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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26. 2024

안녕 코로나

아이의 초등학교 2학년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름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냈지만, 나만의 일상도 되찾고 싶어 아이만큼 개학을 기다렸다. 막상 첫 주에는 단축수업인데다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고 학원 시간표를 조정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아이 또한 새로운 교실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적응하느라 저녁이면 지친 모습이었다. 주말에 시댁 방문 일정까지 소화하고 나니 일요일 새벽부터 오한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 주간 긴장한 탓에 몸살이 든 모양이었다. 종합감기약을 2번 챙겨 먹고도 저녁에는 기침까지 나왔다. 남편은 지나치듯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물었다. 그제야 나도 걱정이 되어 약통을 뒤져 진단키트 하나를 찾아냈다. 익숙하게 면봉으로 검체를 채취한 뒤 용액 통에 넣었다. 검사용 스틱에 떨어뜨리자 줄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안심하려는 차에 희미한 줄이 하나 더 보였다. 10여 분을 더 기다려보았지만 딱 그만큼이었다. 남편은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영 찜찜했다.     


  다음 날 바로 병원으로 갔다. 걱정과 달리 병원은 한산했다. 검사하러 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이제 코로나는 25,000원을 내야 검사를 해준다고 했다. 전날보다 가벼운 증상인 터라 괜한 돈 쓰지 말고 그냥 갈까 싶었다. 하지만 주말에 시댁도 들린 터라 마음을 돌려 접수했다. 검체 채취를 한 뒤 시간이 지나 진료실로 들어갔다. ‘양성이시네요’ 젊은 의사가 말했다. ‘아니라는거죠?’하고 묻듯이 대답했다. 의사는 ‘코로나 맞으세요’라고 다시 말해주었다. 당황하는 나에게 ‘5일 자가격리는 권고사항이니 알아서 조심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강제가 아닌 권고를 나에게 권고하려니 본인조차 어느 정도로 전달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네, 제가 알아서 조심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왔다.     


  처방 약과 여분의 진단키트를 산 뒤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시댁에도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모두 당황하면서도 예전처럼 걱정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차라리 검사하지 말고 그냥 감기로 치부하고 넘어갔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만 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몸은 괜찮은지 열은 없는지 혼자 집에 있을 수 있겠는지 물었다. 증상은 똑같은데 이름표가 달라지니 대접이 달라졌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오한은 거의 사라지고 코가 막히고 답답한 정도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요즘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려 검색했다. 감염병 포털 사이트에는 작년에 7일에서 5일 자가격리 권고로 변경공지한 후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래도 병은 병인지라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키트를 내밀었다. 눈으로 봐도 멀쩡한 아이는 역시 음성이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코로나라고 하자 놀라는 듯싶더니 ‘요즘은 감기랑 똑같데.’라며 텔레비전 봐도 되냐고 물었다. 예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와 상반된 반응이 낯설었지만 이내 내 마음도 조금은 편해졌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다시 한번 괜찮냐고 묻더니 저녁 준비는 자신이 한다고 했다. 웬일인가 싶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밥과 국은 이미 해놓은 터라 남편은 아이와 볶음밥을 해 먹겠다고 소시지를 밥만큼이나 많이 잘라 넣었다. 아이는 그 밥을 먹고 자기 평생 제일 맛있는 볶음밥이라고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동안 평생 먹은 게 내가 해준 밥인 터라 서운한 맘이 들면서도 아빠 밥을 잘 얻어먹겠다 싶었다. 이참에 시댁에서 받아온 누룽지를 다 먹어버리려 냄비를 찾는데 남편이 죽을 끓이고 있다고 했다. 정말 냄비에는 무언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죽이라는 것이 불린 쌀과 고기, 채소 등을 참기름에 살살 볶다 물을 부어 끓이는 것인데 남편은 벌써 냄비를 젖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불리지 않은 쌀에 냉동실에 있던 단단한 고기를 듬성듬성 넣고 물을 부은 것이었다. 끓고는 있는데 쌀알의 형태가 변함없었다. 죽이 될 리 없다는 나에게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10여 분 뒤 대접에 담긴 죽은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다.     


  다음 날, 부엌에 있는 냄비를 보니 남긴 죽이 배로 불어 있었다. 다시 보니 영 내키지 않았다. 뚜껑을 다시 닫고 좋아하는 빵을 꺼내먹었다. 늦은 점심은 어쩔 수 없이 남은 죽을 데워 먹기로 했다. 간을 더 하려고 찬장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봉지가 보였다. 라면수프였다. 부대찌개를 끓일 때 사리로 쓰고 모아둔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끓는 죽에 라면수프와 건더기 수프 모두를 넣었다. 보글보글 주황빛으로 끓어오르자 날달걀 하나를 더 깨 넣었다. 완성된 라면수프 죽은 얼큰하니 후루룩 잘 넘어갔다.      


  5일째 저녁이 되었다. 양치하고 자려는데 칫솔이 축축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물어보다 그동안 전동칫솔을 쓰던 남편이 일반칫솔로 바꾸면서 내 것을 썼다는 것을 알았다. 새 칫솔을 분명 꺼내주었는데 색이 헷갈렸다. 마스크를 쓰고 나름의 격리를 했는데 정작 5일간 같은 칫솔을 쓴 것은 몰랐던 것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별 증상이 없는 남편의 면역력이 감탄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습관처럼 마스크를 쓰려던 나는 냅다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이제 이게 무슨 소용이라고…. 어쨌든,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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