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에 발을 내디뎠다. 등 뒤로 열차가 움직이며 미지근한 바람이 일었다.
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내린 사람은, 진우뿐이었다. 철제의자에 다가가 앉자 벤치의 서늘함이 피부로 전해졌다. 그제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바랜 누런 조명 아래, 둥근기둥들이 드문드문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축축하고 눅눅한 먼지 냄새가 나는 듯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역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정적은 어딘가 낯설었다. 다시 시계를 보았다.
'나갈 수 있을까...?'
‘띠리리-’
놀라 천장을 올려보자 스피커에서 열차의 도착을 알렸다. 멀리서 들어오던 열차가 속도를 줄였다. 밖에서 바라본 열차 안은 낯익었다. 무수한 열차가, 같은 시간에 멈춰 있는 듯했다. 진우는 꼼짝할 수 없었다.
생각했다. 자신이 가려던 곳 아버지였다.
전날밤 병원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급히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가던 중이었다. 그동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고, 결국 마지막에서야 떠밀리듯 나서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먼 존재였다. 그나마 남은 따뜻한 기억은, 아주 오래전 어린 그를 목말 태워 걷던 한 순간뿐이었다.
열차의 뒤를 보던 그의 시선 끝에 어떤 형체가 걸렸다.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진우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그 소리에 그녀가 돌아섰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이었다.
“저...”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갸름한 얼굴은 창백할 정도로 하얬다. 길게 내려온 단발머리가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 쌍꺼풀 없는 눈이 그를 깊게 바라보았다.
“여기서 나가려는데 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실까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글쎄요.”
여자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저도 알고 싶네요.”
체념한 듯한 말투였다. 진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여자는 몸을 돌려, 이미 떠난 열차가 있던 승강장을 바라보았다.
“친구가 죽었어요.”
다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전날, 더 오래전인지도 모르겠네요.”
알 수 없는 말에 진우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이 사람은 이곳에 계속 있었던 것일까…? 체념한 듯한 얼굴이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부터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결국 듣지 못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금은 이곳이 편해졌어요. 나는 다시 열차를 타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에게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함께 있는 자신도 곧 그렇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스쳤다. 뒤돌아 가는 그의 등 뒤에서 여자가 말했다.
“결정하셨나요?.”
뒤돌아보았다. 여자는 그대로였다.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나갈 수 있는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시 열차를 탔죠. 하지만 내가 생각한 답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벤치로 돌아오자, 다시 혼자가 되었다.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곳은 완전했다. 완전해서, 마치 죽음 같았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이 말은 오히려 질문 같았다.
‘아직은….’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결정?’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정이 이곳을 나갈 열쇠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열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전부터 마주쳤을 사람들. 아무 상관없는 그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함께 섞여 북적이던 그곳.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무진장 애쓰던 세계. 안간힘을 쓰던 그 시간 속으로.