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오로라의 숲으로 #1
여기는 핀란드 라플란드 이나리, 사리셀카.
북위 68도. 3월.
온도는 영하 18도. 체감온도 영하 30도, 바람 없음.
하늘 대체로 청명함.
딱히 큰 준비없이 시작했던 북극권 여행의 막바지.
늘 하일라이트같던 풍경들이 즐비한 여행이었지만
왠지 결정적 한방이 부족한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우리는 결정적 하일라이트를 만들기위해
또 오늘같은 쾌청한 대기상태를 놓칠새라 낮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밤에 본격적인 오로라 투어를 나서기로 했다.
숙소 옆에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가게로 가
직원의 영어로 된 설명을 자세히 들은 후
허스키썰매, 스노모빌 등 여러 투어 중에서
우리는 단연코 오로라 투어! 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오로라 투어를 선택하면 순록썰매를 타고 숲으로 들어가서
본다는 것이 아닌가.
오로라가 뜬 라플란드의 숲을 순록썰매를 타며 본다니,
이것이 이번 북극 여행의 결정적 하일라이트가 될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INFO : 핀란드는 유로 사용. 오로라 투어는 방한복, 방한슈즈 포함 1인당 100유로, VISA카드 결재가능
미리 예약을 해두면 투어 시간을 알려준다. 시간에 맞춰 다시 샵으로 가면된다.
투어를 시작하기 전, 투어를 신청한 샵에서는 이런 방한복을 무료로 빌려준다.
방한 신발, 방한 모자 등등, 특수한 재질로 재작된 방한 장비는 무척 따뜻하면서도 쾌적한 편이었지만
이 방한장비 안에도 히트텍같은 옷을 겹겹이 껴 입었다.
북극권의 밤은 영하 18도,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척 추우니 든든하게 입는 것이 살 길이니까.
이 투어를 대미로 장식할 세계 각국의 몇몇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광공해 하나 없는 숲 한가운데에 정차한다.
그리고 그 곳엔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순록 썰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빛도 없는,
밤하늘엔 별과 나무와 숲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들뿐,
흰 눈조차 검게 보이는 풍경들.
그리고 생각보다 무섭게 생긴 순록들의 생김새가 더해져
동방의 나라에서 온 이 작은 나를 무서운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섬뜩한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바이킹족의 후예라는 가이드의 포스에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예의바른(?) 나는 의심을 접고 썰매에 안착해야만 했다.
너무나 어둡고 적막해서
보이는 거라곤 희미한 불빛과 나무 그림자, 그리고 별빛.
들리는 거라곤 순록 목에 걸린 워낭을 닮은 딸랑이는 종소리와 그들의 발자국 소리 뿐.
움직이는 썰매에서 장노출로 찍은 사진들은 그 묘한 풍경을 신비롭게 재연출하고 있었다.
순록썰매를 타고 얼마즈음 타고 들어간 목적지.
푸른 밤, 별이 총총 뜬 침엽수림 안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이드가 능숙하게 불을 피운다.
그리곤 불 안에 금속주전자를 넣어 물을 끓여 따뜻한 커피를 내어준다.
아무리 방한복을 입었다지만 북극은 북극, 체감온도 영하 30도의 추위는
이 따뜻한 모닥불과 커피 한잔에 녹아든다.
나는 문득 먼 과거,
편리한 현대 문명을 모르던 이들의 삶을 체험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빛, 썰매, 순록, 숲, 깜깜한 밤. 그리고 모닥불이 내어준 따뜻한 차 한잔.
번거롭지만 아름답고 로맨틱한, 추웠지만 때론 그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삶이었겠거니, 상상해본다.
목적지에서 촬영한 밤 풍경들, 아직 희미하게만 오로라가 떠 있다.
희미하게 녹색 빛이 일렁거리는 이 밤하늘도 나쁘진 않지만
진하게 선이 그어진 그 풍경을 다시 한번, 이 깊은 숲에서 만나보고 싶은 욕망이 추위를 뚫고 일렁거린다.
시간이 지나도 일렁이는 오로라 폭풍은 나타나질 않고.
'이대로 오로라를 볼 수 없는 걸까.'
아쉬운 마음에 애꿎게 쌓인 눈밭을 밟으며 연신 셔터만 눌런댄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