약간 완만한 곡선의 모양도 있었다. 너무 날카로운 악어 입 모양은 왠지 뱀이 다칠 것 같아 약간 곡선의 모양을 선택했다. 그리고 뱀을 담을 도구인 쓰레받기 통도 구매했다. 나와 같이 사는 짝꿍도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잡는 연습을 했다. 서로 각자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하고 준비했다.


그 사이, 장마는 끝났고 뱀은 꽉 채워 14일 이주일을 채우고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여기저기 장마피해와 복구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국의 장마피해와 함께 우리는 우리의 안식처의 피해복구를 위해 장비를 챙겨 ‘산골짜기 둥지’로 출발했다. 뱀이 출근하기 전에 잡기 위해 우리는 일찍 서둘러 떠났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도착하자마자 트렁크에서 장비를 꺼냈다. 신발 집게와 쓰레받기 통을 들고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앞집 양봉 아저씨가 말을 건다. 꿀을 채취하기 위해 2년째 잠시 머무는 아저씨다.

"뭐예요?"

우리는 그동안 사정을 얘기했다. 아저씨는

“뱀은 죽여야 해요. 안 그러면 다시 와요.”하며 삽을 들고 걸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삽을 든 양봉 아저씨를 앞세워 뒤따라 올라갔다. 먼저 간 양봉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없어.”

“정말이에요. 없어요.”

그 소리와 함께 우리는 뱀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석구석 찾았지만 뱀은 보이지 않았다. 뱀이 벌써 낌새를 알고 피한 것 같았다. 양봉 아저씨는 말한다. 혹 보게 되면 죽이라고. 만약 다시 온다면 죽일 수 있을까. 죽이지 못할 것이다. 다행이다. 알아서 가주니 뱀아 고맙다.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채 덩그러니 벽에 기댄 신발 집게와 쓰레받기 통의 모습이 왠지 웃겼다.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양봉 아저씨는 우리의 또 하나의 문젯거리를 예상치 않게 해결해주었다. 창고 천장에 붙어 있는 말벌집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골칫덩어리였다. 창고 지붕의 틈으로 들어와 집을 만들고 있는 말벌. 작년에도 벌이 벌집을 만들어 마음고생하다 벌망 모자와 토치를 구입해 연습을 통해 겨우 해결했다. 과일 배 크기의 말벌집을 제거해 술을 담았다. 그런데 그 자리 그대로 다시 벌이 집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뱀도 싫지만 말벌도 싫다. 자연과 함께 살려면 주변 동물과 곤충과 친해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쏘이지 않게 조심해서 다녔지만 점점 커지고 있는 말벌집으로 인해 창고는 웬만해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거침없이 토치에 불을 붙여 창고에 들어가서 한 번에 태워버린다. 벌들은 순식간에 날아갈 시간도 없이 그대로 죽었다. 우리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 두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저씨는 척척 해결했다.


벌집은 이렇게 쉽게 사라졌다. 하지만 이주 동안 근심거리였던 뱀은 눈에서만 사라졌기에 완전한 해결이라 할 수 없다. 다시 오면 어떡하지. 걱정과 다르게 그 후 뱀은 오지 않았다. 영물인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쉴 만큼 쉬였으니 미련 없이 자기 터로 돌아간 뱀. 여름휴가를 제대로 보내고 간 뱀과 다르게 우리는 8월을 쫄깃하게 보냈다.



뱀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물들도 우리의 안식처 안으로 스스럼없이 넘나 든다. 원래 주인이었기에 우리는 가끔 터를 내어준다. 서로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우리의 터전에 찾는 동물들은 이 산에 사는 모든 동물이다. 그중에서 자주 오는 애들이 있다. 밥을 먹을 때면 간간이 찾아오는 들고양이. 자기들을 헤지지 않는 것을 알기에 우리 근처에 와 앉아 주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다 옆에서 음악을 듣거나 잠을 청한다. 느긋하게 단, 거리를 두고 편안 자세로 쉰다.


쉬였다 가렴. 애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