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뼈에서 목소리를
늦가을, 오래간만에 어머님을 모시고 산골짜기 둥지에 왔다. 비가 온 후라 땅은 미끄러웠다. 혹시나 미끄러지면 다칠까 하는 걱정으로 늦은 저녁까지 땅을 다지고 조명을 달았다. 거기에서 멈춰야 했다.
장작불에 이미 우거지 돼지 뼈찜이 익어갈 무렵.
화장실 쪽 조명의 선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선에 어머님이 넘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깃줄만 보고 걸어갔다. 그 순간, 다리에서 소리가 났다. 툭!. 그제야 알았다. 몸에서 이런 엄청난 소리가 나는 줄. 미처 몰랐다. 이렇게 나의 몸에 대해 몰랐다니. 처음으로 들었다. 뼈 부러지는 소리를.
어둠을 뚫고 가까운 병원으로 차는 달렸다. X-레이 사직을 찍고 그때까지 그래도 의사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X-레이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 발목의 뼈 깨짐과 정강이 비골이 두 동강이 나 있는 선명한 흑백 사진. 의사는 주거지를 물어본다. 여기가 아니라는 말에 의사는 주거지 근처의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 한다. 다시 산골짜기 둥지로 가 정신없이 대충 짐을 꾸리고 어머님을 모시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걸쳐 오는 차 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님은 5분도 채 안되어 같은 질문을 물어보시거나 반복적인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그래서일까 어머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머님에게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도착했다. 부러진 다리 하나를 들고 어머님의 늦은 저녁을 차려주었다. 밤새 진통이 몰려왔다.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했다. 8인실에서 머물게 되었다. 8인실이어서 나의 자유는 보장받을 수 없었다. 수술로 인해 진통제를 맞았지만, 다리의 진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진통은 계속되었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기가 힘들 정도로 다리가 터질 것같이 아팠다. 그날 노부부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허리 협착 수술로 인해 입원했다. 그와 동시에 간호를 위해 남편인 할아버지도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하는 습관대로 행동하였다. 할아버지의 TV 리모컨 사수로 인해 아침 6시부터 밤 10시 지나서까지 나와 상관없이 TV의 큰소리는 무방비 상태로 들려왔다. 요즘은 병실에 TV가 없는데도 많던데 이곳은 병실 벽면 정 중앙에 있다. 아마도 관절뼈 전문 병원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병실에 TV를 배치한 것 같다. 할아버지는 다른 환자에게 관심이 없는 듯 집에서 하던 행동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과다 진통제 투약으로 두통과 몸살에 나는 지쳐갔다.
심신이 지쳐가고 있는 사이 병실뿐만 아니라 복도에서도 시끄러운 소리는 들려왔다. 혹 여기는 달동네가 맞으리라. 아침이면 할머니들의 소리 그것도 큰 소리이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복도 끝 4인 의자에 앉아 점심밥이 나올 때까지 얘기한다. 과거의 일들, 자식 이야기, 부모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대화를 한다. 난 고통스러웠다. 미간에 주름이 더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점심 먹고 들어간 환자들은 다시 복도에 상주하며 밤 9시쯤 되어서야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하나둘 자신들의 침실로 들어간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어느 할머니가 신나게 각설이 타령을 부르면서 복도를 뛰어다니다시피 하다 들어간다. 잠시 착각했다. 여기가 오일장 시장인지, 마을의 골목 축제인지. 황당하면서도 복도에 울린 각설이 타령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들렸다. 할머니는 신이 나서 갑자기 노래가 튀어나온 것일까. 우리도 가끔 신이 나거나 또는 그와 반대로 억지로 기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흥얼거린다. 타령과 함께 와글와글 소리는 밤 9시 이후에 잠잠해졌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조용해졌다.
다음날에도 복도에서 할머니들의 대화 소리는 들려왔다. 병실의 문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었고 복도의 상황들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한 할머니는 허리 수술을 했는지 허리에 대해 맞은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그쪽은 허리가 짱짱하네.”
“아직 젊잖아요. 63세라 아직 근력도 좋고 열심히 운동해서 거뜬해요. 호호호”
63세인 할머니는 아니 요즘 60은 아줌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애매한 나이기에. 무엇보다 63세인 아줌마는 너무나 당연하게 자신의 나이가 젊다고 얘기한다. 이 대화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상대방 할머니는 80세 정도. 아직 그 나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80 정도의 나이라면 60은 젊은 나이라 생각할 것이다. 60대의 아줌마의 말, ‘아직 젊잖아요.’ 그 소리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병실에서 간호하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일주일 넘게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난 며칠 동안 두통이 사라지지 않아 힘든 날이었다. 웃어른을 공경하라! 어른을 대접하라! 어릴 때부터 받은 예절교육으로 인해 참아야 했다. 이건 아니다! TV 소음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제 나의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며.
“할아버지, 여기는 환자 병실입니다. 공동으로 쓰는 병실이요. 소리 좀 줄여주세요. 제가 너무 아픕니다.”
정중하게 아니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크게 말하고 주름진 흰 커튼을 ‘확’ 제쳤다. 할머니는 작은 소리로 남편에게 타박을 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TV 소리를 약간 줄인다. 내가 아닌 할머니의 소리에. 소리는 잠시 평온을 찾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습관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여전히 새벽 6시에 TV를 켠다. 그리고 밤 9시에 끈다. 약간의 TV 시청 시간이 줄어든 것 외에는. 작았던 소리는 점점 어쩔 수 없다는 듯 커지고 있었다. 노인이 되면 귀도 어두워진다고 한다. 신체도 나이를 먹기 때문에 모든 기관이 약해지고 기능을 잃어간다. 그래서 귀가 어두워서 그럴 것이라고 나를 이해시켜야만 했다.
웃지 못할 소음으로 한 주 더 있어야 하는데도 난 9일 만에 퇴원했다. 입원하는 동안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그냥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목발을 짚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 드는 게 뭘까? 노인들은 가끔 젊은이들에게 욕을 먹는다. 나잇값을 못 한다고, 나이 들어 주책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이답게 늙는다는 것은 시간을 먹고 그대로 늙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질이나 특성인 '답게'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남자답게 여자답게 어린이답게 강조 아닌 강조를 한다. 어쩜 이것도 시나브로 되어 ‘답게’ 행동하고 그것으로 인해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게 하는 면도 없지만은 않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님과 주변의 노인들을 보며,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나이답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한번 더 생각해본다.
누군가 그런다. 착하게 사는 게 아니라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잘못된 것 없이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미니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여주인공은 말한다. “이제 막 살 거야. 내가 그동안 너무 착하게 살았어. 그래서 내가 바보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제 나도 내 목소리 내고 막 살 거야.”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내 마음에 와닿았다. 여주인공의 대사 막사는 것은 함부로 산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녀 자신으로, 내면의 소리와 함께 하나가 되어 나로 산다는 거.
소리를 낸 다리는 오래간만에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