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뛰고 또 뛰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맞는 것 싶었고 저 사람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인정 많은 엄마 곁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를 위로하고 아들을 위로하고 그렇게 위로의 연결고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태어나 처음 맞닥뜨리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변호사 선임이란 걸 해야했고 피해자도 많나야 했다. 그 모든 걸 아들과 함께했다. 회사로 여전히 바쁜 아들보다 더 공부했다. 아들의 사고는 음주 사고였는데 이에 대해 엄마보다 검색을 더 많이 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음주 사고에도 천운이 따랐었다. 가해자인 아들도 피해자도 티끌 하나 다치지 않았다. 정말 천운이었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거였다. 아들의 가족은 그것만 생각하고 싶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 부모가 착하게 살아서, 아들이 착실히 살아서 하느님이 또 한 번의 삶을 잘 살아가라는 기회가 온 셈이다.
아들도 여전히 엄마와 가까웠다. 엄마의 안정을 위해선 사실 이번엔 아들이 엄마와 좀 거리를 둬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들은 예전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엄마와 소통했다.
아들도 무서워서였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눈 떠보니 자신이 가해자가 됐고 피해자란 단어가 머릿 속을 하염없이 맴돌았을 것이다. 죄책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린 죄책감, 자신에 대한 실망 등이 뒤엉켜 누구보다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도 공유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한 번은 변호사가조금 겁을 줬는데 평소 혈압이 있던 엄마의 혈압이 190까지 치솟았다.엄마는 급히 딸에게 연락을 했다. 과거 혈압이 올라 응급실에 간 바 있었다. 증상이 비슷했다. 남편은 하필 부재 중 이었다. 딸과 간 응급실에서 이상이 없단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들었다.
엄마가 아들과 소통을 많이 안 했다면 응급실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아들이 서른이 넘도록 늘 지근거리에서 챙겨온 엄마다. 인간이 그렇듯 엄마들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걱정이 된 딸이 아들에게 앞으로 관련 소식을 정제해서 엄마에게 말하라는 정도로 응급실 사태는 마무리됐다
코로나로 재판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또 미뤄지고 있었다. 엄마도 아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지난한 시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무뎌지고 어떤 날은 슬픔에 차 두 손 모아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도 아들도. 그새 엄마는 수 킬로의 체중이 빠져 한약을 먹어야했다. 다행히 체중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아들도 변하고 있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으려 애썼다. 회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아들은 회사를 다니기 위해 사는 듯 했다. 인생의 가치는 회사 일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