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왼손으로 글씨 쓰면 안 될까?”
아이가 잠이 들락 말락 한 소리로 말했다. 잠자리에서 발을 만져주고 있을 때였다.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글을 제법 써서 크게 신경 쓰지 않던 때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조용히 되물었다.
“오른손으로 쓴지 한 참됐는데 계속 불편했어?”
“응”
“...”
아이가 6살이었을 때 집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공부를 낯설어하면서도 왼손으로 삐뚤빼뚤 애를 쓰는 모습이 기특했다. 시간이 지나자 진도는 느려졌고 ‘한다, 안 한다’ 실랑이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천천히 가자며 시작했지만 7살이 되어도 좀체 실력이 늘지 않았다.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글씨 쓰는 순서도 제멋대로였다. 왼손으로 왼쪽부터 써나가다 보니 글씨가 가려져 헷갈리는 일도 있었다. 몇 달을 지켜보다 아무래도 오른손으로 바꿔주는 게 낮다 싶었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주변의 왼손잡이인 사람들에게 상의했다. 의외로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는 사람이 많았다. 걱정과 달리 오른손으로 쓰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들 했다. 되려 편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중요한 시험을 볼 때 왼손잡이인 학생들의 답안지 작성하는 모습이 영 불편해 보였다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면 뭔가 이상해….”
아이가 다시 말했다.
처음 오른손으로 쓰기 연습할 때가 생각났다. 평소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활동하느라 아이의 오른손은 영 힘이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연습하니 왼손 못지않게 쓸 수 있었다. 어느덧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였다. 알림장을 쓰고 공부 시간도 생기다 보니 쓰기는 자리를 잡았고 내 걱정은 앞으로의 공부들로 옮겨졌다. 하지만 지금 이 아이의 말은 그저 내 생각뿐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이 괜찮다고 해도 내 아이가 불편하다면 그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그래, 그러면 네가 편한 손으로 쓰자.”
내가 답했다. 어둠 너머 아이의 희미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엄마, 고마워.”
아이가 말했다. 그 말이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말없이 다리를 주무르고 발을 만져주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언제 오른손을 썼냐는 듯 왼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왼손과 오른손의 쓰기는 큰 차이가 없었다. 더 잘 쓰지도 못 쓰지도 않는 그저 더 편한 쓰기였다. 한 주가 지났다. 집에서 문제집을 펼쳐놓고 푸는 모습을 지켜보다 넌지시 물었다.
“왼손으로 계속 쓰니까 편해?”
“그냥 쓰는 건데?”
더 좋다며 신나게 대답할 줄 알았는데 대답은 시큰둥했다. 저녁 무렵 아이가 식사 준비를 돕는다며 수저를 챙겼다. 무심코 놓는 듯하더니 나를 보며 물었다.
“엄마, 오른손으로 먹어, 왼손으로 먹어?”
“응? 엄마는 오른손.”
자신의 수저는 왼편에 놓더니 내 오른쪽으로 수저를 놓아주며 씩 웃었다. 나도 웃었다.
끝.
(원고지 11.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