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르’
묶은 먼지를 털어내듯 차가 소리를 냈다. 재이는 조심스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8월 말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래도 차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재이가 운전면허를 딴 것은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 취업도 한 터라 아버지는 주말 연수를 제안했다. 평소 대화가 없던 부녀였다. 운전 연수 때도 다를 건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 또한 나름의 소통이었다. 그러나 연수는 몇 달 후 중단되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이유였다. 면허증은 그녀의 서랍 속에 함께 잠들었다.
“엄마?”
운전 중 전화가 걸려 왔다.
“잘 오고 있어?”
이제야 운전을 시작한 딸이 걱정되었나 보다.
“잘 가고 있지 한 15분이면 도착할걸?”
“알았어. 조심히 와.”
전화를 끊었다. 이제 스피커폰으로 전화도 받을 수 있다.
‘안 가본 길로 한번 가볼까?’
평일 오전이라 차는 막힘없이 달렸다. 얼마 전 연수를 두 번 받은 뒤부터 운전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좌절’
첫 연수 후 느낀 감정이었다. 연수만 받으면 쌩쌩 달릴 줄 알았는데 마음 같지 않았다. 경사진 골목을 지나야 있는 집 주차장에 주차하는 것 또한 큰 난관이었다. 혼자 주차할 엄두가 안 나니 차를 몰고 나갈 수조차 없었다.
‘차에 관한 관심이 중요해요.’
맘카페를 통해 알게 된 두 번째 연수 선생의 말이었다. 그는 운전을 알려주기 전, 왜 운전을 배우고 싶은지, 평소 차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있는지 등 뜻밖의 질문을 했었다. ‘같은 차종을 운전하는 인터넷 운전자 카페에 가입하기’, ‘내 차 에어컨 필터 갈아보기’ 등 작은 숙제도 내주었다. 이후, 가까운 거리부터 반복해서 차분히 가르쳐주었다. 주차장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30cm씩 옮겨보기 등 연습을 반복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실력도 늘었다.
“주변에 주차가 편한 곳을 정해 매일 다녀보세요. 같은 길이라도 날씨와 시간이 다를 거예요. 앞뒤 차량과 신호 상황도 다를 거고요.”
과연 그랬다. 가까운 장소를 반복해 다녀도 선생의 말처럼 매일의 교통 상황이 달랐다. 그녀의 운전 반경도 조금씩 넓혀졌다. 최근에는 30분 거리인 친정과 시댁에도 가봤다.
‘쿵’
좌회전을 돌던 그녀가 놀라 차를 멈췄다. 오른쪽에 충격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 밖에 나와 보니,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쓰러져 있었다. 그 밑에 할아버지가 넘어져 있었다.
‘사람을 쳤어!’
순간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재이가 몸을 숙여 말했다. 노인은 가늘게 눈을 뜨더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아저씨!”
몇 번을 소리치자 그제야 그는 신음 같은 말을 뱉었다.
“괜, 괜찮아요.”
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넘어진 오토바이를 다시 타려 했다.
“아저씨, 가시면 안 돼요.!”
그녀는 한 손으로 노인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휴대전화로 112에 전화했다.
“제가 운전하다 오토바이랑 부딪혔어요. 오토바이 운전자가 가려고 해요.”
표지판에 적힌 도로명을 불러주고 통화를 끝낸 뒤에도 노인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뒤에 있던 트럭 운전사가 차를 돌려 지나가다 섰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고 보험사에도 연락하라고 말을 해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 말이 위로되었다. 노인도 더 이상 가려 하지 않았다. 119가 먼저 도착했다. 노인은 귀가 잘 안 들리는지 구급대원들이 몇 번을 크게 물어야 괜찮다고 말했다.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구급대원들은 경찰이 온 뒤 철수했다. 경찰과 이어 도착한 보험사 직원도 노인과의 대화를 어려워했다.
차를 갓길로 옮기려고 보니 그녀의 차는 차선에서 벗어나지도 않았고 바퀴만 왼쪽으로 조금 돌려져 있었다. 보험사 직원과 함께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오토바이도 좌회전을 시도하다 균형을 잃어 제풀에 넘어진 것이었다. 재이는 허탈한 웃음이 났다. 처리 역시 빨랐다. 상대는 보험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나는 마누라한테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하라고 하잖아.”
“이게 나만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
경찰들의 대화가 들렸다.
재이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해 다음에 들리겠다고 했다. 차 문을 열자 안에 넣어둔 자석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꺼내서 뒤편에 붙이고는 차로 돌아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초보운전’
끝.
(원고지 17.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