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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n 11. 2024

그 날의 소개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재이는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을 헤치며 뛰쳐나왔다. 출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준비했는데도 시간이 늘어졌다. 휴일이라 지하철을 한참 기다려서야 탈 수 있었다. 상대에게는 문자로 5분 정도 늦는다 했지만 10분도 넘게 생겼다.      


 일주일 전이었다. 일을 끝내고 친구가 운영하는 휴대전화 판매장으로 갔다. 저녁을 먹으며 친구는 워킹맘의 괴로움을, 재이는 오랜 독신생활의 외로움을 한탄했다. 다음날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소개팅 제안이었다. 상대는 같이 근무하는 직원의 친구가 일하는 직장 동료. 다리에 다리를 건너 받는 소개팅이었다. 그 해 첫 소개팅 제안을 재이는 바로 승낙했다. 상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순식간에 약속이 정해졌다. 장소는 혜화동, 마로니에 근처 카페.     


 “젠장.”     


 겨우 출구 밖으로 나왔는데 카페가 맞은편이었다. 재이는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2시7분. 신호가 바뀌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카페 입구 계단을 오를 즈음에는 숨이 목까지 찼다. 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어서 오세요’라는 점원의 인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핸드폰을 보는 유일한 남자가 보였다.     


 “김...진영 씨죠?”     


  숨과 함께 토해내는 재이의 말에 그는 놀라 일어섰다.      


 “아, 네.”     


 재이는 맞은편 자리에 주저앉듯이 앉았다. 그 와중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아, 괜찮습니다.”     


 남자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 아닙니다.”     


  뭔가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은 한참 전에 도착한 듯했지만, 남자의 미소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수정이 소개로 만났는데 어떤 분이신지 자세히 듣지 못했네요.”     


  숨을 고를 때까지 말없이 기다리는 남자를 보며 재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살펴보니 상대는 동그란 얼굴에 하얀 피부를 가진 꽤 동안의 얼굴이었다.     


“아, 그분이 수정씨로군요. 저도 사실 많이 듣지는 못하고 나왔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가 대답했다. 중간에 모르는 주선자가 있다 보니 서로 아는 게 없었다. 아무것도 미리 판단할 게 없었다. 게다가 수줍어하는 남자를 보니 이끌어주고 싶은 감정도 솟아났다.      


“오늘 잘 보이려고 신경 썼는데 느껴지세요?”     


재이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아, 글쎄요.?”     


남자는 당황했다.     


“오늘 블랙으로 콘셉트를 잡았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농담을 어떻게 받아주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역시 시시해도 날씨 이야기가 나았을까 싶었다. 재이는 이번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익숙한 주제가 되니 남자도 자기 일에 대해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각자 경험한 여행지로 옮겨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재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재이는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상대를 다시 쳐다보았다. 핸드폰에 뜬 번호는 이 남자의 번호였다. 남자 역시 재이의 놀란 표정에 하던 말을 멈췄다.     


“잠시만요.”     


재이는 자세를 옆으로 돌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인데요. 저도 생각보다 늦어 이제 혜화역에 도착했네요. 벌써 오셨나요?”   

  

다른 음성의 남자였다.   

  

“네? 잠깐만요.”     


재이는 마이크를 가리고 앞의 남자에게 물었다.   

  

“김진영 씨 아니세요?”     


“네? 아닌데요?”     


눈앞의 남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답했다. 재이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아, 저는 도착했어요. 1층 카페로 오시겠어요?”     


전화기 속 남자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쪽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겠네요. 저는 내려가 볼게요.”     


재이가 일어나자 남자도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났다. 왠지 아쉬웠다. 남자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1층으로 내려가 들어서자 이번에도 바로 앞 테이블에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김’, ‘진’, ‘영’ 씨 맞으세요?”     


이번에는 또박또박 이름을 말하며 확인했다.     


“네, 맞습니다.”     


  이번에는 이 남자가 서둘러 일어나며 대답했다. 전화 속 말과 달리 재이가 이제 도착하니 의아한 표정이었다. 둘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선자에 관한 이야기를 거쳐 각자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가 하는 일은 재이의 전공과도 관련 있었다. 한때 관심 있던 분야였지만 결국 회사 일이란 똑같다고 느껴졌다. 어느덧 잔이 비워졌고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재이는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 일찍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하자 남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재이는 마로니에 공원으로 걸어갔다. 6월 초라 날이 맑고 따뜻했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어린 학생들이 보였다. 다들 여유롭게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저...저기요”     


  재이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처음 만났던 남자가 서 있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재이도 웃었다. 둘은 그렇게 웃었다.     


끝.

(원고지 19.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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