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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Aug 13. 2024

김실장



  “00헤어입니다. 김 실장님이요? 어느 김 실장님 말씀이세요?”     


  손님 머리를 다듬던 연경의 손이 멈췄다.     


  “그 실장님은 예약이 다 찼습니다.”     


  상대는 내일 일정까지 확인하는 듯했다. 예약이 어렵다고 하자 통화가 끝났다. 아마 김은영을 찾는 모양이었다. 연경도 같은 김 씨다 보니 매번 이런 통화가 신경 쓰였다.     


  김은영이 이곳에 온 지는 6개월이 되었다. 이전에 관련 일을 했다고는 했지만, 손님을 대할 때의 어색한 듯 긴장한 모습에서 그녀의 짧은 경력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언제나 열심인, 성실한 모습에 다들 좋은 이미지를 가졌다. 그것이 텃세 없이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원장과 은영 그리고 연경을 포함하여 헤어디자이너는 3명뿐이었다. 데스크를 담당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총 4명이었다. 연경은 이곳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다. 그사이 지하철역도 생겨 나름 역세권이 되었다. 하지만 연경이 느끼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작고 평범한 동네 미용실이었다. 그래도 손님은 조금 늘어난 터라 원장은 새 직원을 뽑았고 은영 씨가 채용되었다. 그녀는 두 사람 손이 모자라거나 특별히 찾는 헤어디자이너가 없을 때 손님이 맡겨졌다. 그마저도 휴가철인 여름이 되자 그녀 몫의 손님은 줄어들었다.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은영은 초조해 보였다. 그런 모습이 연경의 신입 시절과 닮아있었다.     


  8월 말이 되자 더위도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부터였다. ‘김.은. 영’이라는 이름을 대며 머리를 하러 오는 손님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예약하거나 직접 방문해서 이름을 말했다. 연경은 조금 의아했지만 몇 달간 그녀에게 머리를 한 사람 중 몇이겠거니 생각했다. 신중하게 자르는 은영의 커트 솜씨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연경이 보기에 무난했고 큰 불만도 없었다. 9월이 지나자 하루 최소 두 명 이상 은영의 예약이 있었다. 원장도 이를 느꼈는지 이름만이라도 실장으로 하라며 직함을 달아주었다. 사전에 급여 인상 없는 직함뿐이라고 연경에게 따로 이야기한 터라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은영의 예약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손님들이 이름 없이 ‘김 실장’이라고 부르는 통에 은영과 연경의 예약이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일에 와서야 예약이 잘 못 된 것을 알고 은영으로 바꾸거나 다시 시간을 조정하는 일도 있었다. 그 시간에 받을 손님을 놓친 것이나 다름없는 연경은 언짢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격지심처럼 보일까 애써 화를 눌러봤지만 불편한 감정은 점점 쌓여만 갔다.     


  “은영 씨, 쓰고 난 드라이어를 이렇게 두면 어떻게 해요!”     


  손님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둔 헤어드라이어가 보이자 결국 짜증이 폭발했다. 영역을 침범당한 기분이었다.     

  “어머, 죄송해요.”     


  은영이 당황하며 손님의 머리를 하다 말고 드라이어 정리를 시작했다. 앉아있던 손님이 연경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연경 씨, 나도 은영 씨 손님이 갑자기 늘어 당황스럽기는 한데 말이야. 우리 미용실로서는 좋은 일이잖아. ”     

  외출했던 원장이 어찌 알았는지 연경을 불러다 좋은 말로 타일렀다. 연경은 속 좁은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 했다.      


  다음 날 저녁, 다들 일찍 퇴근하느라 은영과 연경이 뒷정리하게 되있다. 며칠 전의 일로 어색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연경은 말없이 정리하고 있었다.     


  “이따 끝나고 아아 한잔하실래요?”     


  은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역 앞 카페에서 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주문했다.     


  “친구가 맘카페에 글을 올린 모양이에요.”     


  ‘네?’     


  얼음을 젓던 연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이 엄마들의 인터넷 육아카페를 뜻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글을 올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왜, 전에 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 한 명 왔었잖아요.”     


  “아”     


  생각이 났다. 은영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결혼해서 근처 산다는 친구가 머리를 하러 왔었다.      


  “그 친구가 저 챙겨준다고 맘카페에 제가 커트 잘한다고 글을 올린 모양이에요.”     


  그제야 연경은 그동안의 일이 이해되었다.      


  “고맙기는 한데, 손님이 갑자기 늘어나니 저도 부담은 되더라고요.”     


  그녀는 육아카페 덕분에 손님이 늘어난 만큼 혹시라도 손님에게 불만이라도 생기면 반대로 있던 손님마저 끊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은영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전략을 사용한 그녀가 조금은 얄밉기도 했다.     


  은영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연경은 바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으로 지역 육아카페를 찾아 가입해 들어갔다. 몇몇 단어로 검색하니 정말 은영 에 대한 추천 글이 있었다. 지난 7월에 작성된 것이었다.      

  ‘00 미용실 00 선생님 커트를 깔끔하게 잘 해주세요.’     


  그 밑에는 직접 가본 엄마들의 댓글도 있었다.     


  ‘저 가봤는데 잘 잘라주셨어요. 00 님 추천 감사합니다.’     


  ‘친절하시고 중간중간 의견도 물어보셔서 만족스러웠어요.’     


  굳이 별로라는 말을 댓글로 남긴 사람도 있었다. 


  ‘전 그냥 그랬어요.’


  댓글들을 읽으며 연경은 손님이 늘어난 것이 이 추천 글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댓글들이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끝. 

(원고지 19.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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