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변곡점
저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살갑게 말을 걸고,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저렇게 예쁜 걸까 의아함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나에게 이런 모성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변화들이 찾아왔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삶의 선택이 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는 곳도, 만나는 사람도, 먹는 음식이며 뭐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엄마로 살아가기 시작한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아서인지 아직은 아이가 참 예쁩니다. 그리고 사춘기 자녀들을 둔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과거 저에게 있어 결혼이란, 육아 그리고 시댁이란, 내 인생의 주체성을 빼앗고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아주 끔찍한 미지의 무언가였던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그 당시만 해도 '결혼을 하면 이러이러해야 한다' '여자는 결혼하면 집 안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그렇게 잘날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었고 20대 청춘에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게 여겨지고 분노에 빠지게 하는 말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느지막이 결혼을 했고, 노산이라는 주위 모든 이들의 잔소리와 걱정을 지겹게 들으며 40에 겨우 아이를 얻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과거에 두려워했던 것만큼 끔찍한 일은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댁도 아주 어려운 교수님 같은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좀 가까운 친척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많이 어렵긴 한가 봅니다.. ) 오히려 내 가족이 생긴 뒤 내 인생에 아주 묵직한 닻 하나가 내려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가끔 무거운 책임감으로 존재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정처 없이 떠돌며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마냥 좋기만 한 것도 마냥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의 장단점과 직면하는 과정인 듯합니다. 사실 장점보다 적나라하게 나의 단점이 두드러지며 한계를 느끼게 하는 순간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의 불안과 욱함이 육아의 매 순간 아이에게 스며들고, 고질적인 대인 관계의 어려움이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고개를 드는 것을 보며 죄책감과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나의 이런 단점을 그래도 좀 고쳐보려는, 변화를 줘야겠다는 '동기'가 이제야 좀 생기는 것을 보니 '아이를 키우며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람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엔 정말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어서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 것도, 꼭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오늘 하루도 아이와 실랑이하며 고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끈끈한 동지 의식 같은 것을 갖게 됩니다. “야 너도?!" 이런 느낌이랄까요.
진료실에서 ‘저는 왜 아이가 예쁘지 않을까요?' '아이랑 단둘이 있는 것이 너무 두려워요' 라며 자신의 모성애의 부재를 걱정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요, 결국엔 사람 사이의 일입니다. 친해질 시간이 필요하고,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부모 자식 간에도 생겨납니다. 사랑과 희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먹함 분노 서운함 질투 등의 불편한 감정들도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