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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ul 09. 2024

범인


 ‘와장창’     


  베란다 유리창이 큰 소리를 내며 깨졌다. 재이는 깜짝 놀라 방에서 뛰쳐나왔다. 커다란 유리창 한 개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바닥에는 유리 조각들이 처참하게 흩어져있었다. 재이는 얼른 슬리퍼를 챙겨 신고 유리 조각들을 한데로 모았다. 깨진 창 밖으로 내려다보니 아래쪽 화단에도 유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아파트 경비가 벌써 달려와 무슨 일인가 위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가니 4층인 그녀의 집 창문 하나가 휑하니 뚫려있었다. 몇 몇 집에서 창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밖에는 벌써 동네 주민 네댓이 나와 있었다.     

 

 “아이고, 무슨 일이래.”     

 

“나는 무슨 폭탄이라도 떨어졌나 했네.”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거래요?”     


 한 어르신이 재이에게 물었다.     


 “글쎄요. 저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네요.”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이 재이였다. 지난 태풍에도 튼튼하게 버텼던 유리창이 바람 한 점 없는 오늘 같은 날에 난데없이 부서져 버리다니...     


 “요 앞 놀이터에 항상 공놀이하던 녀석 있던데. 걔가 그런 건 아닌지 몰라.”     


 구경꾼 중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아, 맞아. 걔 전에 경비실 유리창도 깼잖아.”     


  누군가 한마디 보탰다. 청소하는 경비원을 도와 유리 잔해를 치우며 혹시나 야구공 같은 게 떨어져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다. 아주 오래된 낡은 테니스공을 하나 발견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집안에 흩어져있는 유리를 신문지에 싸서 테이프로 봉한 뒤 마대에 넣어두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냉수를 한 컵 들이켰다. 그때 그녀의 눈에 화분에 놓아 둔 돌멩이들이 보였다.      



  ‘혹시 저 중에 밖에서 던진 돌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도대체 누가 돌멩이를 던진단 말인가? 최근 그녀의 주변 관계를 생각해 봤지만, 그 정도로 서로 미워할 사람은 없었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화풀이라도 하고 간 건가.?’     


  최근 뉴스에 나오는 묻지 마 폭행이나 약에 취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큰맘 먹고 창틀을 바꾼 지 일 년밖에 안 됐다. 다시 수리하자니 재이는 속이 몹시 상했다. 여름이라 창문은 늘 열어두었지만, 비라도 오면 큰일이니 다이소에서 큰 비닐을 사다 막아두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데 마침 하교 시간인 듯 아이들이 하나둘 보였다. 바로 앞 놀이터는 벌써 그네를 차지한 녀석들도 있었다.      


  ‘혹시, 저 중의 한 명은 아닐까…?’     


  재이는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을 한 명씩 살펴보았다. 그중에 축구공을 든 아이도 있었는데 야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는 없었다. 공은 안 보였지만 놀이터 한구석에는 낡은 글러브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비닐을 사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니 남자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들어왔다.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너 야구 하니?”     


  “네”     


  “혹시 아까 점심때도 이 앞 공터에서 공놀이했니?”     


  “아니요?”     


  아이는 의심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보니 주변이 다 수상했다. 집에 돌아와 창을 비닐로 대충 막아놓은 뒤 이전에 공사를 맡겼던 실내장식 업체에 전화했다. 한참이 걸려서야 통화가 됐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니 여직원은 바쁘다며 일단 전화번호만 남겨달라고 했다.      


  “오늘 안에는 꼭 연락주세요.”     


  재이는 재차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매우 바쁘다는 말에 자신의 차례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걱정이 되었다. 돈은 또 얼마나 들까 심란했다. 범인이라도 잡으면 배상이라도 받을 텐데 여의찮으니 억울함도 더했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져 재이는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방에 누웠다. 텔레비전을 트니 마침 뉴스 시간이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최근 특정 제조사의 유리창 깨짐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리창 제조 시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000 기자입니다.’     


  재이는 벌떡 일어나서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웠다.     


  ‘000 제조사.’      


  당장 베란다로 나가 유리창에 제조업체 표시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동그란 K 마크 주변에 영어로 해당 제조사 표기가 되어 있었다. 재이는 실내장식 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녁 7시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한참 만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지금 뉴스를 봤는데 저희 창문 깨진 거 그 회사 맞죠?”     


  다짜고짜 캐물었다.     


 “저희도 뉴스를 보긴 했는데 지금 알아보는 중이에요.”  

   

  직원은 알고 있었는지 순순히 답했다.     


  이틀 뒤, 업체에서 온 직원은 상태를 확인하고 임시 자재로 다시 창을 막아주었다.  몇주가 흘러서야 창이 교체되었다. 제조사 부담으로 비용은 무료였다. 이로써 한차례 소동은 정리되었지만 재이는 한동안 베란다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는데 이전에 본 야구모자를 썼던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오늘은 모자를 쓰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꾸뻑하고 인사를 했다. 재이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 목례하듯 인사를 받았다.     


  놀이터에는 낡은 야구글러브가 여전히 공원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 작가의 상상력으로 지난주 만들어 오늘 수정한 따끈따끈한 허구입니다.

 특정 사건이나 업체와 관련이 없습니다. ^^)           


끝.

(원고지 19.7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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